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론을 대신하여 처음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 목적은 비교적 소박한 것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가치에 대한 인류학적 이론을 정립하는 데 나름의 기여를 하고 싶었다. 많은 인류학자들이 오랫동안 가치이론의 필요성을 절감해 왔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문화들이 세계를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는지에 대한 이해(그 차이에 대한 기술이야말로 인류학자들이 그간 가장 재능을 발휘해 온 분야이다)에 더해, 서로 다른 문화들이 무엇을 아름답고 가치 있고 중요하다고 정의하는지에 대한 이론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왔던 것이다. 의미가 어떻게 욕망이 되는지에 대한 검토, 혹자는 이를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터이다. 이런 작업이 이뤄진다면 인류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일반에서도 악명 높던 숱한 난제들을 해결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었다. 나는 적어도 이런 이론의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몇 년 전 썼던 또 다른 글1에서 전개한 화폐의 본질 및 부, 권력에 대한 다른 몇몇 개념들에 연결할 수 있을지 검토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글을 전개할수록 점점 더 나의 가정이나 전제들이 오늘날 사회과학에서, 혹은 적어도 스스로를 대단히 정치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분과들에서(사회학, 인류학, 역사, 문화이론 등의), 상식으로 인정하는 사실들과 완전히 배치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차이점들을 더 분명하게 추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이 책의 성격 역시 예상보다 훨씬 더 야심찬 것으로 변해 갔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점점 더 정치 논문, 혹은 적어도 인류학과 정치학이라는 두 학문 사이의 관계에 대한 확장된 고찰의 성격을 띠어 가고 있었다. 저널리스트들이 자명한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일반적 역사 이해 방식을 빌리자면, 20세기의 지난 수십 년간 많은 미국의 좌파들은 그들 주위의 모든 것과 세계의 다른 부분들이 계속해서 보수화되어 가는 동안 대학과 대학원으로 후퇴해 점점 더 알 수 없는 메타이론을 엮어 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해체하는 일에 투신해 왔다. 좀 거친 요약일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묘사가 전적으로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최근의 몇몇 사건들은 같은 시기의 역사를 전혀 다르게 기술할 가능성 역시 시사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세계 곳곳,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미국 내에서도, 각종 사회운동들, 특히 신자유주의(미국 내에서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로 통용되는)에 반대하는 운동들이 빠르게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소위 좌파로 불리는 사람들은 이런 변화에 거의 아무런 역할도 담당하지 못했다. 사실 그 그룹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런 운동의 존재에 대해서조차 아주 희미하게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현대의 비판적인 메타이론들 일반에서 신자유주의가 논외의 주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로서는 이런 비판 이론들이 사실상 놀라울 정도로 여러 가지 지점에서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둘러싼 현재의 여러 쟁점들을 앞서 보여 주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을 보자. 스스로를 기꺼이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부를 학자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단어는 실로 문제적인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이런 사실이야말로 이 단어를 그토록 강력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제 특정한 누군가의 사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전제조건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논쟁들을 우리는 다소간 풍자적인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는 변했다. 이 변화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도 없다. 이는 그저 피할 수 없는 과정의 결과일 뿐이다. 이 변화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 역시 전혀 없다. 가능한 것은 단지 새로운 상황에 우리 자신을 적응시키는 것뿐이다. 2. 포스트모던한 세계 속에서 집단적인 정치 행동을 통해 세계나 인간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3. 이런 상황은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인간 주체를 위한 공간을 거의 허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절망할 필요는 없다.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합법적 정치 행동은 여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창조적인 소비나 전복적인 정체성 형성 같은 것들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개인들의 선택을 우리는 정치적인 것, 또 잠재적으로 해방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밝혔지만, 이는 다소간 풍자적인 요약이다. 당시에 진행된 그 어떤 이론의 전개도 대체로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부분이 거의 예외 없이 앞서 제시된 세 가지 주제들을 공통적으로 변주하며 제기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면 이제 이를 대중매체에서 흔히 “지구화”로 명명하는 현상에 대한, 주로 90년대 이후 형성된 다음의 논쟁들과 비교해 보도록 하자. 1. 우리는 지금 지구적 시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는 변화했다. 이 변화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도 없다. 이는 단지 피할 수 없는 과정의 결과일 뿐이다. 이 변화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아무것도 없다. 남은 것은 단지 새로운 상황에 우리를 적응시키는 것뿐이다. 2. 이런 상황에서 집단적인 정치 행동을 통해 사회변혁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혁명은 불가능한 꿈이며 심지어 전체주의적인 악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꿈임이 이미 입증되었다. 정치 영역의 선거를 통해 사회를 바꾸려는 생각 역시 “경쟁력”의 이름 아래 포기되어야 마땅하다. 3. 이런 상황이 민주주의를 위한 여지를 조금도 남겨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시장 원리에 입각한 행동, 특히 개인이 소비자로서 내리는 결정 자체가 민주주의, 장차 우리가 진정으로 갖추어야 할 민주주의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논의 사이에는 하나의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과학이든, 인간성이든, 민족이든, 진리든 혹은 그 무엇이든 간에,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적 체제가 무너진 세계를 하나의 기정사실로서 받아들인다. 여기에는 이제 셀 수 없는 조각들로 파편화된 세계를 다시 이어붙일 그 어떤 거대 메커니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사물들을 측정하고 평가할 단일한 가치 기준을 상상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신자유주의자들은 전례 없는 규모의 지구적 시장, 즉 모든 물건과 대지, 인간의 능력과 관계를 포함해 지구상의 모든 것을 하나의 단일한 가치 기준에 종속시키는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획일적인 평가 시스템의 존재를 찬양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묘사하는 상황, 즉 모든 것이 파편화된 상황이야말로 많은 점에 있어서 바로 이 거대 단일시장의 효과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여타의 총체적인 가치 체계들과 마찬가지로 단일시장 체계 역시 그 안에 포섭되지 않는 다른 모든 것을 회의하고 해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체계를 비판할 방법을 찾는 일이 그들에게는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이는 아마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사람으로 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을 위한 선언문 같은 것을 작성한 일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단지 이런저런 종류의 구조적 힘에 의해 이미 어쩔 수 없이 발생한 현상을 기술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 있어서 그들이 보여 준 태도 역시 훨씬 더 흔한 또 다른 경향의 과장된 한 표현에 불과하다. 적어도 나로서는 이런 진단이야말로 현재의 무기력 상태에 대한 가장 합당한 설명이라 생각된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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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6 한국어판 서문 8 서론을 대신하여 15 1장_가치를 논하는 세 가지 방식 23 클럭혼 프로젝트 27 | 최대화의 법칙 34 | 구조주의와 언어적 가치 49 | 결론 66 2장_교환이론의 최근 경향 71 맑스주의 인류학의 대두와 그 이후 74 | 경제적 인간의 귀환 79 | 스트래든의 신모스주의 98 | 낸시 문과 행동의 가치 117 | 결론, 행위에의 주목 122 3장_가치, 행위의 의미 125 서구 철학 전통의 이면 128 | 맑스의 가치이론 138 | “실천적 접근” 142 | 역동적 구조들 149 | 자기중심주의와 편파적 의식 155 | 상징분석으로서의 『자본』 161 | 시장 없는 사회 164 | 바이닝족, 생산과 실현 167 | 카야포족, 가구 구성과 마을 구조 170 | 가치의 징표들 178 | 가치와 가치들, 물신주의 184 | 부기 1: 부정적 가치 193 | 부기 2: 직접적 전유와 간접적 전유 195 | 결론: 수천 개의 총체성 198 4장_행위와 반영 207 부의 전시 211 | 행위와 반영 215 | 화폐와 주화 225 | 여러 가지 물신주의 233 | 마다가스카르와 노예무역 238 | 오디와 샘피 242 | 희생 제의와 주술의 탄생 248 | 제물의 정치적 함의 252 | 결론 및 전망 254 5장_왐펌과 사회적 창조성 259 왐펌의 기원 263 | 이름의 부활 267 | 전쟁과 사회구조 270 | 평화의 수립 275 | 대평화의 기원 282 | 순환과 역사 286 | 창조와 의도성 290 | 꿈의 독재 299 | 동지 제의와 흰 개 제물 307 | 꿈의 경제 319 6장_다시 모스에게로 327 사회계약으로서의 선물 331 |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기여로서의 「증여론」 337 | 사물과 사람 355 | 첫번째 사례: 쿨라 팔찌와 목걸이 357 | 마오리와 콰키우틀 364 | 두번째 사례: 아오테아로아에서의 선물 368 | 세번째 사례: 콰키우틀의 포틀래치 407 | 첫번째 결론: 부연할 사항들 456 | 두번째 결론: 정치적·도덕적 결론 468 7장_우리 꿈의 위조 493 왕과 동전 500 | 재고할 사항들 511 | 마법과 맑스주의 514 | 마법과 인류학 517 | 마법적 태도와 종교적 태도 528 | 혁명가 vs 건축가 532 | 결론 539 | 맑스 vs 모스 544 참고문헌 559 옮긴이 후기 599 찾아보기 602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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