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막달레나의집은 참으로 가난했으나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이 이 집에서 가족을 이루어 공부하고, 건강을 회복하고, 때로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고, 세상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는 등 그 모든 삶의 과정을 다 살아 냈으니 말이다. 막달레나의집은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고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는데 우리의 뜻에 공감하는 적은 수의 후원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꾸준히 보내 준 덕분으로 지냈다. 참 신기하게도 쌀이 떨어지면 누군가가 쌀가마니를 들고 나타났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돈이 없으면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후원금을 주었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는 늘 가난했으나 단 한 번도 가난 때문에 비참한 적이 없었다. 막달레나의집은 그 어떤 통계와 실적으로부터도 ‘해방구’였다. 우리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대신 우리 식의 기록을 남겼고, 그 기록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곤 했다. 당시 우리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았기에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가족이 되었고, 이웃이 될 수 있었으며 또한 혁신적인 대안들을 추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함께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물론 성매매 공간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이었으나 때로는 펨푸나 업주 등 누구와도 돕고 나누는 삶을 살았다. 성매매집결지 한복판에서 여성들과 집단상담훈련을 하거나 회의를 할 수 있었고, 맘 내키면 식구들과 혹은 밤샘 영업을 마친 여성들과 새벽 바다를 보러 떠나기도 했다. 물론 가슴 아픈 날들도 많았으나 돌이켜 보면 용산에서 우리는 신명나는 세월을 보냈다. 2004년에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면서 전에 없이 적극적인 관련 정책이 만들어지고 관련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대책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막달레나의집은 2005년 정부방침에 따라 인가시설로 전환하며 드디어 보고서, 실적, 통계, 예산, 증빙자료 등의 낱말들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식구’들이 ‘입소자’가 되면서 ‘큰언니’라는 단일한 호칭은 기어코 ‘원장님’, ‘대표님’, ‘이사장님’ 등이 되었고, ‘언니’ 혹은 ‘동생’이던 실무자들은 ‘선생님’, ‘상담원’이 되었다. 전에는 오 년도 좋고 십 년도 좋고 됐다 싶을 때까지 식구가 되어 살 수 있었건만, 이제는 일 년만 살아야 하는 법적 근거가 제시되었다. 막달레나의집으로 시작된 지원시설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보듬네, 상담센터, 너른쉼터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거치며 교육비에서부터 의료비, 법률지원비 등 여성들의 자활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분명 많아졌으나 우리는 그 행정 절차를 따라가는 데 숨이 턱턱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정책과 현실의 간극에서 우리는 수없이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나?’ 되뇌며 지금 걷고 있는 길을 돌아보곤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막달레나의집을 거쳐 간 옛 식구들이 나타나 길동무가 되어 주곤 했다.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으나, 세월이 보태어질수록 우리 식으로 사랑하고, 우리 식으로 믿으며, 우리 식으로 기다리는 것의 의미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막달레나의집을 찾는 이들은 늘 물었다. 그래서 몇 명이 이 집에서 자활에 ‘성공’해 나갔는지, 몇 명이 성매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이루었는지 다들 알고 싶어 했다. 한데 정말 미안하게도 우리도 그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었으며, 성공에 대한 척도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2005년 이후 정부보고서에 쓰는 통계가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성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했을 뿐 그 여성들의 인생 전반을 평가한 것은 아니다. 감히 우리가 누구의 인생을 평가할 만한 자격이 없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강산이 변할 만한 세월 정도는 거쳐야 ‘참’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우리의 경우는 그러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여성들과 살아온 시간들을 더듬으며 이 이야기를 책으로 엮게 된 것이다. 본래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인 2000년에 막달레나의집 설립 십오 주년을 기념해 첫 선을 보였는데,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또한 우리가 이 긴 시간 동안 잘 살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이 책에는 성매매와 관련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단언하기 어려운 길고 복잡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막달레나의집에 살았던 여성들, 용산 성매매집결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식구’로 또는 ‘이웃’으로 나누었던 세월들이 담겨 있다. 이게 다 사람 사는 모습이니 우리 살아온 이야기가 그리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데 이 별것 아닌 이야기들이 성매매를 둘러싼 충격 보도에 익숙하거나 혹은 위기와 좌절을 이겨 낸 여성들의 성공수기를 기대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낯설 수도 있겠다. 차마 우리는 성매매를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성 판매를 하는 여성들에게 당장 성매매를 그만두라고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위’를 배반한 막달레나의집은 종종 오해를 샀으며 ‘당신들 입장이 도대체 뭡니까?’라는 질문을 무수히 받아야만 했다. 그때마다 우리 중의 누군가는 ‘입장 없음이 우리의 입장’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막달레나의집은 도무지 단일한 입장을 정리해 내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입장을 가져 보려 노력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우리는 여성들과 함께 살며 같이 울고 웃고, 더러는 도우면서 생애의 과정을 보냈을 뿐이다. 그렇게 만난 우리들은 어느덧 ‘시절인연’을 살아갔다. 우리가 누군가를 막달레나의집으로 꼬실 때면 우선 집으로 데리고 와 다 낡은 둥근 밥상의 식구들 틈에 끼어 앉혀 콜콜한 김치 곁들인 밥을 실컷 먹이는 게 첫번째요, 두번째는 바로 이 책을 건네는 것이 수순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써도 안 넘어 오는 이는 내 기억에 별로 없었다. 밥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 사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은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들의 협력자가 된 사람들도 많았다. 막달레나의집에 오는 여성들 역시 처음에 오면 누가 권하지 않아도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자신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에 밤새 이 책을 읽다가 눈이 퉁퉁 붓는 식구가 있는가 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 이 책을 끝내지 못하고 던져 버리는 식구들도 있었다. 다시 찍어 내기를 여러 번이었고, 만든 지 십년이 된 책이니 이제 그만 접을 때도 됐으려니 싶었는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그린비에서 그동안 ‘음지의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을 ‘양지’로 끄집어내 주겠다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린비가 이런 촌스러운 여자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쓰는 참 착한 출판사라는 전부터 이어지던 우리의 믿음은 이를 계기로 더욱 강해졌다. 이 책은 이옥정이 말하고, 엄상미가 썼으며 그린비가 만들었으나 실제로는 막달레나의집을 중심으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채운 이야기이다. 그들은 용산의 한 작은집에 불과한 막달레나의집이 사실은 삶의 오묘함과 신비함의 기적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작은 우주였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다시 책을 펴내며 작은 바람이 있다면 지금껏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동정받던 어떤 이들의 삶 속에도 눈물과 웃음, 사랑과 미움, 고뇌와 희망이 공존한다는 걸, 그래서 이들의 삶 역시 행복을 추구하는 여느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2010년 가을, 용산 성매매집결지 업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스프레이 글씨로 ‘공가’라고 쓰인 업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해 겨울, 우리는 성매매집결지 한복판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고별미사를 열었다. 아직까지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여성들, 우리와의 인연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한 여성들이 참석했다. 마시던 소주병을 던지며 욕설을 퍼붓던 여성도, 우릴 보면 재수 없다고 소금을 뿌리던 업주도, 쉼터까지 따라와 협박하던 건달도, 가게 주인들도 우리와 한 동네 사는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김치를 담그고, 함께 빨래하고, 함께 학부형이 되기도 했다. 기쁨과 슬픔, 외로움도 함께 나누며 나눔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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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_막달레나공동체가 꾸려온 작은 마을?04 책을 펴내며?16 1부 | 수녀와 아줌마, 수상한 집을 열다?25 냄비 혹은 기계로 불리는 여성들?26 | 문 열어 주는 수녀?31 업주들과 치른 힘겨루기 싸움?37 | ‘콩알’에 취하는 엄마?44 새벽 귀신과의 해후?54 | 우리 집 박사 1호?61 기술원으로 간 저금통장?69 | 큰 언니 포주 아니에요??74 담뱃불 붙여 주는 추기경?83 | 막달레나가 ‘성녀’야, ‘석녀’야??91 2부 | 소금벼락 맞으며 떠난 아름다운 동행?95 벽제 화장터의 단골손님?96 | 이제 편안히 천당으로?104 하늘도 무심한 인태와 경희의 죽음?113 성매매집결지의 아이들과 이상한 이모?119 | 현숙이가 부른 소복행렬?125 수녀와 밴드?136 | 노름판돈이 되어 버린 나의 미국 출장비?144 용산역 깡패 금순이가 맺은 부부의 정?150 | 참기름과 아이스크림?157 포주 전 씨를 위한 기도?162 3부 | 어디에 있든, 어떤 삶을 살든 당신을 응원하리?167 나도 애기 낳을 거야?168 | 가두는 것이 능사??173 신문지 매타작?179 | 손님 맞는 혼례 한복?184 슬픈 대물림?189 | 하늘 길의 오이 마사지?195 노름 금지 각서?201 | 정신 장애인과 함께 살기: 국가 보안 위기?206 켜는 버릇보다는 끄는 게 백 번 낫다?211 축복이 된 이름, 레나와 요한?219 | 꿈에 관한 보고서?227 4부 | 맛있는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235 나 반장과 손목 긋는 선아?236 | 보듬네 안달자의 기적?245 암이 아니라 똥, 떵, 어, 리!?253 | 순옥이의 가출수난사?258 “돈 많이 버세요, 딸꾹~”?266 | ‘따락길’ 현미 다시 돌아오다?273 성매매방지법 때문에 배신자가 된 막달레나?282 청파동 시스터즈?290 | 하늘 아래 우리 집 한 칸?296 어떤 죽음을 추모하기?304 | 판도라, 우리 동네 사진작가들?309 오, 신기한 밥상?316 부록_희망의편지?325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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