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최근에 유엔대학United Nations University 세계개발경제연구소World Institute for Development Economics Research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현재 전 세계 성인 인구 중 최상위 부자 1퍼센트가 전 세계 자산의 40퍼센트를 소유하고 상위 10퍼센트의 부자가 세계의 전체 부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반면에 하위 50퍼센트는 전 세계 부의 겨우 1퍼센트만 차지하고 있다.1 하지만 이는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과정의 일단만을 보여줄 뿐이다. 평등과 관련된 훨씬 더 좋지 않은 소식들, 따라서 우리 모두의 삶의 질에도 훨씬 더 나쁜 소식들이 날마다 줄을 잇고 있으며 상황은 날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다. 미셸 로카르Michel Rocard, 도미니크 부르Dominique Bourg, 플로랑 오갸네Floran Augagner는 2011년 4월 3일자 《르몽드Le Monde》에 실린 이라는 글에서, ‘근대적 기획의 창시자들이 지금의 사회적 불평등을 본다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힐 것이다’라고 결론을 짓는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데카르트Descartes가 살던 시대, 계몽주의 시대, 더 나아가 헤겔이 살던 시대까지만 해도, 지구상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빈곤한 지역의 두 배 이상인 곳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최고 부국인 카타르의 1인당 소득은 최빈국 짐바브웨의 428배에 이른다. 하지만 잊지 마시라. 앞의 수치는 평균 소득끼리 비교한 결과일 뿐이다. 토끼와 말을 각기 한 마리씩 준비하라는 산토끼-말고기-파테 요리법에 대한 우스개 소리처럼, 앞의 수치는 평균 소득끼리 비교한 결과일 뿐이다. 전 세계가 필사적으로 경제성장 근본주의를 밀고 나가고 있는데도, 빈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이런 현실 앞에서, 생각 있는 사람들이라면 잠시 멈춰 서서 부의 재분배로 인한 부수적 피해자들 못지않게 직접적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데다 미래도 없는 사람들과 부유하고 낙천적이며 자신감과 활력이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 강철 체력을 갖춘 겁 없는 등반가라도 건널 수 없을 만큼 이미 깊은 심연이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그 자체로 진지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로카르와 그의 공저자들의 경고처럼, 생존과 만족스러운 삶에 필요한 물건들이 갈수록 희소해지고 손에 넣기 어려워지면서 생활이 넉넉한 사람들과 버림받은 빈자들 간의 살벌한 경쟁의 대상, 아니 전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일차적 피해자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시장 경제학을 정당화하는 기본적인 도덕적 주장 가운데 하나, 즉 개인의 이윤 추구가 동시에 공익을 위한 최선의 메커니즘을 제공한다는 주장은 의혹에 싸였고 사실상 거짓으로 밝혀졌다. 최근의 금융 위기가 시작되기 전 이십 년 동안, 대부분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에서는 상위 10퍼센트의 실질 가구 소득이 최하위 10퍼센트의 실질 가구 소득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OECD 웹사이트는 OECD를 34개 회원국의 협의체로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회원국은 북미와 남미에서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걸쳐 있다. 여기에는 다수의 선진국만이 아니라 멕시코, 칠레, 터키 같은 신흥 부상국들도 포함된다. 또한 본 협의체는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은 신흥 대국과 긴밀한 공조를 하고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연안 국가들의 경제 발전에도 긴밀히 협조한다. 본 협의체의 목적은 협력을 통해 더 강하고, 더 깨끗하고, 더 공정한 세계를 건설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하위층의 실질 소득이 감소했다. 따라서 소득 격차는 눈에 띄게 확대되었다. 제러미 워너Jeremy Warner는 ‘오늘날 미국에서 상위 10퍼센트의 평균 소득은 하위 10퍼센트의 14배에 이른다’고 인정한다. 워너는 오랜 세월 동안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능숙한 수완을 열렬히 지지해왔고 편집자와 독자 모두로부터 시장이 만들어내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신뢰받는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의 부편집장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소득 불평등의 증가는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바람직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의 부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라면 반드시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 발전에서 거둔 결실의 대부분이 이미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상대적 소수에게 돌아간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2 워너의 뜨뜻미지근한 시인은 사회적 위계의 상층에 있는 사람들과 하층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급속히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조사 결과들과 공식 통계들이 줄지어 발표되던 시기에 나온 것이다. 오늘날 대중적 믿음들은 숙고나 의심, 확인 없이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치적 선언들은 낙수효과°를 대중적 믿음(이제는 더 이상 숙고되지도 않고, 의문시 되지도 않고, 검토되지도 않는)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러한 의도와 달리, 사회의 상층에 축적된 부는 다른 사람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과 자기 아이들의 미래가 더 안전하고 낙관적이라고 느끼게 하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하는 ‘낙수효과’를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이 책의 첫머리에 실린 마태복음의 한 구절이 증언하고 있듯이, 불평등의 가속적인 확대재생산 성향은 인류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불평등과 그 원인과 결과라는 영속적 문제는 매우 새롭고 극적이고 놀랍고 충격적인 출발점들로 인해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으로 부각되면서 열띤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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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1. 우리는 오늘날 정확히 얼마나 불평등한가? 2.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3. 새빨간 거짓말, 그보다 더 새빨간 거짓말 4. 말과 행위의 간극 주석 옮긴이의 말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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