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문_ ‘강남 만들기’와 ‘강남 따라 하기’를 통해 본 한국의 도시화 이 책은 강남에 대한 연구서가 아니다. 강남이라는 표상을 통해 한국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도시화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한국의 현대 도시를 특징짓는 핵심적 키워드는 아마 ‘아파트’일 것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단독주택이 지배적 주거 양식이었으나, 1980년대 이후 아파트와 연립주택의 건설이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1989년부터 시작된 수도권 신도시 건설을 계기로 아파트 공급이 급격히 늘어났고, 현재는 아파트가 한국 도시의 지배적 주거 양식이 되었다. 이를 반영하여 최근 들어 아파트라는 주거 양식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사회 비평적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 칭하기도 하고,1) 아파트가 우리나라 중산층 문화 형성의 근거지로 묘사되기도 하며,2) 아파트 거주가 우리나라 도시의 공동체성을 파괴한 주범으로 지적되기도 한다.3) 신도시는 아파트와 더불어 한국의 현대 도시를 특징짓는 또 다른 중요 키워드이다. 1990년대 수도권에 분당, 일산 등의 신도시가 건설된 것을 필두로 전국에 걸쳐 다양한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1980년 제정된 택지개발촉진법이었다. 급속한 도시화의 결과로 주택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자 이 법을 통해 대규모의 신도시를 계획적으로 개발하여 신속하고 저렴하게 택지를 공급하고자 했다. 1981년 11개 지구가 최초 지정되어 개발된 이래, 2016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에 총 771개의 택지개발지구가 지정되었고, 이 중 617개 지구가 준공되었다. 2016년 말 현재, 택지개발사업을 통해 공급된 전체 택지의 면적은 우리나라 도시지역 육지부 면적의 2.5퍼센트를 차지하고, 우리나라 도시 지역 인구의 약 24.4퍼센트가 택지개발사업으로 공급된 택지에 거주한다. 요약하면,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도시화 과정은 고층의 아파트 단지와 신도시 건설이라는 2가지 특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도시화의 특징은 1970년대 강남이라는 신도시의 개발 이후 강남식 주거 환경과 도시적 삶을 지향하고 욕망하면서 이를 공간적으로 복제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이다. 그런데 이러한 강남을 모방하는 과정을 아파트 단지, 신도시, 택지지구 등과 같은 물리적 도시 공간의 건설을 통해 강남식 도시 공간을 물리적으로 복제하는 것으로만 국한하여 이해해서는 안 된다. 도시는 고층 건물, 아파트, 직선의 도로 등으로 구성된 물리적 실체로 우리 앞에 가시화되어 나타나지만, ‘도시적인 것the urban’은 물리적 건조 환경built environment을 넘어 사람들의 생활양식, 사고방식, 사회적 관계의 특성 등과 관련된 훨씬 더 포괄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도시의 실제 물리적 형태, 도시에 대한 가시화된 이미지, 도시의 생활환경과 삶에 대한 담론적 재현representation, 도시에 대한 특정한 방식의 이론화된 논의와 개념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시적인 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게 하고, 도시적 삶에 대한 특정한 규범적 이상을 가지도록 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지니기도 한다. 특히 ‘강남’은 특정한 방식의 도시적 삶과 욕망을 표시하는 기호이다. 지주형은 이 책에서 강남이라는 장소를 통해 표상되는 도시성의 주요 특성으로 고급 고층 아파트의 경관, 자산 증식 수단으로서의 아파트의 환금성, 중상 계급이 선호하는 주택 형태로서의 아파트, 정치적 보수성, 경쟁주의, 주거지역 내의 유흥 문화의 집중 등을 들었다. 이와 더불어 사교육과 같이 사회적 출세와 성공을 위해 필요한 중요 인적?문화적?사회적 자본의 집중,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해 지니는 상대적 우월감 등도 강남이라는 장소를 통해 표상되는 한국의 중요한 도시성이다. 이러한 강남 스타일의 물리적 경관과 건조 환경, 그리고 강남식 도시성은 서울의 ‘강남’이라는 장소에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특성으로 남아 있지 않고, 한국의 도시 중산층이 꿈꾸고 지향하는 도시적 이상과 욕망이 되어 전국 곳곳의 도시에서 추종되고 복제되고 있다. 그 결과로 ‘대구의 강남’, ‘부산의 강남’, ‘진주의 강남’ 등과 같이 한국의 모든 도시에는 ‘강남’ 스타일의 물리적 경관과 도시적 삶을 지니는 것으로 여겨지는 신도시가 등장하여 중산층의 도시적 욕망을 반영하고, 동시에 자극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강남 스타일의 도시적 공간과 건조 환경을 복제하여 건설하고, 강남 스타일로 여겨지는 삶의 방식을 바탕으로 도시를 규정하고 상상하며, 강남 스타일의 도시 공간을 욕망하고 소비하는 과정이 전국화되면서 한국의 도시화 과정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강남화gangnam-ization’라 칭한다. 강남화는 특히 두 가지 과정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강남을 물리적으로 건설하고 담론적으로 재현하는 ‘강남 만들기’의 과정이고, 둘째는 강남 건설의 과정에서 형성된 신도시 건설의 제도적 장치와 강남에 대한 재현에 바탕을 둔 도시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강남 이외의 공간에서 강남식 도시 공간을 복제하는 ‘강남 따라 하기’의 과정이다. 그런데 이 두 과정은 개념적으로는 나뉘지만 실제의 도시화 과정에서는 분리되어 작동하지 않고, 서로 깊이 연결되어 상호 규정적으로 이루어진다. 강남 이외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강남 따라 하기’의 과정은 당연히 강남이라는 장소가 만들어진 실제의 역사적 경험과 그곳에서 형성된 도시적 삶의 원형을 전제로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참조하고 복제하는 강남은 강남 바로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상상하고 욕망하는 강남의 재현물이다. 특히 강남이라는 장소가 재현되고 이해되는 과정은 강남 이외의 장소에서 강남을 따라서 신도시와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강남이 호명되고, 상품화되고, 소비되는 방식에 의해 깊이 영향받는다. 즉, 강남이 무엇인지, 강남이 어떠한 곳인지 상상되고 이해되는 방식은 강남 사람들에 의해 실제로 수행되는 공간적 실천뿐만 아니라, 강남 이외 지역의 사람들에 의해 강남이 상상되고, 욕망되며, 재현되는 과정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강남 만들기’와 ‘강남 따라 하기’의 과정은 서로를 규정하면서 강남이라는 특정한 도시적 상상과 욕망을 만들어내고, 한국의 도시화를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 현재 한국의 도시에서 서민들의 삶은 투기 지향적 도시 개발로 인한 부동산 가격의 앙등, 전월세난과 주거비 상승으로 인한 주거 위기의 심화, 도시 공간의 상품화로 인한 쫓김과 내몰림 등과 같은 문제로 인해 매우 피폐하고 불안정하다. 이 책은 이러한 도시 위기의 한 원인이 ‘강남화’로 특징지어지는 한국의 도시화 과정이라고 바라본다. ‘강남 만들기’와 ‘강남 따라 하기’의 복합적 과정을 통해 현대적 신도시에 위치한 대규모 단지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이를 소유함을 통해 부동산 가치 상승에 의한 투기적 이득을 얻는 것이, 그리고 그러한 신도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사교육, 인맥 등과 같은 사회?문화적 자본을 확보하는 것이 한국의 발전주의적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중산층의 지위를 획득하고 안정적 삶을 누릴 수 있는 코리안 드림을 완성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이 한국 사회에서 공고화되었다. 결국 강남화의 과정은 한국의 도시 중산층을 부동산 가치의 상승에 의존하는 투기적 주체로 구성했고, 이는 투기 지향적 도시 개발이 한국의 지배적 도시 패러다임이 되도록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책에 수록된 ‘강남화’ 관련 글들이 이러한 한국 도시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실천적 대안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 배 균 각주)----------------- 1) 발레리 줄레조, 길혜연 옮김, 《아파트 공화국: 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 후마니타스, 2007. 2) 박해천, 《아파트 게임: 그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이유》, 휴머니스트, 2013. 3) 박철수,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마티, 2013.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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