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문 중국, 북경. 이름난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대학가 옆 작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갑자기 늘어난 옷가게며 군것질 거리를 파는 작은 가게들 앞에 드문드문 책을 파는 노점상들이 보이곤 한다. 흔히 따오판이라 부르는 장사치들이다. 그들이 파는 책들은 으레 심리학 입문이나 금융위기관리개설 같은 따분한 교재들의 복제본이이다. 이따금 노신의 위대한 소설책들도 눈에 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예외 없이 낯익은 책들이 보인다. 세계적으로 이름 난 자기계발서들이다. 그 가운데엔 중국어로 번역된 한국의 자기계발서도 끼어있다. 이를테면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따위의 제목을 단 책들이다. 태국의 방콕. 시내 중심가인 시암의 전철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물끄러미 앞을 쳐다보면, 코카콜라나 맥도널드 광고판 사이에서 호텔이나 국제회의장에서 곧 열린다는 공개 강연 광고판이 보인다. “내 인생의 블루 오션”같은 이름을 단 그 이벤트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들이 연사로 나설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성공의 비밀을 알려줄 그 인생의 마법사들은 뙤약볕 아래의 광고판 속에서 기괴하리만치 환한 낯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 사당역. 눈길이 가는 곳마다 어지럽게 나붙은 광고들 속에서 “희망드림 프로젝트”같은 광고가 눈에 띈다. “서울형 복지”라는 너스레를 떨며 등장한 신형 복지정책이다. 이 코미디 같은 광고는 ‘희망 없는 빈곤’이 근본문제임을 역설하며 희망과 의욕을 줄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희망을 가지기 위해 자기성찰을 통한 자존감 회복이 중요하다며 ‘희망의 인문학’을 진행한다는 그것이 이 희망드림 프로젝트란 소문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자립의지가 있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이 복지정책은 어쩐지 윤리적인 악몽을 꾸는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빈곤은 어쨌거나 사회적 현실이다. 빈곤을 그냥 불편이나 불행이라 부르지 않고 빈곤이라 이름붙일 때, 그것은 자기 삶 밖에서 들이닥친 현실이란 점을 알린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희망 없는 빈곤”이란 말 속에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어울려서도 안 되는 차원이 맞붙는다. 희망은 나의 내밀한 삶의 세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빈곤은 경제적인 생존을 규제하는 바깥 세계의 원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희망 없는 빈곤이란 말은 빈곤을 나의 책임과 자율의 세계로 떠넘기며, 빈곤을 낳은 원인을 용케 나에게 돌린다. 내가 못난 탓에 형편없이 살게 되었다는 생각에는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런 발상이 유별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제 그런 생각이 어느 한 사람의 변덕스런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의 삶을 규제하고 조직하는 원리로 격상되었다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희망드림프로젝트가 말하는 복지정책은 희망을 품고 자신을 보살필 줄 아는 개인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복지정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주도적인 창의적 학생을 내세우는 교육정책이나 자기의 인적 자산 혹은 커리어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라는 고용정책이나 모두 다같이 자신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개인을 겨냥한다. 게다가 “자존하고 자립하고 자활하라”는 윤리적인 다그침 속에는 네 삶 밖의 세계에 어떤 허튼 소리도 하지 말라는 들리지 않는 위협적인 목소리가 끼어있다. 네 스스로 힘껏 살아보라는 말 속에는 그리고 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속삭임 속에는, 사실은 절망과 분노는 내색조차 하지 말라는 협박이 숨어있는 셈이다. 만약 그런 소리를 늘어놓는다면 우리는 봇물처럼 쏟아지는 자신에 관한 진단과 힐난, 처방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악인보다 더 불편하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제 앞가림을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더 보태자면 칭얼대고 투덜대며 곧잘 분을 터뜨리는 사람보다 우리가 더 성가시게 여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눈길에는 무엇이 더 정의로운 세계인가를 살피고 판단할 수 있는 자리가 처음부터 빠져있다. 거기에는 오직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키리만치 오직 자신과 대면하고 있는 나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내가 타인과 대하는 것은 오직 그가 자신을 존중하는 개인이라는 모습 안에서 이다. 그래서 나와 다름없이 자기를 돌보고 책임지는 개인들로서만 대면하는 이들로 꽉 찬 세계가 우리가 얽힌 세계라는 생각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이런 세계에서 내가 겪는 고통을 발설하는 방식은, 흔히 듣듯이, 상처를 받았다는 식의 푸념이다. 거기에는 항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가 그다지 없다. 친밀함으로 묶인 관계가 아닌데도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현실을 개인들끼리 자신의 꿈과 의지를 실현코자 분투하는 세상에 살아가는 것처럼 그린다. 그가 가난이나 차별을 비관하여 죽었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가난과 차별을 보기보다는 그의 자활의지나 그의 심약하고 무력한 태도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한편 이런 세상에서 나 혹은 타인들이나 삶을 사는 모습은 크게 두 가지 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쩌다 볼 때엔 마치 열병에 들 뜬 사람처럼 지나치게 발랄하거나 자신감에 넘친 채 살아가는 이들이 한 쪽에 있다. 물론 다른 한 쪽에 누가 있는지 굳이 가리킬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의욕도 없는, 곧잘 자살 충동에 빠지는, 남들이 이루어 놓은 성취를 가로채기 일쑤인 쓰레기 같은 삶이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빈민들의 항의를 빈정대는 목소리 안에서 이런 생각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인생을 “날로 먹으려는” 게으름뱅이나 “루저”들로 힐난하는 목소리에서 우리가 식별하는 것은 그런 저속한 욕설을 퍼붓는 이들을 덮어 누르는 자신에 관한 불안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의 얼개 안에서 타인은 내 삶과 운명을 같이 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자각으로 이어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타인들을 뚜렷한 모습으로 그려낼 수 있는 힘도 잃어버린다. 투쟁하는 인간의 모습을 대신하는 것은 무력하게 자신의 고통을 증언하는 마치 자신은 자신의 불행에 관해 무고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데 진력하는 듯 한 가난하고 헐벗은 이의 모습이다. 우리는 그것을 거의 매일 이른바 “휴먼다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쳐다본다. 그것을 보며 우리가 응당 되돌려주어야 할 것은 연민에 가득 찬 흐느낌이지 분노와 연대의 감정은 아니다. 그리고 사정은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진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이런 물음을 더 깊이 파헤쳐 보기 위해 이 글은 출발한다. 이 책은 저자가 2004년에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글을 다듬은 것이다. 그 사이에 5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렇다면 응당 무언가 그 사이에 벌어진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감안한 덧쓰기를 해야 마땅하겠지만 달리 손을 대지 않았다. 어쩌면 그 사이에 숨 가쁜 변화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엄청나게 바뀌었고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보다 우리 시대의 별난 태도가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 그다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외려 모든 현실을 변화라는 거울을 통해 식별하려는 강박보다 속물스러운 태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강변하고 싶을 때, “세상이 달라졌다”고 운을 떼는 말버릇에 익숙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야 말로 당연 가장 고답적인 자세처럼 보인다. 그것은 자신은 변화를 선구하고 있다는 허장성세를 드러내는 뻔한 말투이기도 하려니와 변화가 세상을 식별하는 무슨 대단한 원리인 것처럼 거들먹거린다. 이 글에서 다루려고 했던 한국 사회의 짜임새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며 외려 더 공고해졌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지난 5년의 변화를 굳이 보태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난 후 정권이 교체되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물러나고 보수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였다. 지난 10년을 만회하겠다고 지배 집단은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러다 민주화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들이 큰 것도 사실이다. 공안정국이니 파시즘의 부활이니 새로운 독재체제니 하는 말은 당장 어떤 형태의 정치적 저항도 용납 않겠다는 정권의 행태를 생각해 볼 때, 일리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인권과 민주적 시민권의 정치는 자본에 맞서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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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새로운 자본주의는 어떤 사람을 빚어내는가 1장 지식기반경제라는 경제적 가상 1. 담론의 변화, 변화의 담론 경제적 가상의 재구성 노동주체성의 담론과 그 변형 새로운 정치적 주체성의 형성 2. 지식기반경제의 경제적 주체 구조조정과 새로운 경제적 가상의 등장 경제적 실재 대 담론적 현실 지식기반경제 담론의 헤게모니 3. 한국 자본주의와 그 재현의 변화 신경제에서 지식기반경제까지 지식기반경제라는 담론적 현실의 구성 2장 자기계발하는 시민: 신지식인에서 인적자원까지 1. 신지식인, 지식기반경제의 국민 주체 2. 능동적 시민이라는 인적자원 평생학습하는 시민 경쟁력 있는 국민 3. 국민의 통치, 자아의 통치 3장 유연한 노동주체: 일터에서의 자아 생산 1. 자본의 유연화에 따른 노동주체와 변화 유연화 담론을 넘어서 계급구성을 넘어서 2. 경영 담론과 주체성의 관리 노동자에서 ‘인재’로 경제적 삶의 경영, 인간의 경영 경영 담론의 생산과 소비 경영 담론의 헤게모니 3. ‘전략경영’에서 ‘인적자원관리’까지 전략경영 비전 균형성과표 목표관리제 4. 능력과 역량: 신체와 정치적 테크놀로지 능력의 계보, 자본의 역사 능력에서 역량으로 역량모델링 직무분석과 그 이후 역량 중심의 인적자원관리 역량기계 4장 자기계발의 의지 1. 한국의 자기계발 담론 자기계발이라는 문화산업 성공학에서 자기경영으로 지식, 테크놀로지, 텔로스 2. 나는 기업이다 자기의 문제화 기업가적 자아 ‘기업가정신’과 주체성의 지배 3. 자기의 테크놀로지 자아의 과학 쓰기와 읽기―자기의 텍스트 시時테크 4.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정치학 자기계발의 의지 불확실성, 리스크, 자유 그리고 기업가적 자아 신자유주의와 자기의 지배 에필로그: 자유라는 위험 주 참고문헌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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