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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인간학 사기

불멸의 인간학 사기

사마천

(도서출판)서해문집·2009-10-01

  • 역사
  • KDC 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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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해제 진秦나라에 의한 천하통일은 이후 2천 년에 걸친 중국 왕조 체제의 출발점이 된다. 영정?政( 훗날의 시황제始皇帝)의 출생부터 진秦 제국이 멸망하기까지 5십여 년간의 극적인 전환기를 이 책에서 다룰 것이다. 사상 최대의 변혁기였던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처음으로 통일 제국이 건설된 것은, 물론 역사상 큰 흐름의 결과이겠지만 시황제 영정이라는 유례가 없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 잔인하고 비정해 보이는 냉철함으로 무장하고,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말살시키며, 천하통일을 향해 돌진한 시황제의 모습에서 인간을 초월한 일종의 마성魔性을 느낄 수 있다. 진 제국은 시황제의 힘으로 그려낸 그림이었기 때문에, 그가 사망하면서 일거에 와해되고 말았다. 한漢나라의 사상가 가의賈誼는 《과진론過秦論》에서, “진나라가 자국의 영토를 확실히 유지하고, 서민 생활을 안정시키고, 제후들이 피폐해지기를 기다려 천하를 호령했다면, 아무 근심 없이 천하를 유지했을 것이다.”라고 했지만, 그런 느긋한 방책은 시황제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시대의 열기 또한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에 지친 천하의 민중들은 오직 왕에 의한 통일만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6국의 멸망, 즉 전제 왕조의 확립이라는 급격한 정치 체제의 변화는 사회에 여러 가지 불화를 낳았고,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급변하게 만들었다. 여불위呂不韋와 이사李斯 같이 가장 높은 지위에 오름과 동시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사람도 있었으며, 장량張良처럼 멸망한 한韓나라 명문 귀족으로 태어나 사내다운 용기를 필요로 하는 무리에 뛰어든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도 시황제 자신이, 강력한 권력과 그 뒤에 가려진 어둠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시황제의 생애만큼 독재 체제의 허와 실을 분명히 알려주는 것은 없다. 01 천하통일의 길 진나라 천하통일의 대업은 영정 1대에서 완성되었던 것은 아니다. 영정이 태어나기 전인 기원전 260년, 맹장 백기白起가 장평長平의 전투에서 조趙나라에게 대승을 거두면서, 다른 6개국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얻게 된다. 전국戰國시대 중기(기원전 353~285년)에는 진秦@초楚@제齊, 3국의 구조였다. 이 시기는 외교 책략의 암투기였는데, 합종책合從策과 연횡책連衡策도, 실제로는 제@초 연합이라던가 진@제 연합, 진@초 연합이라 하여 결국 3대 강대국 가운데 두 나라가 동맹을 맺어 다른 나라에 대항하며, 힘의 균형을 붕괴시키기 위한 정책들이었다. 전국시대 말기에 와서 가장 먼저 제나라가 탈락한다. 연나라 명장인 악의?毅가 인솔한 6개국 연합군에 대패하여(기원전 284년), 멸망 직전까지 몰린 제는 두 번 다시 패권 쟁탈전에 등장하지 못한다. 게다가 6년 후, 진나라 명장 백기가 초楚나라 도읍 영?을 함락시키자, 초는 어쩔 수 없이 진陳으로 천도하였다. 동시에 백만이라 일컬어졌던 군대도 불과 10만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배후를 위협하는 위험 요소가 사라진 진秦나라는 조趙@한韓@위魏에 공세를 강화하여, 장평 전투에서 조나라 병사 40만을 매장시킴으로써 천하통일로 가는 결정적인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서쪽의 후진국에 불과했던 진나라가 천하를 지배한 강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상앙商?의 개혁 이후 ‘역경역전力耕力戰(농업을 중시하여 전쟁의 기반으로 삼는다)’을 중심으로 한 부국강병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며, 특권을 가진 세습 귀족을 억제하여 중앙집권제를 확립시켰기 때문이다. 진이 6개국에 비교해서 순조롭게 개혁을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광대한 배후지를 가지고 있었던 점, 둘째, 민족적 습성이 중원 제국과는 달리 소박하고 사치스러운 생활과 동떨어진 점, 셋째, 전통적인 귀족 세력이 비교적 약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조건은 진나라를 후진국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나라는 남보다 뒤쳐진 조건을 거꾸로 뒤집어, 오히려 선진적인 국가로 만들었다.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50여 년의 치세 동안 재상 범저范雎, 장군 백기를 기용하여 진나라 패권의 기초를 다졌으나, 그의 말년에 진을 방문한 순경荀卿(순자荀子)은 당시 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진의 풍속을 보면, 백성은 순박하고 음악은 부정不淨하거나 음탕하지 않으며, 복장 또한 화려하지 않다. 관리를 경외함과 동시에 순종적이어서, 분명 예로부터의 이상적 백성이었다. 지방의 관아에 가보면, 모든 관리들이 숙연하고, 공검恭儉@독경篤敬@성실하게 상전을 모시고 있다. 바로 예로부터 이상적으로 여겨온 세상의 관리다. 도시와 사대부를 보면 자택과 관아를 왕래하면서 개인의 업무를 보는 일은 전혀 없고, 사적인 무리를 만들지 않으며, 정무에 정통하여 공명정대하니 바로 이상적 세상의 사대부라 하겠다. 게다가 조정을 보면, 정숙한 가운데 여러 가지 일이 물 흐르듯 결재되어 정체되지 않고, 마음이 편안하여 어디에서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분명 이상적 세계의 조정이다. 그러니까 4대에 걸쳐 타국에 우위를 지킨 것은 결코 행운이 아니라,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순자》, ) 13세의 영정이 진나라 왕위에 오를 때, 진은 본래의 관중關中 지역 외에, 남쪽으로는 파巴@촉蜀@한중漢中, 그리고 초楚의 옛 영토였던 완宛@영?을, 북쪽으로는 위魏@조趙에서 빼앗은 하동河東@태원太原@상당上? 등을 직할지로 삼아 점유하고 있었고, 토지와 인구 면에서도 다른 6개국을 압도하고 있었다. 게다가 촉 땅은 소양왕昭襄王 시기 이빙李?이라는 태수가 대규모의 수리 공사를 시작하여(이 유적인 도강언都江堰은 현재에도 남아 있다), 사천四川 분지를 ‘옥야천리沃野千里’, 즉 비옥한 드넓은 평야로 변모시켰다. 또 관중도 정국거鄭?渠(‘이사’편에서 상세히 설명)의 완성으로 생산력이 한층 높아졌다. 사마천은 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관중은 천하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3할에 불가하지만 재력은 6할을 차지하고 있다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후진 지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급격한 성장을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급속한 진의 성장은 날쌔고 사나운 군대를 집결시켰고, 다른 제국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었다. 선진 지역 사람들의 눈에는 자신들과는 다른 나라, 즉 로 비춰지고 있었다. 영정이 태어났을 무렵, 조나라에서 유세했던 노중련魯仲連은 이렇게 소리 높여 매도했다. 진나라는 도의道義 등은 안중에도 없고, 사람 머리를 취하는 것에서 명예와 만족을 얻는 민족성을 지녔다. 당근과 채찍으로 전사들을 훈련시키고, 노예인 외국 사람을 혹사시킨다. 이러한 진왕이 제멋대로 설치고 그런 군주를 칭송하는 학정이 천하로 확대된다면, 나는 동해에 몸을 던져 죽을 것이다. 염치도 없는 진나라 국민이 되면 오래 살지 않을 것이다.(《전국책戰國策》, ) 그렇지만 이미 천하통일의 움직임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였다. 전국시대 2백 년 동안에 수륙水陸 교통은 엄청나게 발전하였고, 그것을 이용한 상업적 네트워크는 전국적인 규모가 되었다. 분열과 와해는 큰 장애라고 느끼게 되었다. 농업 면에서도 대하천大河川의 치수 공사 덕분에 통일적인 관리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계속된 전란에 질려 피곤해진 국민들이 평화를 희구하고 천하통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이 치세 55년 만에 세상을 떠난 뒤, 효문왕孝文王(안국군安國君)─장양?襄왕(자초子楚)─영정으로 이어지며 불과 4년마다 군위君位가 바뀌었다. 그리고 영정이 20세가 되었을 때부터 일사천리로 통일을 향한 진격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230년 한을 멸망시키다. 기원전 228년 조를 멸망시키다. 기원전 225년 위를 멸망시키다. 기원전 223년 초를 멸망시키다. 기원전 222년 연을 멸망시키다. 기원전 221년 제를 멸망시키다. 이리하여 영정은 통일제국을 수립하고, 스스로 시황제始皇帝라 칭하게 된다. 02 진의 통일 정책 진 제국은 불과 15년 만에 멸망한다. 그 때문에 진의 통치를 ‘학정虐政’이라는 시선으로 평가해왔다. 하지만 진의 통일이 중국 고대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엄청난 것이다. 그 이후 중국에서는 때로는 이민족의 침입이 있었거나 분열과 혼란의 시대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는 한민족漢民族의 통일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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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제1장 황제의 길 : 절대 군주를 만든 사람들 [ 이 책의 시대적 배경 ] 출생의 비밀 시황제와 여불위(1) 어린 군주│“진귀한 보물을 얻었다”│여자의 마음을 얻 다│시황제의 출생에 얽힌 비밀 아버지와의 싸움 시황제와 여불위(2) 진왕정의 즉위│여불위의 전횡│거대한 남근의 효용│진 왕, 모친을 처단하고 자립하다│권신의 비극적인 말로│ 소년에서 왕으로 절대군주를 키운 사람 이사李斯.한비韓非.왕전王. 창고의 쥐와 변소의 쥐│내부를 혼란케 하고 밖으로부터 공격하라│이웃나라 사람도 도움이 되는가│천하를 통일 하려면 도량이 커야 한다│그 밖의 진나라의 이익│통일 제국의 브레인, 한비│절대자와의 만남│잔인한 이의 사 려│왕전 부자의 눈부신 활약│은퇴한 노병, 다시 돌아오 다│축재에 열중하는 진짜 이유│방심한 틈을 이용하라 제2장 진시황 천하의 빛과 그림자 제국의 시대 새로운 지배자의 모습 황제와 제국 한韓.조趙를 멸하다│연燕도, 위魏도, 초楚도 제齊도 멸 망하다│시황제란 명칭의 유래│진은 수덕을 따른다│권 력은 모두 황제에게│도성 함양에 궁전을 짓다│아방궁 의 착공│분서(焚書)의 권고 인간을 초월한 자 방사方士와 봉신封. 신선을 그리는 마음│방사의 도주│학자들을 생매장하다 │황제의 동방순행│바다 속에 있는 신산│제왕의 봉선 의식│시황제의 봉선│방사의 술책 제3장 시황제의 죽음과 후계 : 진 제국을 와해시킨 사람들 죽음의 도래 시황제의 최후 계속되는 불길한 징조│최후의 발버둥│썩는 냄새가 심 하다 유해를 둘러싼 야심 조고趙高와 이사李斯 시황제의 마지막 부탁│조고의 무서운 음모│이사의 불 길한 예감│승상 이사의 향배│이사, 결국 굴복하다│시 황제의 능묘 제4장 제국의 멸망 : 반란의 시대 길을 잃고 달리는 2세 황제 호해胡亥 조고의 진언│공포 정치│“하늘이 알까나, 나는 죄가 없 다”│학정과 반란│반란을 진압하다│모습을 감춰버린 2 세 황제 공신의 몰락 이사李斯 조고의 간사한 계략│때늦은 이사의 상소│충신의 억울 한 죽음│이사, 형장의 이슬로│사마천의 비평 패망 그리고 멸망 자영子.의 비극 전선부대의 배반│말이냐 사슴이냐│2세 황제의 최후│ 간신 조고의 마지막 길│진나라 결국 멸망하다 음모의 소용돌이 몽염蒙恬과 부소扶蘇 몽씨 형제의 출세│가짜 조서로 부도를 죽이다│감금당 한 몽씨 형제│자결 명령│마지막 호소도 헛되이│몽염 의 최후│백성의 힘을 얕보다 제5장 반역자들의 대두 진승과 오광, 유방, 항우 반역의 출발점 진승陳勝, 오광吳廣 홍곡鴻鵠의 뜻 어차피 한 번 죽을 바에야 기치를 높이 들다 진격, 그리고 좌절 각 지방의 독립 진승과 오광의 죽음 남은 이야기 과거의 친구 죄인출신 경포.布 항우의 분전 거취를 분명히 하지 못하다 애첩에 대한 의 심부터 처음 만난 하사下司의 생각은 “황제만을 바랄 뿐” 살육의 주역 산적의 형님뻘 팽월彭越 지각하는 자는 처형하라 불랑배 집단, 독립하다 “공짜로 는 움직이지 않겠다” 일이 뒤집어지다 은의恩義에 살다 난포欒布 은인을 위해선 목도 아깝지 않다 괴로울 때에는 허약한 귀공자 위표魏豹 위나라 공자로 태어나다 반란의 끝 난세에 흩어진 우정 장이張耳와 진여陳餘 두 명의 젊은이 진승의 반란군에 참가하다 조나라의 고 관이 되었다 사이가 틀어지다 결정적 대립으로 진여의 죽음 두 친구는 왜 대립했는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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