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책머리에 돌이켜 보면 나의 공부길은 문학 연구에서 출발해 사상사 연구를 거쳐 예술사 연구에 이르게 되었다. 문학 연구, 사상사 연구, 예술사 연구는 제각각 고유한 분야로서, 대상·방법·의제(議題)가 서로 많이 다르고, 연구 풍토 또한 다르다. 하지만 이 세 분야는 공히 한국학의 핵심적 영역을 이루면서 연접(連接)해 있는바, 서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럼에도 근대 이래 한국 학계에서는 이 세 분야를 각각 따로 연구하는 관행이 굳어져 있으며, 세 분야를 넘나들거나 아우르며 연구하는 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요컨대 근대 이래 한국학은 철저히 분과학문을 견지하고 있다 할 것이다. 물론 분과학문이 갖는 장점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고도의 전문성 같은 것이 그에 해당할 터이다. 그러므로 분과학문의 장점에 대한 정당한 인식 없이 학문의 ‘융복합’만 외치다가는 오히려 얼치기 학문에 이르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분과학문적 학문 관행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분과학문의 틀에 갇혀서는 큰 스케일의 학문, 넓은 시각, 광폭(廣幅)의 상상력, 창발적(創發的) 사고가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체로 주어진 틀에 안주하며 비슷한 방식, 비슷한 언어, 비슷한 주제로 연구하기 십상이다. 내가 보기에 최근의 한국학 연구는 실증적 연구가 주가 되고 있으며, 실증을 넘어 큰 문제의식, 큰 의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튼실한 실증이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1차원적 학문에 머물 수밖에 없다. 1차원적 학문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논리, 사유,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한국학 연구는 전반적으로 여전히 논리력이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더군다나 사유다운 사유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니 참신하거나 혁신적인 문제의식이 나올 리 없다. 이런 풍토에서 새로운 개념이나 새로운 이론의 창출을 기대할 수는 없다. 사유는 기본적으로 실증과는 다른 정신의 영역이다. 그것은 또한 재치나 입담과도 거리가 멀다. 실증 편향, 재치, 입담은 오히려 사유의 결핍을 보여줄 뿐이다. 사유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텍스트, 세계, 현실과 마주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므로 고뇌와 응시와 침잠, 실존과 긴 호흡이 요구된다. 학자와 지식인의 책무도 이 지점에 이르러야 비로소 문제시될 수 있을 터이다. 나는 인문학의 최고 핵심이 텍스트의 깊은 이해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에서 텍스트는 모든 것이다. 하나의 문학 작품, 한 권의 역사서, 철학적인 담론, 사상이 표백된 글, 그림, 서예, 연극, 영화, 음악, 이 모두가 텍스트다. 텍스트에는 ‘인간’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이해는 최종적으로 인간에 대한 정당하고 심도 있는 이해를 목표로 삼는다. 우리가 생에서 늘 목도하는 바이지만 인간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리 보면 인문학에서 텍스트를 정당하고 심도 있게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알 수 있다. 본서는 바로 이 ‘텍스트 읽기’와 관련된 책이다. 본서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은 텍스트는 능호관 이인상의 서화이다. 그림은 본서의 제1권에서 다루고, 글씨는 제2권에서 다룬다. 텍스트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의 내적·외적 맥락에 대한 파악일 것이다. 이인상의 서화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텍스트와 관련된 문학적·사회적·정치적·사상적·예술적 맥락을 종횡으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결국 이인상이라는 인간을 하나의 텍스트로서 구명(究明)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이인상의 서화에 대한 연구는 근원적으로 이인상의 정신과 의식에 대한 연구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서화를 매개한 인간 연구인 것이다. 본서는 이처럼 텍스트의 내적·외적 맥락을 추궁하기에, 궁극적으로는 예술사에 대한 해명을 목표로 삼고 있으면서도, 문학과 사상의 영역을 시종 면밀하게 다루면서 예술·문학·사상 이 3자의 관련을 집요하게 따지고 있다. 이 점에서 본서는 그 연구의 방법론과 자세에 있어 분과학문의 체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할 것이다. 본 연구가 기존의 이인상 서화 연구와 다른 점, 더 나아가 한국에서 이루어진 기존의 어떤 예술사 연구와도 차별되는 점은 본서가 취하고 있는 바로 이 연구 방법론과 자세에서 기인한다. 이인상의 서화에 대한 연구는 비단 18세기 전·중기 조선의 문학사·예술사·사상사만이 아니라, 근세 동아시아의 문학사·예술사·사상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한 단계 끌어올려 주리라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본서의 연구를 통해, 18세기 후반 조선의 문학사·예술사·사상사는 물론이려니와 19세기 전반 조선의 문학사·예술사·사상사에 대한 계통적 혹은 대비적(對比的) 이해가 가능해짐으로써 우리의 안목이 좀더 넓어지고 높아지리라 기대한다. 이처럼 이인상 연구는 단지 이인상과 그의 시대(겸재 정선이 바로 이 시대에 속한다)에 대한 이해의 도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연암 박지원과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추사 김정희(이 두 사람은 모두 이인상을 존경하였다)의 시대를 바라보는 하나의 새로운 시좌(視座)를 획득하게 해 주며, 이 두 거물의 문학과 사상의 특질, 그리고 그 예술적 성취에 대한 좀더 심도 있는 이해와 함께 그 인간학적 이해의 심화를 가능케 하는 하나의 의미 있는 준거(準據)를 획득하게 해 준다. 이 점에서 본서는 차후의 한국학 연구에 기여하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이인상 연구에 착수한 것은 지난 세기 말인 1998년이다. 나는 우선 그의 문집인 『능호집』(凌壺集)의 번역부터 시작하였다. 이 책을 면밀하게 읽으면 이인상을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해서였다. 3년쯤 걸려 번역을 마치자 이인상이 어떤 인간인지 대강의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인상과 교유한 사람들의 실체라든가 이인상의 생애와 관련해 새로운 의문점들이 많이 생겨났다. 연구가 답보상태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운 좋게도 이인상의 후손가에서 『뇌상관고』(雷象觀藁)를 발견하였다. 2005년 봄이다. 『능호집』이 간본 문집이라면 『뇌상관고』는 초본(草本) 문집이다. 『뇌상관고』에는 『능호집』에 없는 내용이 많았다. 나는 『뇌상관고』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이인상의 상(像)을 다시 그리게 되었으며, 이인상과 관련한 의문들을 많이 해결하게 되었다. 애초 이인상에 대한 나의 관심은 사상사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 무렵부터 나는 이인상의 서화 쪽으로 관심을 확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나는 이전의 공부길에서 겪어 본 적이 없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최대의 난관은 서화 자료의 열람에 있었다. 실물을 보고 싶었지만 미술사학의 바깥에 있는 나에게 그런 기회가 쉽게 제공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제약 속에서도 나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비록 일부이긴 하나 이인상의 서화를 실견하고 그것을 촬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실견의 어려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난점은 서화의 사진 파일조차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런 애로 속에서도 나는 10년에 걸쳐 차곡차곡 자료를 축적해 갔다. 이인상의 서화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나로서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럼에도 내가 미처 접하지 못한 자료들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서예 작품의 경우 내가 보지 못한 것이 적지 않을 터이다. 이런 한계가 없지 않으나 나는 적어도 현재 알려져 있는 이인상의 서화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이 책에서 모두 다루었다. 본서에서 다룬 이인상의 서적(書跡)은 기존에 알려져 있던 것보다 몇 배나 많을 줄 안다. 그림은 새로운 작품의 발굴이 쉽지 않아, 본서에서 기존의 목록에 보탠 작품은 두 작품에 불과하다. <수루오어도>(水樓晤語圖)와 <영지도>(靈芝圖)가 그것이다. <수루오어도>는 종래 이윤영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이 책은 초고 작성에 2년이 걸렸으며, 초고를 고치고, 다듬고, 보완하는 데 3년이 걸렸다. 꼬박 5년 동안 나는 다른 일에 일절 눈을 주지 않고 오로지 이 일에만 매달렸다. 이 기간 중에 나는 가간사(家間事)와 관련해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런 힘든 시간 속에서도 이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오히려 이 때문에 나는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낸 듯싶기도 하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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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5 감사의 말 —11 일러두기 —22 서설 방법과 시각 —23 1 《묵희》墨戱 —135 1-1 이소離騷 —144 1-2 학명鶴鳴 —149 1-3 여지勵志 —154 1-4 묵란도발墨蘭圖跋 —164 1-5 이정유서・악기・주역참동계二程遺書・樂記・周易參同契 —167 1-6 추일입남산곡중秋日入南山谷中 —178 1-7 귤송橘頌 —186 1-8 천진폐거, 몽제공공위성매, 작시이사天津敝居, 蒙諸公共爲成買, 作詩 以謝 —192 1-9 자지가紫芝歌 —201 2 《원령필》元霝筆 —207 2-상-1 실솔蟋蟀 —217 2-상-2 후적벽부後赤壁賦 —221 2-상-3 억抑 —226 2-상-4 형수재공목입군증시兄秀才公穆入軍贈詩 —231 2-상-5 제김사순병명題金士純屛銘 —237 2-상-6 갱차퇴계선생병명更次退溪先生屛銘 —244 2-중-1 대우모大禹謨 —254 2-중-2 공손추 상公孫丑上 —259 2-중-3 범해汎海 —262 2-중-4 추흥秋興 —268 2-중-5 수회도水會渡 —272 2-중-6 적벽부赤壁賦 —277 2-하-1 소자 회옹화상찬小字晦翁畵像贊 —285 2-하-2 강정江亭 —291 2-하-3 계사전 상繫辭傳上 —300 2-하-4 숙백사역宿白沙驛 —303 2-하-5 벌목伐木 —308 2-하-6 상체常棣 —314 2-하-7 차운택지만성次韻擇之漫成 —322 2-하-8 박문조관泊問潮館 —325 2-하-9 독립불구둔세무민・선세인욕지사獨立不愳遯世無悶・蟬蛻人慾之私—328 2-하-10 황의皇矣 —333 2-하-11 인명印銘 —336 2-하-12 존덕성재명尊德性齋銘 —339 2-하-13 산중도사山中道士 —345 2-하-14 대자 회옹화상찬大字晦翁畵像贊 —352 3 《해좌묵원》海左墨苑 —359 3-1 지성음至誠吟 —362 3-2 야인무수첨대하野人無修檐大夏 —366 3-3 청묘淸廟 —371 3-4 중용 제11장 —376 3-5 음주飮酒 제5수 —380 3-6 심장일인산거尋張逸人山居 —385 3-7 정담추수, 운간냉태靜譚秋水, 雲看冷態 —388 3-8 망천한거輞川閑居 —395 3-9 윤흡에게 보낸 간찰 —399 3-10 이유수에게 보낸 간찰(1) —413 3-11 청명상천, 광대상지淸明象天, 廣大象地 —426 3-12 담수재澹守齋 —433 4 《보산첩》寶山帖 —437 4-1 재유在宥 —453 4-2 답원기중논계몽答袁機仲論啓蒙 —458 4-3 재거감흥齋居感興 —465 4-4 호극기 시胡克己詩 —472 4-5 강절선생화상찬康節先生畵像贊 —483 4-6 회암화상찬・회옹화상찬晦庵畵像贊・晦翁畵像贊 —488 5 《능호첩凌壺帖 A》 —493 5-1 일사풍월청탄조一絲風月淸灘釣 —507 5-2 가산・강남롱假山・江南弄 —510 5-3 동황태일・운중군東皇太一・雲中君 —515 5-4 사유쟁우士有諍友 —523 5-5 간오불가위고簡傲不可謂高 —532 5-6 과진도처사구거・연위사호산정원過陳陶處士舊居・宴韋司戶山亭院—537 5-7 무담당즉무대사업無擔當則無大事業 —542 5-8 반오백운경부진半塢白雲耕不盡 —546 5-9 제남성・동저・조행題南城・東渚・早行 —551 5-10 춘야희우春夜喜雨 —555 6 《능호첩凌壺帖 B》 —559 6-1 우중만술, 근정우만정안구화雨中漫述, 謹呈牛灣靜案求和 —565 6-2 검서서재유감, 근차장운구교撿書西齋有感, 謹次長韻求敎 —575 6-3 소완小宛 —582 6-4 간매看梅 —591 6-5 난동蘭洞에 보낸 간찰(5점) —597 6-6 추기객리. 억여상주유, 상이호追記客裏. 憶驪上舟遊, 上梨湖 —604 6-7 유감有感 —610 7 《단호묵적》丹壺墨蹟 —613 7-1 야화촌주野華邨酒 —623 7-2 논어 학이學而 —633 7-3 선세인욕지사蟬蛻人慾之私 —638 7-4 여왈계명・건괘 단전女曰鷄鳴・乾卦彖傳 —642 7-5 의운화진성백저작사관원회상작・후원즉사依韻和陳成伯著作史館園會上作・後園即事—655 7-6 석방비惜芳菲 —660 7-7 이유수에게 보낸 간찰(2) —663 8 《묵수》墨藪 —669 8-1 귀거래사歸去來辭 —673 8-2 중용 제1장 —677 8-3 우암송선생화상찬尤菴宋先生畵像贊 —680 9 난정서 외: 전서 —685 9-1 난정서蘭亭序 —687 9-2 고백행古柏行 —694 9-3 망운헌望雲軒 —713 9-4 관란觀瀾 —720 9-5 중용 제33장 —729 9-6 음주飮酒 제7수 —738 9-7 구중불설자황口中不說雌黃 —745 9-8 소사보진少事葆眞 —755 9-9 유백절불회진심有百折不回眞心 —765 10 산정일장 외: 팔분 —773 10-1 산정일장山靜日長 —775 10-2 기취旣醉 —790 10-3 임예기비臨禮器碑 —804 10-4 고반考槃 —814 10-5 곤암명困庵銘 —822 10-6 막빈어무식莫貧於無識 —833 11 유행주귀래, 여김자신부부 외: 해서 —849 11-1 유행주귀래, 여김자신부부游杏洲歸來, 與金子愼夫賦 —851 11-2 봉신이자윤지서奉贐李子胤之序 —857 11-3 역전易傳 —868 12 회담화재분운 외: 행서・행초 —877 12-1 회담화재분운會澹華齋分韻 —879 12-2 춘일동원박자목방담화재春日同元博ˎ子穆訪澹華齋 —883 12-3 서지이윤지원정염운西池李胤之園亭拈韻 —887 12-4 과운봉여은치過雲峰如恩峙 —893 12-5 관계윤서십구폭觀季潤書十九幅 —900 12-6 익일여제공입북영, 지감翼日與諸公入北營, 志感 —905 12-7 탁락관소집・이화卓犖觀小集・移花 —910 12-8 귀원전거・수유시상歸園田居・酬劉柴桑 —916 12-9 제연화도題蓮花圖 —921 12-10 사일찬四逸贊 —930 13 이윤영에게 보낸 간찰 외: 간찰 —935 13-1 이윤영에게 보낸 간찰 —937 13-2 김근행에게 보낸 간찰 —950 13-3 송생원에게 보낸 간찰 —955 13-4 사촌동생 이욱상에게 보낸 간찰 —961 13-5 작은아버지에게 올린 간찰(1) —976 13-6 작은아버지에게 올린 간찰(2) —980 13-7 이유수에게 보낸 간찰(3) —983 13-8 송익흠에게 보낸 간찰(1) —993 13-9 송익흠에게 보낸 간찰(2) —997 13-10 송치연에게 보낸 간찰 —1005 13-11 득산에게 보낸 간찰 —1010 13-12 윤면동에게 보낸 간찰 —1016 14 사인암찬 외: 금석문 —1021 14-1 사인암찬舍人巖贊 —1023 14-2 운화대명雲華臺銘 —1029 14-3 퇴장退藏 —1034 14-4 태시설太始雪 —1042 14-5 김주하 묘표金柱廈墓表 —1045 14-6 송병원 묘 망주석 뇌宋炳遠墓望柱石誄 —1052 14-7 대사성 김식 묘표大司成金湜墓表 —1060 맺음말 —1067 부록 부록 1 이인상의 전각 —1073 부록 2 이최지의 전각 —1093 부록 3 단호그룹 인물들의 글씨 —1111 부록 4 이인상의 글씨가 아닌 것 —1215 ● 본문 수록 도판 목록 —1222 ● 참고문헌 —1236 ● 찾아보기 —1252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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