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젊은이와 대화한다는 것 이 책은 나의 벗인 윤여일과 나눈 대담을 수록한 것이다. 윤여일은 젊은 연구자다. 나는 그로부터 이제껏 많은 것을 배웠다. 한국 사회에 대한 책임감, 아시아를 향한 지적 관심, 아울러 기존의 지적 생산구조에 관한 반성 등이 생생한 대화를 거듭하며 내게 전해졌다. 나는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 그래서 그와 대화할 때면 늘 일본어를 사용한다. 일본어는 내게도 그에게도 외국어이며, 둘이 각자 살아가는 사회생활로부터 미묘하게 떨어져 있다. 더구나 그도 나도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대화는 헛돌곤 한다. 일본어 실력 탓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타문화가 벽 안쪽으로 숨기고 있는 내용은 그 사회 특유의 말로만 표현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 책도 일본어로 주고받은 대화를 옮긴 것이다. 우리의 대담은 이미 5년 전인 2008년 가을에 진행되었다. 당시 나는 객원교수로서 히토츠바시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내 수업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토론했다. 수업이 중반으로 접어들자 그는 대담이라는 형태로 수업을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눌 필요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흥미진진한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나는 여러 곳에서 인터뷰를 받은 적이 있다. 따라서 그런 방식은 이미 친숙하다. 하지만 수업의 모습을 그대로 책으로 엮는 경험은 처음이다. 인터뷰와 달리 수업은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꺼내는 데서 머무를 수 없다. 왜냐하면 지적 전달은 일방적 행위일 수 없으며, 학생과의 대화를 통해 내용과 윤곽을 계속 수정하고 보충해가야 소통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윤여일은 특히 생각이 깊은 학생이며 그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이 책은 그의 구상에 따라 짜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상황과 사고’ ‘중국과 일본 사이’ ‘역사와 현재’ ‘동아시아와 우리’ 등 그가 제기한 문제군은 무엇 하나 단순하지 않았다. 그의 문제제기에 힘입어 나는 평상시 느끼던 것, 생각하던 것 그리고 생각지 않았던 것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다. 이번 계기로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했다. 사상사에서 대담은 몹시 소중한 양식이다. 발상법이 다른 두 사람이 같은 화제를 다른 각도에서 비추기에 홀로 하는 독자적 저술보다 문제가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이 책이 여느 대담과 다른 특징을 갖는다면, 그것은 그의 치밀한 기획으로 대화가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담하는 동안 나의 논문집을 번역하며 논문들의 취지에 맞춰 대담을 구상했다. 대담을 시작하면서는 당장 그가 꺼낸 물음에 답하는 데 급급해서 그의 의도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그의 거듭된 물음에 응하며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논문에는 적지 않았던 이야기를 점차 꺼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을 때 나는 그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다. 이 책이 나오기 위해 공헌한 또 한 명의 젊은이에게도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나의 일본인 학생 야마오카 켄지로다. 그는 대담의 녹취를 정성껏 풀어서 일본어판을 만들어줬다. 이게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을 만들 수 없었다. 중국어를 못하는 윤여일과 한국어를 못하는 나 사이에서 일본인인 그가 일본어로 매개해준 일은 내게 실로 기묘한 체험이었다. 2011년, 3·11 대지진이 있었다. 나는 그해의 마지막 삼 개월 동안 교토대학에 체재했다. 그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교토에 와서 일본의 위기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를 두고 나와 논의했다. 셋 모두 윤여일처럼 히토츠바시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이다. 또한 그들 역시 윤여일처럼 위기상황에서 성장했다. 세대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그들과 교류하며 세대의 간극을 느낀 적이 없다. 간극은 세대의 차이보다 위기의식 여부에 따라 생기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격동중이다. 정상성에 집착하는 편향에 빠져 위기를 외면하는 인간이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시대의 위기에 민감한 자는 나와 같은 세대보다는 취직 등으로 힘든 젊은 세대인지 모른다. 그들과 소통을 이어가는 것은 윗세대로서 다음 세대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게 아니다. 그들의 반응을 통해 이 시대의 위기상태를 읽어내 나름으로 사상의 민감함을 연마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윤여일과의 대화를 중시하며, 야마오카 등과의 대화도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앞으로도 젊은이와 폭넓게 대화를 지속할 생각이다. 그들과 대화하며 나는 현실에서 거리를 두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젊은이와 대화하는 진정한 이유이지 않겠는가. 스승과 대화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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