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뢰즈와 언어(Deleuze and Language)
장-자크 르세르클(Jean-Jacques Lecercle) (옮긴이), 이현숙 (옮긴이), 하수정 (옮긴이)
(주)그린비출판사·2016-06-10
- 448쪽
- 철학
- KDC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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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서문 ] ? 들뢰즈, 베케트, ‘똑같은 전투’ 더 이상 희곡을 쓸 수 없는 작가를 상상해 보라. 언어에 대한 감각이 너무 예민해져서 단어의 형식화를 방해받는 시인을 상상해 보라. 장황한 말들이 극단적으로 생략되어 무언극으로 전락한 『햄릿』을 상상해 보라. 언어가 그 용어의 두 의미 사이에서 소진되어 있는 상태를 상상해 보라. 그것은 모든 잠재적인 표현의 가능성이 실현되어 단어 속에 결빙되었지만, 그 결과 모든 잠재적인 화자들이 너무 피곤해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이다. 이것이 바로 베케트의 후기 작품인 TV 희곡 「쿼드」?Quad, 「유령 트리오」Ghost Trio, 「한갓 구름만……」?…nur noch Gewolk…, 그리고 「밤과 꿈」?Nacht und Traume이다. 여기에는 언어가 전혀 없다. 여기서 언어는 기껏해야 소품을 묘사하는 목소리로 축소되거나, 최악의 경우 연극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지문으로 축소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이 언어 혐오자는 문제에 부딪힌다. 그는 조용히 언어를 버릴 수 있다. 그는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음악을 작곡할 수 있고 춤을 출 수 있고 무성 영화를 찍을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는 말해질 수 없고 오직 보여질 수만 있는 그 무엇이 있으며, 최고의 에피파니epiphany는 침묵이고 발생하는 사건의 포획과 환영은 언어가 없을 때 가장 잘 성취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최소한 예술의 영역에서는 말 없음이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현실화하는 데 열중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는 동안 그는 적극적으로 언어를 혐오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언어에 의한 표현 욕구라는 배반에 경멸을 표하지 않을 것이며, 웅변의 위험에 처해 더욱 웅변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고, 친숙한 화용적 역설로 말하자면, 말하지 말라고 다른 잠재적 화자에게 경고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에 대한 경멸과 혐오, 언어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길은 언어를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베케트 역시 이 역설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 이유는 그의 후기 TV 무언극이 상연되고 있는가 하면, 그 이유는 그의 후기 TV 무언극이 내 앞에, 내 책상 위에, 그 책 맨 앞장에, ‘에디트 푸르니에의 영문번역’이라는 부제가 있고 『소진된 인간』L’Epuise이라는 제목으로 들뢰즈의 긴 주석이 실려 있었다. 단어들, 단어들, 단어들, 그리고 하나 이상의 자연 언어에 대한 언급이 있다. 역설은 들뢰즈의 에세이에서 반복된다. 이 에세이는 베케트의 TV 희곡에 담긴 언어의 소진을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언어가 극단에 도달하고 소멸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지점으로 이해된다. 결국 그 궤도의 끝에서 이 유명한 극작가는 언어 없이도 잘 해나갔다. 그러나 들뢰즈는 베케트의 언어에 대한 이론이나 베케트 언어의 세 가지 유형에 대한 이론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사태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석을 구성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는 언어가 오직 희미한 형태로만 남아 있는 텍스트에서 (아마도 부재하는) 언어에 대한 이론을 구성함으로써 그 텍스트로 다루고 있다. 나는 이 역설(곧 이 부분을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을 우화寓話로 간주할 것이다. 그것은 언어의 문제적 본질에 대한 우화, 그 실행자들practitio-ners(나는 사용자들users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이 맺고 있는 애증 관계에 대한 우화, 언어를 그 극단, 즉 침묵에까지 밀어붙일 필요성에 관한 우화, 소진을 극복하는 소진되지 않는 장황함에 관한 우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에조차 존재하는 말의 구성적인 표현 가능성에 관한 우화. 나는 이 역설을 질 들뢰즈의 철학을 관통하는 가이드라인으로 삼을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들에서 언어를 테마가 아닌 문제problem로서 다룰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들뢰즈는 1960년대와 1970년대 프랑스와 유럽의 철학이 취한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에 많은 면에서 저항하고 있는데, 그것은 몇십 년 전 분석철학이 취한 보다 유명한 언어적 전회와 다르지만 평행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른 한편, 만일 공동작업에서 가타리의 특별한 공헌을 고려한다면, 들뢰즈는 그러한 전회의 일부이다. 이것이 바로 독자가 들뢰즈는 항상 언어의 토대를 다른 것에서 찾고 (때로는 몸에서, 때로는 생각에서) 그것을 부수적인 것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부차적인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 이유가 된다. 그렇지만 독자는 들뢰즈가 항상 강박적으로 언어로 회귀하는 듯한 인상을 동시에 받는다. 언어는 표면surfaces의 효과, 즉 표면적 장[형이상학적 표면]의 효과가 된다. 그렇지만 들뢰즈는 표면과 면?plan(플랑)의 철학자이지 않은가. 언어의 범주에서 특징적인 두 과정인 해석과 은유에 대한 들뢰즈의 적대감은 악명이 높다. 그렇지만 언어예술로서 문학에 대한 그의 사랑 역시 악명이 높다. 문학적 접근에 있어 고도의 모더니스트인 들뢰즈에게 문학 텍스트들(그들의 문학성)은 대부분 스타일과 구문의 문제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들뢰즈의 저작에서 명확한 언어 이론을 찾지 못하는데, 심지어 언어의 문제를 다룬 책은 한 권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의미의 이론을 찾고(『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 시어와 스타일의 이론을 찾고(가장 명백한 것은 『비판과 진단』Critique et clinique), 화용론을 찾는다(『천의 고원』?Mille plateaux). 그러므로 이 책의 과제는 이러한 역설을 발전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는 들뢰즈에게서 언어가 문제로서 구성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인데, 그것은 그가 이 개념에 부여한 엄격한 의미에서 그렇다. 그러나 처음의 역설(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포획된 시인)과 우화(‘들뢰즈, 베케트, ‘똑같은 전투’meme combat)로 돌아가자. 베케트의 TV 희곡에서 언어는 정말 이상한 대상이다. 「쿼드」에서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움직이면서 결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언어는 지문으로 제한되고, 희곡 자체에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우리의 숭배 대상인 연극과 언어의 관계는 방금 구입한 잔디 깎는 기계와 그 사용 설명서의 관계와 같다. 「유령 트리오」에는 말소리가 들리는데, 그 목소리는 여자의 것이다. 그런데 무대 위에 존재하는 유일한 인물은 남자이다. 따라서 그 목소리는 끊어진 목소리, 웅얼거리는 소리, 「쿼드」에서만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입으로 지문을 말하는 소리인데 그 지문은 관객이 볼 수 있는 소도구나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묘사한다. 그 목소리가 순수하게 묘사적인 톤이기를 그치고 감정 표현을 드러낼 때가 딱 한 번 있다. 그때 ‘아!’ 하고 놀라는 소리(지문에 당연히 언급되어야 하는 감정)가 그녀에게서 새어 나온다. 희곡이 거의 끝날 때까지 목소리가 기여하는 것은 거의 없거나 단음절이다. 『…한갓 구름뿐…』(예이츠 시의 일부에서 인용한 것으로서, 그의 밝은 시들과는 꽤 거리가 있다)에서는 남자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지문은 우리에게 그것이 때때로 무대에 나타나는 남자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려 준다(비록 그가 무대 위에서는 말이 없지만 말이다). 목소리는 남자의 행동을 묘사하고 가끔 스크린에 등장하는 클로즈업된 여자의 얼굴 표정을 묘사한다. 재미있는 것은 여자의 얼굴에서 입술은 예이츠의 시 구절들을 발음하는 것이 보이는데 지문에는 계속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밤과 꿈」에서 언어는 완전히 사라졌다. 남자 배우가 꿈을 꾸는데, 이는 대부분 자신에 관한 것이다. 이때 남자의 목소리는 슈베르트가 작곡한 동명 리트lied[독일 가곡]의 마지막 일곱 소절을 부드럽게 흥얼거린다. 그렇다면 자신의 경력 마지막 시기에 (이 희곡들은 1980~1982년에 ‘쓰였다’) 베케트는 희곡의 구성 재료인 언어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것이 명백해진다. 그는 음악이나 이미지 등 다른 매체로 이동함으로써 이를 실행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 언어의 대체물인 침묵을 향해 이동함으로써 실행한다. 언어의 주변부를 만듦으로써 실행하고 언어가 주장하고 저항할 때는 언어를 희곡의 경계 너머로 추방하고 무대 지시어나 해설의 소리를 제거함으로써 실행한다. 그리고 언어의 기능 중 하나이자 희곡의 중심이 되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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