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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20세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Essais sur le politique , XIXe-XXe siècles)

19세기~20세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Essais sur le politique , XIXe-XXe siècles)

클로드 르포르(Claude Lefort) (지은이), 홍태영 (옮긴이)

(주)그린비출판사·2015-11-30

  • 440쪽
  • 사회과학
  • KDC 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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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서문 우리 시대의 경험으로부터 야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의도에서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고 재사유하는 이러한 기획은 ‘정치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묻지 않고서는 분명히 그 문제에 매달릴 수 없다. 답이 출발에서부터 정의definition의 형태로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종류의 대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모든 정의justice 혹은 정치적인 것의 본질을 고정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사유의 자유로운 운동을 방해하거나, 정반대로 정치적인 것의 한계를 속단하지 않거나 그 길이 미리 알려지지 않는 탐구에 동의하는 한에서 사유의 자유로운 운동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적합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이 책 속에 모아놓은 글들은 이 탐구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준다. 사람들은 이 책 속에서 체계적인 연구의 단계들을 발견하지는 못할 것이다. 명확히 하자면 한 권의 책을 위한 장들을 구성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몇 개의 테마를 재조합한 이 책이 한 권의 책이 구성할 수 있다는 환상을 자극하지 않으며, 또한 테마들 사이에 불균형도 명백히 남아 있다. 덧붙인다면 어떤 것들 예를 들어, 「『공산주의자 선언』의 재독해」와 같은 것은 상황적 저술이다. 반면에 예를 들어 프랑스혁명에 대한 글, 토크빌에 대한 글 혹은 종교와 정치에 대한 글은 세미나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불멸성의 죽음?」과 같은 글은 한정된 인터뷰의 산물로서 매우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그 기원과 다루어진 주제가 무엇이든, 그것들은 자주 무시되거나 부정된 곳에서 정치적인 것의 표시들을 찾으려는 명백한 의도에 의해서거나 아니면 그러한 표시들을 모으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공통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이중의 형태로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들이 심사숙고된 운동에 의해 정치적인 것과의 만남과 관련을 맺는다는 것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사실 정치적인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겪는 경험 속에서 있으며, 그것은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은 우리들의 정치적 존재 양태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언어를 빌리자면, 정치적 동물로서의 형태로 존재했던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단어들에서 빌려 온 의미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는 것은 정치(과)학science politique이나 정치사회학sociologie politique의 의도와는 다른 것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우리를 정치철학philosophie politique의 전통과 결합시킨다. 한 마디, 즉 다른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과 가깝게 하는 것에 대해 말하도록 하자. 정치학과 정치사회학은 실증적 인식이라는 정언명령?객관성과 중립성이라는 정언명령?이 작동하는 가운데서 구획된 영역에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자체로서 명백히 정의된 다른 영역, 예를 들어 경제적?사회적?법률적?윤리적?종교적?미학적……영역과 거리를 둔다. 우리들은 「정치신학적인 것의 영원성」이라는 글 속에서 왜 우리가 그러한 우연적이지 않고, 인위적인 구분 속에서 판단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간단한 소개글 속에서, 인류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대부분의 사회를 고려할 때 6 서문 서문 7 그러한 분할은 적실성을 잃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러한 분할은 인류 역사의 범위를 고려한다면, 상대적으로 최근에 서구에 출현한 사회의 형태를 증언한다. 이 형태는 이전의 다른 형태들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정치(과)학은 자신의 근거를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데 있어서 무능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의심할 여지 없이 그러한 종류의 비판은 정치철학의 영역에서는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 형태들의 차이가 자극하는 탐구 그리고 그 원인을 제공하고 정치적 판단의 토대가 되는 범주들에 대한 탐구는 그 기원에서부터 생생한 상태로 중심에 존재한다. 이러한 탐구는 정치를 사회적 삶의 특정한 부분으로 그리는 것을 금지하면서 반대로 인간들이 그들 스스로와 그리고 세계와 맺는 관계들의 발생적 원칙 혹은 원칙들의 총체를 의미한다. 그러한 구상의 가장 설득력 있는 증언은 아마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내가 방금 전에 사회의 형태라는 칭했던 것은 플라톤(혹은 소크라테스)이 아마도 처음으로 폴리테이아politeia에 대한 검토 속에서 만들어 낸 사유이다. 우리는 그 말을 체제regime라고 번역하는 데 익숙해 있다. [체제]라는 말은 현재 우리를 혼란시킬 위험이 있는 채로 제한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가 정확하게 관찰했듯, 이 말은 우리가 구체제Ancien Regime라는 표현 속에서 그 말을 사용할 때 얻는 모든 반향을 가진 듯할 때만 유지될 가치가 있다. 따라서 헌법의 한 형태라는 사유와 존재의 스타일 혹은 삶의 양태라는 사유가 결합된다. 스트라우스의 뜻에 따라 이 용어들의 의미를 좀더 더 명확히 해야 한다. 헌법은 법률적 수용 속에서 취해지는 것이 아니라, 앵글로 색슨적인 용어의 의미에서 ‘정부 형태’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명백하게 분화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행정?입법?사법의 기능들 속에서 정당한 것으로 인지된 권력 구조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사회적 지위들의 정당한 구별짓기를 조건짓는다. 존재의 스타일 혹은 삶의 양태와 관련하여, 이 용어들은 미국적 생활 방식이라는 표현에서 사용되는 것들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정의로운 것과 부정의한 것, 선과 악,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고상한 것과 천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념을 규정하는 암묵적인 규범들의 총체를 말하는 습속들과 믿음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사실상 플라톤에 의해 『국가』 속에서 행해진 질문 ? 그것은 이론적으로 좋은 체제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에 의해 인도되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 은 정치의 한계를 고정시키지 않고, 권력의 기원과 그 정당성의 조건들, 사회의 전 범위에 걸쳐 명령과 복종의 관계, 도시 공동체cite와 이방인의 관계, 사회적 필요와 직업적 활동의 분배, 종교, 개인과 사회체의 목적들에 동시적으로 관련되는 하나의 질문을 결집시켰다. 그것은 개인적 심리 현상psyche의 구성과 폴리스polis의 구성 사이의 유비를 알게 하고, 결국 주목할 만한 것은 폴리테이아에 대한 담론, 더 일반적으로 대화가 정치적 특징의 관계들을 사용하도록 제안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플라톤은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와 아이, 스승과 제자, 가정oikos의 주인과 노예, 혹은 도시 공동체의 권력의 담지자와 의존관계에 있는 사람과 시민들의 관계를 혼동하지 않았다. 그 또한 교육 혹은 종교가 정치적 기능으로 환원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지 않았다. 게다가 동일한 원칙들이 도시 공동체의 선과 인간의 선을 결정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들 사이의 종국적인 불화를 암시하면서, 정치적 삶에 대해 철학적 삶의 우위를 확신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국가』의 해석이 불러일으키는 난점들이 무엇이든 간에 근본적으로 8 서문 서문 9 실수한 것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유일한 독해는 우리 현대인 일부가 그것에서 전체주의 이론의 첫번째 표현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무시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독해는 사회적인 것에 대한 필연적인 정치적 제도라는 관념, 그리고 내적인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전 범위를 감지할 수 있는 하나의 공간에 속하는 존재라는 관념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혹은 활동의 다양한 양식, 행위, 믿음을 하나의 동일한 틀 속으로 이끌어 들이고, 갑작스럽게 개인들을 한 명의 주인에 대한 의지에 종속시킬 수 있는 강압적인 힘을 상상하지 않고서 어떤 단일성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의 정신은 플라톤의 저작에 대한 몰이해를 넘어서 일반적인 정치철학에 대한 몰이해를 의미하며, 그것은 그 기원들에 대한 질문을 자극한다. 우리는 조금 전에 정치철학과 정치(과)학 사이에 이루어진 단절에 대해 상기시켰다. 그러나 이 경우 결코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또 다른 하나의 단절, 즉 역사에 대한 맑스주의적 개념이 만들어 낸 단절을 상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생산관계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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