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책머리에 진작부터 행갈이를 하는 글에는 흥미를 붙이지 못했지만, 재미 유학생 하나가 인터넷 잡지 『화하문적』에 쓴 짧은 시 한 수를 읽게 됐다. 제목은 「여덟번째는 동상: 어느 세대 사람에게 부쳐」.* 읽고는 빨려 들어갔다. 결코 ‘좋은’ 시는 아니었다. 문장부호를 덧붙이고 행갈이를 하지 않으면 마치 짧은 수필 같기도 했다. 읽고 나니 진실했고 공감이 됐다. 시는 숱한 대서사의 틈바구니 속으로 근심스레 떨어진 ‘한 세대 사람’을 노래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는 알바니아가 생각났다. 홍(紅)도, 흑(黑)도 없었고,** 안나 카레리나도 없었다. 우리의 고전은 「여덟번째는 동상」*이었다. 그때는 굿뜨모닝이나 하우아유를 말하는 이도 없었다. 그때는 내가 “파시스트를 타도하자”고 말하면 너는 “자유는 인민의 것”**이라 말했다. 그 암호는 우리의 만남을 신성하고 친밀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알바니아 영화 속에서 자랐다. 「여덟번째는 동상」에 관한 이러저런 화제들 속에서 우리는 스승 없이도 진작에 아방가르드에 통달했다. 구조주의를 즐겼고 의식의 흐름을 즐겼다. 그 봄 비록 우리는 가난하고 외로웠지만. 심지어는 엄마가 우리를 낳는 그 장엄한 순간, 아빠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여러 목소리의 세대론이 왁자한 1980년대와 시끌벅적한 1990년대를 만들고, 한 세대 또 한 세대 그렇게 자신들의 역사를 써내면서 그들의 ‘역사적 지위’를 주조하고자 했지만, 나는 한 번도 어느 ‘세대’에 속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질 못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가 맞물려 지나는 때에 태어난 것은 곤혹스런 일이었다. 다행히도 어려서 굶주린 기억은 없다. 외할머니댁 뜨락의 무성한 라일락, 한여름 낮이면 적막한 분노처럼 일어났던 해바라기, 맑은 잿푸른 하늘 겨울날 처마 밑 고드름. 꿈속으로 떨어지듯 대학에 입학했다. 자기소개란에 ‘만기 졸업’이라 쓰고 “본인은 할 이야기 없음”이라고 선포했다. 단지 문혁의 기억, 하늘에서 떨어진 액운만이 남아 있었다. 이웃집 발목이 잘려 나간 옛 도자기 파편들. 무작정 얻어맞고 죽은 이의, 성급하게 부어올라 악취를 풍기던 거무튀튀한 시체, 공공변소의 ‘붉은 비로도 큰 손’ 전설.*** 어느 학술대회에서 한 ‘원로’가 내 호언장담에 웃으며 말했다. “문혁이라고요? 문혁을 알아요? 홍위병들 앞에서 놀라 부들부들 떨기나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다. “붉은 팔월이 날뛰던”**** 그 해, 나는 일곱 살이었다. 나는 날마다 찾아오던 “어두운 네 골목을 피로 씻겨 내던” 홍위 대장들 근처에서 벌벌 떨었다. 겨우 일곱 살 때 죽음의 두려움을 알았고 삶을 탐했다. 홍위병들에게 소리 높여 ‘16조’*****를 외치시던 어머니도 정말이지 신뢰할 수 없었다. 일곱 살짜리의 직감으로도 쓸데없는 일이란 걸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가 자루만큼이나 컸던 여자 시체도 없었을 테고, 좁은 골목 시체를 태우던 짙은 연기의 흩날림도 없었을 것이다. 문혁 중 그 어느 ‘세대’도 아니었기에 토론하거나 서술할 수 있는 ‘권력’은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 일곱부터 열일곱까지는 모진 ‘플롯’이었다. 지금껏 치유되지 않는 병―그 증상은 다음 세대에 의해 진단됐다―을 앓았다. 1987년 가을과 겨울, 온천 결핵원에서 말 그대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나보다 네 살이나 일곱 살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나이를 먹었으면서도 소년 같은 열정을 냈다. 헤어질 무렵 어찌나 아쉽던지 사내아이가 말했다. “함께 있으면서 가장 큰 수확이 뭔지 아세요?” 나는 좋은 선생님이란 말을 기대하면서 몇 마디 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는 뜻밖의 말을 이었다. “우린 정말로 문혁을 지낸 거 같아요.” 청천벽력 같았다. 여자아이 하나가 거들었다. “아세요? 늘 문혁 얘기를 하셨어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푸른 장막 속에서 항일 전투를 벌이던 이야기를 들려주던 노신사. 술만 먹고 나면 압록강을 목 놓던 아저씨. 문득 그들이 노쇠해 보였다. 하지만 원로의 담소와 당시 대학생의 감탄 사이에서 나는 내 ‘세대’의 귀속을 찾을 수 없었다. 역사에는 분명 많은 틈이 있고, 그 틈 속에는 이름 없는 삶들이 있으리라. 해가 가고 날이 지나면서 흰머리도 생기고 훨씬 철도 들게 되는 듯하다. 기억은 어느 시간 속에 고착돼 있다. 깊은 사랑과 절실한 한(어쩌면 두려움)뿐 아니라 그 시간들, 그 사건들, 그 경험들은 역사의 합법성을 부여받았다. 그리하여 서술의 합법성도 갖추게 됐다. 거듭된 서술의 팽창은 점차 다른 것들, 심지어 모든 것을 덮어 가려 버렸다. 승리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쟁의 영광과 거지에게 달려든 성난 개가 물어뜯은 상처와도 같던 어제. 문혁의 피비린내와 공포와 고난 위에 서 있던 1980년대 중국. 창업자의 지난 발자취처럼 오늘 위에 서 있다. 영화로 밥그릇을 삼은 지 벌써 14년이 됐지만, 나는 「여덟번째는 동상」을 잊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 숱한 외로움과 황폐함, 가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깨달음과 극도의 무지를 잊고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 이름을 얻지 못했던 ‘우리’를 깨닫고 ‘한 세대 사람’이라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를 쓴 류칭처럼, 그것은 이국(시어는 “어떤 자본주의 국가”)의 어느 모임, 어두운 밤에 용솟음치는 기억, 그리하여 “오늘 밤 / 우리의 어린 시절은 / 흑백영화 한 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전체와는 거리가 멀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햇빛 쏟아지던 날들”*이었다―성별 때문에, 혹은 계급 때문에 그것은 어쩌면 진실이기도 했다. 문혁이 끝나고 십수 년이 지난 뒤 가질 수 있는 합법적 재현이었다. 그리고 햇빛 쏟아지던 서술의 성취였다. 두터운 핏빛 유채를 벗겨 버리는 것은, 세월이 아닌, 아니 단지 세월뿐이 아닌 영원한 권력 기제의 필요 절차였다. 그리하여 같은 세대 사람, 동성(同性) 작가들의 붓끝 거대 서사의 화면 위에는 “묵묵히 바라던” 이들의 “텅 빈 세월”이 조금 드러났다. 나중에 도착한 이들의 조롱 속에서 그것은 “노래와도 같은 참뜻”이라 쓰여졌다. 그리하여 일곱 살의 공포는 “오늘 밤 폭풍설”보다 더욱 매혹적이고 진실하고 합법적이다. 정말 “운이 좋게도” 스스로 합법과 불법의 기억을 갖게 된 뒤 내 삶이 ‘역사’ 속에 있음을 깊이 알게 됐다. 열 살에 “모든 해충을 박멸한다던 무적”의 대(大)시대를 만나 “불타는 시대에 붉은 사람이” 되었다. 스물에는 신시기가 시작되어 “나라의 부강을 위해 책임지자, 갖가지 병폐를 드러내자”고 외쳤다. 서른, “우리는 이미 황금시대의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세기의 문과 충돌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장차 지구에서 제명당할 것”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마흔, 이제 세기의 교차와 천년의 시작이 다가올 것이다. 그리하여 일찍이 마땅히도 줄곧 미래에 대한 무궁한 동경과 상상 속에 빠져 있었다. 미래는 행복이 확장된 시간의 사슬을 보여 주었고,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역사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불혹이 되면 미래식 역사 서술과 과거식 역사 서술은 서로를 마주 대하면서 끊임없이 냉혹하지 않으면서도 고통스러운 비웃음이 될 것이다. 하나하나 아름다운 ‘미래’가 결코 그다지 찬란하지 않으며 씁쓸한 평범한 세월이 되리라는 걸 몸소 겪고 목도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알록달록한 점박이 역사의 유산을 이어받게 되리라. 그것을 독창적이라거나 독특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20세기 모든 예언은 모두 혁명에 관한 예언이었고, 20세기의 전체 기억은 모두 혁명의 실패에 관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심판하는 일은 인류의 폐단 아니면 역사의 관례다. “하느님에게 감사하자. 나는 권력의 바퀴가 아니다. 나는 바퀴 밑에 깔려 살아가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타고르의 명언은 여전히 환각과 거울에 비친 상, 구조, 자기 충족, 개인의 필요를 일러 준다. 역사는 그 중단된 곳에서 뻗어 나간다. 헤겔의 역사든 후쿠야마*의 역사든 중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뻗어 나가고 있는 것은 세월의 면면함이라기보다는, 세월 이후 서로 어긋나는 역사의 서술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역사 속에 처해 있음을 깨닫게 됐다. 이 깨달음은 높은 노래로 돌진하던 진보의 기록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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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5 책머리에 9 1_ 분명한 입장 25 학술 자전 25│문화연구의 서술과 입장 30│문학비평의 이모저모 35│ 미셸 푸코, 권력, ‘유희’ 37│페미니즘과 문화연구 43│ 사르트르와 지식인의 역할 46│문학과 철학에 대한 의견 49 2_ 영화사의 문화와 정신에 대한 반성 57 학술적 전향과 문화적 사고 57│1980년대에 대한 성찰 62│ 역사의 단절과 원화의 복원 65│학계의 ‘근대 현상’ 및 기타 70│ 영화이론과 문화연구 75│‘근대성’ 논의와 영화사 78│이론적 자원과 성찰 81│ 페미니즘과 영화사 쓰기 84│영화와 문학, 개인의 습관 89 3_ 도시문학과 문학비평 그리고 지식인의 역할 99 도시와 도시문화 그리고 ‘혁명’ 99│역사와 현실 103│ ‘도시’에 대한 담론 107│1990년대 문화와 문학 111│ ‘세대’ 문화와 문학 118│문학 체제와 문화 구조 131│ 지식인이라는 신분 133│서양 지식인과 중국 문화의 현실 139 4_ 혁명, 이데올로기 비평, 문화연구 : 1968년 5월과 영화 151 ‘5월혁명’과 현대 세계 151│이데올로기 비평과 중국의 비평 공간 169│ ‘항아리 속의 뇌’에 직면한 현대 악몽 189 5_ 여성주의 : 문화적 입장, 젠더 경험 그리고 학술적 선택 203 중국의 여성학과 여성주의, 어제와 오늘 203│여성문학? 229│ 린바이의 『한 여자의 전쟁』과 ‘딸’ 241│문학비평과 문화연구 244│ 여성 글쓰기 253│젠더연구와 그 어려움 257│ 젠더의 차이와 본질주의 261│개인의 경험과 여성주의적 입장 265 6_ 여성문학과 개인적 글쓰기 279 여성 글쓰기의 맥락과 남성의 시각 279│반문 284│개인화 글쓰기와 ‘응시되는’ 여성 287│반문에 대한 반문 293│여성 공간 논쟁 299 7_ 도전에 직면한 문화비평 : 텔레비전 드라마 자세히 읽기 309 문화비평과 이론적 입장 311│「갈망」 다시 읽기 332│ ‘개인’과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오다 340 8_ 문화연구에서의 근대성 문제 353 ‘근대성’에 대한 논의 353│광고연구와 문화 컨텍스트 358│ ‘세속화’에 관한 질의 363│광고와 사회 기제 368│ 다국적 자본과 광고의 표상 375│명명과 단절 383│ 근대성 담론과 이원대립 389│‘타인’과 ‘자기’의 이야기 396│ 1980년대 문화에 대한 검토 407 옮긴이 후기 417 찾아보기 424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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