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머리말 착취 현실 은폐하는 조작된 용어들 한국 자본가계급의 끈끈한 연합체이자 불법 상속자들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에 ‘한국경제연구소(한경연)’라는 기관이 있다. 명문대 출신 연구원들과 어용교수들이 모여 자본가들에게 계급투쟁의 방어논리를 제공하는 곳이어서 전경련의 ‘씽크탱크’라 불리는 곳이다. 예를 들면 이들은 “경제민주화는 과잉규제를 불러 온다”고 생떼를 부린다. 또 “비정규직보호법은 비정규직해고법”이라며, 허울뿐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의무’ 규정도 폐지해야 한다는 억지논리를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자본가들의 철옹성 같은 기득권에 티끌만큼이라도 손상이 날 것 같으면 온갖 교묘하고 허접한 논리를 개발하여 퍼뜨리는 곳이 바로 한경연이다. 바로 그곳에서 2013년 4월 25일에 ‘바른 용어를 통한 사회통합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연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한경연 사회통합센터 현진권 소장은 “우리 사회는 바른 용어를 쓰지 않는 데서 혼란과 갈등이 생기며 이것이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짐짓 ‘국립국어원’의 토론회 주제를 연상케 하는 화두를 던졌다. 또한 토론자로 참석한 신중섭 교수(강원대 윤리교육과)는 당시 토론회의 의도를 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시장과 관련된 용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함축돼 시장경제를 확산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그랬다. 이들이 생각하는 ‘바른 용어’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긍정적으로 선전하는 용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날 전경련 ‘씽크탱크’의 조준경에 포착된 것은 정부 정책도 아니고 법도 아니었다. 그것은 발 없이도 천 리를 간다는 ‘말’이었다. 이미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 구축한 언어를 이용하여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만, 그 언어세계에 작은 균열이라도 생길까 봐 불편하고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말들이 한국 자본가계급의 심기를 그토록 불편케 했던 것일까.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로, ‘재벌’은 ‘대기업집단’으로 바꾸어 부르자?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자본가’로 불리는 걸 꺼린다. 그 때문에 스스로를 ‘경제인’이라 부른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지배하는 사회시스템을 ‘자본주의’라 부르는 것도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라는 용어 대신 ‘시장경제’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정작 ‘약육강식 자본주의’는 ‘조화 자본주의’로, ‘승자독식 자본주의’는 ‘소비자선택 자본주의’로 부르자고 함으로써 스스로의 제안을 깨버렸다. 게다가 ‘정글 자본주의’는 ‘상생 경제’로 바꾸어야 한다며 일관성 없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한편 ‘씽크탱크’의 기관사들은 ‘자본’의 대안 용어로 제시한 ‘시장’이라는 말도 불안하게 생각되었는지 ‘시장점유율’은 ‘소비자선택률’로, ‘시장지배자’는 ‘소비자선택자’로,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소비자선택 사업자’로 바꾸자고 했다. 자신들의 과도한 시장 독점에 스스로도 발이 저렸던 듯하다. 그 때문에 ‘소비자’라는 수동적 존재 뒤에 숨어서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면해보려고 얄팍한 꼼수를 부린 것이다. 한편 한경연은 대기업에 부정적 의미를 씌우는 ‘재벌(財閥)’은 ‘대기업집단’으로 쓰자고 제안했다. 재벌은 일본의 ‘자이바쯔’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전에는 ‘재계에서 큰 세력을 가진 독점적 자본가나 기업가의 무리, 또는 일가나 친척으로 구성된 대자본가의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에서는 계열기업들의 자산 규모 합계가 5조 원 이상인 기업군(群)을 이미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중적으로는 ‘재벌’이라는 말이 통용되자 대자본가들은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이밖에도 한경연은 자본가들의 기업 활동과 관련된 부정적 용어들을 긍정적인 용어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예를 들면 ‘과당경쟁’은 ‘시장경쟁’으로, ‘자유방임주의’는 ‘불간섭주의’로, ‘낙수효과’는 ‘소득창출효과’로 바꾸자는 것이다. 반대로 대중에게 긍정적인 느낌을 줄 것이라 여긴 용어를 부정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다. 예컨대 ‘보호무역주의’는 ‘무역규제주의’로, ‘보수와 진보’는 ‘우파와 좌파’로 변경하자고 했다. “최소한 중립적이거나 친자유주의적인 의미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신중섭 교수의 발언처럼 자본가계급의 입장만을 노골적으로 거들고 있는 것이다. 기존 용어 조작 사례 전경련 ‘씽크탱크’의 이와 같은 용어 조작 시도에 대해 SNS에서는 거센 비판과 함께 패러디가 줄을 이었다. 예컨대 “전경련의 단어 제안은 언어도단이며 여론 조작”이라 비판했고, “도둑이라는 용어 대신 ‘각종 유무형자산 위치변경인’으로 바꾸면 어떨까?”라는 패러디도 나왔다. 또 “회장님 횡령은 ‘자기적선’, 배임은 ‘아! 실수’ 이렇게 불러주리?” 하고 비아냥거리는 네티즌도 있었다. 사실 한경연의 용어 조작 시도는 누가 봐도 억지스러운 한편의 저질 코미디였다. 오히려 자본가들 스스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칠한 해프닝으로 끝난 셈이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건 이미 오래전에 조작되어 사회성을 획득하고 보편적으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용어들이다. 그 대표적인 용어가 바로 ‘근로자’이다. 여기에는 ‘노동자’라는 보편적 용어를 불온시하고 적대시하는 이데올로기가 날것으로 드러난다. 한편 이승만 정권은 노동기준법이 아닌 ‘근로기준법’을 제정했다. 박정희 정권은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무 의욕을 높인다는 취지로 ‘근로자(勤勞者)의 날’ 제정했다. 잉여노동을 강탈한 자들이, 잉여노동을 강탈당한 자들을 위로하다니! 물론 거기에는 노동자 자신의 인간적 권리에 대해 입 다물고, 노동조합 활동이나 정치 활동 따위는 꿈도 꾸지 말고,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일만 하라는 강력한 암시가 들어 있다. 그런 말이 지금도 행정적, 법적 용어로 버젓이 쓰이고 있다. 요새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경제민주화’라는 말도 다분히 현실을 은폐한다. 경제민주화에는 필히 두 가지 전제가 따른다. 첫째, 정치와 경제는 분리된 영역이라는 것. 둘째, 정치민주화는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는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정치는 경제의 현상이고, 경제는 정치의 본질이다. 본질이 바뀌어야 현상이 바뀐다. 따라서 정치민주화는 경제민주화라는 필요조건이 선행해야 한다. 사실 그들이 말하는 정치민주화란 군부독재를 자본독재로 바꾼 것을 뜻한다. 더불어 그들의 경제민주화란 ‘재벌자본독재’를 ‘일반자본독재’로 희석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경제민주화는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가 자본가를 구축(驅逐)한 뒤 스스로 경제의 주체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 이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를 의미하며, 당연히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야 하는 일이다. 입으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 이들에게 과연 그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착취 은폐하는 용어 조작의 메커니즘 말에도 신분이 있다. 옛적에는 임금의 말과 백성의 말이 다르고, 양반의 말과 상놈의 말이 달랐다. 예를 들어 ‘밥’ 하나를 가지고도 임금이 먹는 밥은 ‘수라’, 양반이 먹는 밥은 ‘진지’, 머슴이 먹는 밥은 ‘입시’라 했다. 한편 절대 권력자로서 ‘임금이 쓰는 말’을 어용(御用)이라 했다. 임금에 대한 극존칭의 뜻을 가진 ‘어(御)’는 본래 ‘짐승을 길들이다, 다스리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임금은 백성을 길들이고 다스리는 절대적인 존재임을 나타낸다. 오늘날에도 적대적인 계급은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물질적 힘을 가진 지배계급은 시시때때로 용어를 조작하며 끊임없이 착취 현실을 은폐한다. 사회의 물질적 힘을 지배하는 계급은 사회의 정신적 힘도 지배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때려잡고, 이데올로기로 교육한 뒤, 일상적인 용어 조작으로 피지배계급의 내면에 복종을 심는 것이다. 오늘날 거기에 앞장서는 것들을 일러 ‘어용’이라 부른다. ‘어용노조’, ‘어용학자’, ‘어용단체’, ‘어용예술’처럼 어용은 지배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일컫는다. 이러한 어용의 원조는 일제강점기 조선어 말살정책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조선의 엘리트들이었다. 그 전통이 자본주의 말기 시대인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일제강점기 어용이 민족 간의 식민지 질서 유지에 기여했다면, 오늘날의 어용은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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