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들어가는 말 인생과 고통은 하나다 이 책이 나올 수 있어서 기쁘다. 쇼펜하우어에 대한 책이어서 더욱 기쁘다. 독일 바이에른 주의 작은 도시 바이로이트Bayreuth 대학에서의 유학 시절 동안 나를 인도해 준 스승은 발터 겝하르트Walter Gebhard라는 니체 전공자였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니체와 관련한 텍스트들이었고 스승은 자주 쇼펜하우어의 텍스트를 가르치기도 했다. 니체와 쇼펜하우어는 사상적으로도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사 학위 논문은 우연히 릴케와 세기전환기의 나르시시즘을 주제로 집필했다. 부전공인 연극학에서는 바그너 축제로 유명한 바이로이트 대학의 특성상 바그너의 음악극을 중심으로 공부했다. 귀국 후에 철학 아카데미에서 이런 주제로 강의를 주로 하면서 서서히 나의 학문적 영역을 구축했다. 《나르시스, 그리고 나르시시즘》(2001), 《바그너의 혁명과 사랑》(2008/2012 개정 증보판)에 이어 지금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릴케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 역시 쇼펜하우어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이로 니체가 있다. 흥미로운 일화 중 하나는 이 두 사람이 살로메라는 여자를 사이에 두고 간접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니체는 살로메에게 청혼을 해 거절당한 일이 있었고, 릴케는 살로메와 연상연하 커플이 되어 두 번의 러시아 여행을 떠난 일이 있었다. 니체가 바그너와 쇼펜하우어 사상을 교류한 것처럼 니체와 릴케가 직접 만나 관계를 형성한 것은 아니다. 니체는 바그너를 아버지처럼 따랐는데, 바그너는 니체에게 정신적 지주였으며 학문적 스승이었다. 두 사람은 알프스의 도시 트립쉔Tribschen에서 자주 만나 밤이 늦도록 깊은 대화를 나눴다. 쇼펜하우어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둘은 공통점을 발견하고 더욱 가까워졌다.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 릴케는 같은 나무에서 피어난 꽃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들은 모두 인생을 이야기한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고통을, 바그너는 광기와 구원을, 니체는 질병과 극복을, 릴케는 죽음과 사랑을 각기 다른 예술형식으로 표현해 냈다. 철학, 음악, 연극, 문학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이들은 모두가 자신의 영역 안에서 다른 학문의 방식들을 받아들이고 해석해 내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쇼펜하우어는 생철학, 즉 인생철학 내지 삶에 대한 철학의 효시로 간주된다. 인생을 철학의 과제로 삼은 것이다. 그는 인생을 고통과 동일하다고 인식한다. 인생과 고통이 하나가 되어 그의 모든 생각들이 휘몰아치는 태풍의 중심에 서게 된다. 고통에서 시작해 고통에 의해 자기 자신을 구원한다. 동양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신의 생각이 그것의 이념과 거의 일치함을 발견하고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더욱 큰 확신을 갖는다. 그러면서 시바, 마야, 체념, 무無, 구원, 해탈, 열반 등의 개념들을 망설임 없이 자신의 글들 속에 끌어들였다. 염세주의 철학.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일컫는 말이다. 염세주의는 삶을 가치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오해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참으로 많은 오해에 시달렸다. 왜 그런 오해가 생겼을까? 편협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끝까지 읽어 낸 자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부정에서 시작해 무無로 마감한다. 고통에서 시작해 해탈로 끝난다. 자기 자신을 거부하면서도 끝까지 끌고 간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구원한다. 구원은 구원 이전의 존재 형식을 모두 거부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원 이후의 자기 자신은 구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모두가 성불成佛이 될 수 있듯이 자기 자신이 구원의 원인이 되는 셈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책장에서 자주 꺼내 읽는 책 중 하나다. 쇼펜하우어가 자기 책을 최소한 두 번 이상 읽어 달라고 부탁해서만은 결코 아니다. 마치 좋아하는 음악을 자주 반복해서 듣는 것과 같다. 그의 책에 자주 손이 가는 이유는 삶, 인생, 인간 등과 관련한 수많은 명언들이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이 책의 출판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비록 서점에서 주목받는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해도 어느 한 구석에서 방황하는 자들의 손길이 닿는 곳에 있어만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면 혼자 자기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갈 것이다. 집필될 당시의 주변 환경과 그 여건들, 개인적인 경험들, 그때 정신을 괴롭혔던 고민거리들 등은 이제 이 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라. 2014년! 참으로 많은 사건 사고들이 얽히고설킨 심란한 연도다. 이 책이 이 암울한 시기에 태어나서 행운인지도 모른다. 헤겔이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다가오는 어둠과 함께 비상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편집부로부터 10월 즈음에 출판을 계획한다는 일정을 전해 들었을 때 기뻤다. 내 생일이 있는 달이다. 억지로 엮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은 모두가 우연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탄생 이후의 모든 것은 필연이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곧 태어날 이 책에 대해 자식을 얻는 부모의 마음으로 좋은 말 한마디 남기고 싶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잘 참고 견뎌 달라고. 결코 기형아도 조산아도 아닌 너 자신에 감사하고 또 자신의 삶과 운명에 확신을 갖고 살아 달라고. 어떤 구석진 자리라 해도 절망하지 말고 항상 웃는 모습으로 네 자리를 지켜 달라고. 2014년 8월 24일 수유리에서 이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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