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옮긴이 서문 / ‘멀다’와 ‘가깝다’ 사이 1 3월 11일, 지진이 일본 도호쿠 지역을 강타한 날 일본의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는 메일을 보냈다. 하루 이틀에 걸쳐 다들 답장을 보내줘 일단 안심할 수 있었다. 나는 도쿄에서 2년 가까이 생활한 적이 있다. 그 동안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이따금 지진이 일어났다. 뉴스에 지진 속보가 올라오는 것은 낯설지 않은 일상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번 지진은 참담한 피해를 내며 일상을 무너뜨렸다. 나는 이미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떠나온 뒤였다. 3월 12일, 고등학생들과 만날 일이 있어 지진을 화제로 삼아 강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당부했다. “인터넷에 일본의 사태를 희화화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될 글은 쓰지 말아다오.” 내가 도쿄에서 체류하던 2008년에는 중국의 쓰촨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그해 내내 일본의 언론 공간에서는 중국이 화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위 독만두 사건으로 그해를 시작해, 봄에 티베트 사태가 발발하고, 여름에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고, 그 사이 쓰촨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쓰촨 지진 이후 나는 한국의 포털사이트 등을 지켜봤다. 한국의 네티즌들 가운데는 “쌤통이다” “더 죽어야 한다”며 중국인을 조롱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중국의 네티즌이 그런 댓글을 번역해 중국의 사이트에 올렸고, 그리하여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격앙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진의 무서움이 무엇인지를 아는 일본인들의 글은 대체로 중국인을 위로하는 논조였다. 그때 일이 떠올라 고등학생들에게 당부한 것이다. 그러나 비방조의 댓글이 자칫 일본인을 화나게 할 수 있으니 쓰지 말라고 부탁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런 뒤틀린 적대감이 자신을 먼저 해칠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3월 13일, 후쿠시마 원전의 긴박한 사태가 속보로 오르기 시작했다. 연일 보도가 이어지면서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다시 지인들이 염려되었다. 그러나 지진이 발생하자 바로 피해를 확인했던 때와 달리 선뜻 메일을 보내기가 어려웠다. 시시각각 변하는 원전 사태 아래서 어떤 표현을 골라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또 오늘과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괜찮은지 물어보아도 상대가 답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망설임이 길어지는 동안 한국의 언론 공간에서 일본 사태를 대하는 반응은 전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특히 사태의 초기에는 쓰촨 지진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신문도 인터넷도 민족 감정을 부추기기보다는 인간애를 중시하는 논조였다. 어쩌면 일본의 도호쿠 지역이 중국의 쓰촨보다 실감의 거리가 가까워서였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지리적 인접이 정서적 유대로 옮겨질 수 있었다. 여기저기로 모금 운동이 번져가고 언론사들도 일본 돕기에 거들고 나섰다. 물론 일본 사태를 대하는 반응이 단색은 아니었다. 3월 12일, 나는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는 경악했다. 이번 지진으로 일본의 내수가 되살아나 장기적으로는 경기가 부양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해서는 안 될 진단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날은 지진이 발발한 다음날이었다. 사람 목숨이 오가는 다급한 마당인데 너무도 여유를 부리는 기사를 보고는 화가 치밀었다. 『조선일보』만이 아니었다. 뉴스에서는 어김없이 일본 사태가 한국의 주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가 줄곧 메인으로 올라왔다. 언제부턴가 뉴스를 보면 주가는 전국민이 기르는 자식처럼 의인화되어 모두가 그 성장을 염려하는 것 같다. 연구실의 동료에게 아마도 우리는 지구 종말 때까지 주식을 할 테고 그때는 종말테마주가 인기일 거라고 쓴 맛으로 말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일본을 향한 안타까움 어린 시선, 나아가 고통을 나누려는 태도가 마련되었다. 그간 언론 공간에서 어떤 소재로든 일본이 화제로 부상할 때면 일본은 한국인의 민족감정을 발산시키는 가장 편리한 회로로 기능했으나 이번에는 그 구도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였다. 일본의 시민 정신을 상찬하는 기사도 이어졌다. 참담한 상황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질서를 지키는 모습을 세계가 주시하며 감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보도에는 일본인들이 싫더라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는 훈계조가 곁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보도가 한편으로 불편했다. 일본에서 체류한 경험에 비춰 보건대 일본의 매스컴에서도 “세계가 우릴 지켜보고 있다”는 식의 논조가 기승을 부리며 문제 상황을 덮어 두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한국의 언론 공간에서는 동정 어린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채 3월을 넘기지 못했다. 적어도 신문과 뉴스를 보건대 일본인을 위로하는 분위기는 피해를 바다 건너 구경할 수 있을 때까지만 이어질 수 있었다. 방사성 물질이 바다 건너 한국까지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 우려가 현실화되자 ‘일본발 재앙’에 대한 두려움이 동정의 감정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결국 애도의 분위기는 피해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여유가 있을 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에 일본 사태에 대한 보도는 폭증하고 유동하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크게 회전하더니 결국 독도 문제로 안착했다. 일본을 대하는 기존의 프레임은 되살아났고 여전히 건재했다. 그렇게 방사능비를 동반한 바람은 잠시 자리를 잡고 있던 ‘가까운 일본’을 밀어냈다. 2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곧잘 그렇게 묘사된다. 상투적 표현이지만 이런 수식에는 어떤 진실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흔히 ‘가깝다’는 지리적 거리에서 그렇다는 것이며, ‘멀다’란 일본과의 민족감정에서 간극이 크다는 의미다. 그러나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가깝다’와 ‘멀다’에 관한 다른 원근감을 경험했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에 관심을 갖고 그곳 사람들 속에서 헤맨다면 그 사회는 가까운 곳이 될 수 있다. 현지인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뜻밖에 친근한 구석을 발견하거나 낯선 정경이 마음속에서 바라왔던 장면과 포개지거나 혹은 자신과 닮은 고민을 지닌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회와 사람들에게 관심 이상을 갖는다면 가까워지는 만큼 멀어지기도 한다. 진정 그 사회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함부로 다가가 멋대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끄집어 낼 수 없다. 그 사회에 매력을 느낄수록 서둘러 그 사회의 본질이라고 할 만한 것을 꿰차고 싶어지지만 진정한 애정이라면, 애정의 대상이 타사회라면 인식의 거리도 생겨난다. 진정한 애정이라면 대상에 관한 자신의 인식이 결국 대상의 본질을 알아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대상을 연출한 것이었음을 직시하게 될 것이다. 즉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대상을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미화하거나 왜곡했던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애정을 갖는다면, 대상을 멋대로 좋아할 수 없다. 그것이 이웃나라를 대할 때 ‘가깝고도 멀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월 11일 이후의 날들에서 한국사회가 일본을 대하는 기존의 원근감은 동요했다. 한편으로 일본은 기대보다 가까웠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불거지자 방사성 물질이 한국으로 유입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고, 정부는 한국이 편서풍 지대에 속한다는 근거를 들어 유입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3월 27일, 정부는 강원도에서 방사성 제논이 발견되었다고 공식 발표해야 했다. 방사성 물질이 캄차카 반도와 시베리아를 따라 일종의 우회경로를 거쳐 한국으로 유입된 것이다(당시 제논 검지기는 강원도에만 있었는데 북한의 핵실험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용도였다).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방출된 상황에서는 어느 곳도 충분히 ‘멀 수 없었다’. 더구나 한국은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였다. 지금 내가 거주하는 서울에서 후쿠시마까지는 약 1240km에 불과하다. ‘불과하다’라고 표현하는 까닭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방사성 물질이 2000km 이상을 날아가 중부유럽과 북유럽을 덮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가까웠다. 다른 한편에서 일본은 여전히 멀었다. 3월 11일 이후 일본 상황이 매일처럼 기사거리로 오르고 후쿠시마 사태가 실시간으로 보도되었지만 일본인, 일본사회에 관한 시선은 여전히 패턴화되어 있어 인식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일본인의 차분한 대응에 찬사를 보내는 논조도 기존의 일본인론을 강화할 따름이었다. 질서정연한 일본인상은 기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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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서문 / ‘멀다’와 ‘가깝다’ 사이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 _ 모리 이치로 44 인간은 이미 기술을 어찌할 수 없는가? _ 기다 겐 56 시작도 끝도 없다 _ 다지마 마사키 64 지금부터 인류는 위험한 다리를 터벅터벅 건넌다 _ 요시모토 다카아키 75 일본인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지금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 _ 쓰루미 스케 85 미래로부터의 기습 _ 가토 노리히로 89 3?11 이후의 지구적 아나키즘 _ 고소 이와사부로 106 우리들 ‘후쿠시마’ 국민?:?3?11 이후를 살아가기 위한 선동 _ 이케다 유이치 122 두 가지 신화와 무상 전략 _ 야마오리 데쓰오 134 전쟁으로부터, 고베로부터 _ 나카이 히사오 141 자연은 당연히 난폭하다 _ 히가키 다쓰야 153 중간 휴지와 취약함의 규모?:?천재와 인재의 궁극적 융합에 대하여 _ 에가와 다카오 164 사건의 때?:?자본주의+전력+선의의 내셔널리즘에 맞서 _ 고이즈미 요시유키 175 노동?-?생의 경계와 마주하여?:?3?11을 둘러싼 비망록 _ 도모쓰네 쓰토무 185 원전에서 봉기로 _ 히로세 준 199 반원전의 증표 _ 『도래해야 할 봉기』 번역 위원회 209 부서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기노쿠니야 인문 대상 2010 수상 기념 강연 「전야는 지금」의 기록 _ 사사키 아타루 219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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