책 소개
책머리에 유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사상이지만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교가 한국에 끼친 영향은 일본이나 베트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이 책은 유교가 전통시대 한국문학의 글쓰기에 어떻게 관여하고,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어떤 제약을 가했는지를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글쓰기란 언제나 ‘장르’를 매개(媒介)해 이루어진다. 생물학적 비유를 들자면, 하나하나의 글쓰기가 생명의 최소 단위인 세포에 해당한다면, 하나하나의 문학장르는 특정한 세포들이 모여 이루는 특정한 조직과 같다고 할 것이다. 수많은 조직들이 모여 기관을 이루고 급기야는 하나의 개체를 이루듯, 수많은 문학장르들이 모여 한국문학이라는 하나의 체계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유교가 한국문학의 글쓰기에 미친 영향을 살피기 위해서는 개별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거나 부조적(浮彫的)으로 검토하기보다는 문학장르를 논의의 중심에 놓고서 검토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고, 계통적이며, 체계적일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본서는 유교가 한국문학의 ‘장르’에 어떤 영향을 드리웠는가를 살피는 데 논의의 주안점을 두었다. 그렇기는 하나, 장르에 대한 논의는 결국 그 장르에 속한 작품들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바,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본서의 논의는 곧 작품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는 점을 말해 두고 싶다. 유교가 전근대 한국문학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유교가 한국문학의 장르들에 어떤 작용을 했는가를 묻는 것은 곧 전통시대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묻는 일이 된다. 이 물음에는 당연히 다음의 질문들이 포함된다: 유교가 한국문학 장르의 형성과 전개에 어떤 관여를 했는가. 유교는 한국문학사가 펼쳐 보인 수많은 역사적 장르들의 장르적 규범과 관습에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어 있는가. 유교는 개별 장르들의 미학과 세계관에 어떻게 정초(定礎)되어 있으며 어떻게 내면화되어 있는가. 유교는 장르들의 질서와 체계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으며 또 그것을 어떻게 규율하고 있는가. 유교는 특정한 장르의 가이드라인 혹은 레드라인을 어떻게 은밀히 규정짓고 있는가. 유교는 한국문학의 상상력에 어떤 작용을 했는가. 유교는 전근대 한국문학의 글쓰기에 어떤 음영(陰影)을 드리웠으며 어떤 특징들을 초래했는가. 유교의 경계 밖에 있는 장르들과 유교의 경계 내에 있는 장르들의 관계, 그리고 유교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지향의 글쓰기와 유교적 이념을 충실히 구현하는 글쓰기의 관계는 어떠한가. 유교가 한국문학의 장르적·문예적 ‘창안’에 기여한 점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처럼 본서는 유교와 문학장르, 이 둘을 기축(基軸)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한국유교와 관련해서는 최근 크게 두 가지 담론태도가 눈에 띈다. 하나는 한국유교에서 가능한 한 긍정적인 의미를 찾고자 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유교의 부정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태도이다. 이 두 가지 태도에는 물론 제각각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하나, 모두 일면적이고 편향되어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의미만 부각시키고자 할 경우 결국 미화(美化)로 빠질 우려가 없지 않은데, 그렇게 되면 본의는 아닐지라도 실상을 은폐하거나 분식(粉飾)하는 꼴이 되고 만다. 부정적인 면만 들춰낼 경우 결국 자기비하에 빠지게 되며, 유교가 갖는 또 다른 의미 있는 측면에 대해서는 색맹으로 되고 만다. 사실 일방적인 긍정이나 일방적인 부정만큼 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총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며, 대개 단순하고 저급한 정신의 자기정시(自己呈示)일 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본서는, 유교의 공(功)과 과(過)를 모두 인정하고, 가능한 한 그것을 학문적 견지에서 냉철히 보려는 입장을 견지코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본서가 적당히 절충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건 아니다. 유교의 공과 과는 많은 경우 서로 분리하기 어렵게 맞붙어 있는바, 공 안에 과가 있고 과 안에 공이 있으며, 부정 속에 긍정이 담지되어 있고 긍정 속에 부정이 담지되어 있다. 우리는 불가피하게도 공 속에서 과를 보아내야 하고 과 속에서 공을 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사정이 이처럼 미묘하고 복잡하므로, 이건 괜찮지만 저건 나쁘다는 식의 평면적인 절충으로는 사태의 역동적 실상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 그보다는 대상에 대해 엄정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함으로써, 부정 속에서 긍정을 발견하고 긍정 속에서 부정을 재차 읽어내는 것이 긴요하면서도 지혜로운 태도가 아닐까 한다. 요컨대, 본서는 유교의 과(過)나 유교가 초래한 제약에 대해 극히 비판적인 시각을 취하고 있지만, 오히려 바로 이 때문에 유교의 공(功)은 정당하게도 긍정된다. 부정과 긍정은 대대적(待對的) 관계, 즉 서로 대립적이면서도 통일적인 관계 속에 놓이는 것이다. 이런 방법론적 전제는, 본서의 주제를 자유롭고 유연한 정신에 입각해 보다 실사구시적이고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문학 연구에서 장르에 대한 관심 내지 장르론적 논의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비교적 활발히 제기되었으나 그 이후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그간의 한국문학 연구가 자료에 대한 논의나 실증적 논의 쪽에 치중하고 이론적 논의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 것과 관련이 있는데, 이 점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체적인 이론생산이나 이론구성 능력이 없는 학문은 필경 쇠퇴하거나 사양길에 접어들고 만다. 이론을 통해서만 지적 능력의 최대치가 계발(啓發)되고, 인식행위가 심원해질 수 있으며, 그때서야 학문은 자기한계를 포함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획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이의 단계에서 어른의 단계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러야 학문은 자신의 고유성과 함께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숙과 겸손을 갖출 수 있을 터이다. 요즘 ‘우리학문의 세계화’를 많이 말하지만, 이 난관을 제대로 돌파하지 않고서는 공허한 구두선에 불과할 것이다.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 이 둘을 관련지어 본격적으로 연구한 저서는 아마 이 책 이전에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비단 전통시대 한국문학의 장르라든가 글쓰기에 대한 연구로서만이 아니라, 한국유교에 대해 특수한 접근을 시도한 책으로도 읽히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 책을 외국의 한국학 연구자들도 참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쉽고 간명하게 서술하고자 했으나, 과연 그렇게 됐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무쪼록 이 책이 한국학의 이론적 모색의 도정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2008년 2월 박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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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책머리에 1. 문제와 방법 2. 유교와 한시 3. 유교와 한문산문 4. 유교와 국문시가 5. 유교와 국문소설 6.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체계 7. 비평적 조망 찾아보기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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