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들어가며 _ “백화점에서 ‘사람’을 본 적 있나요?” ‘우리가 간다! 바꾼다!’를 모토로 한 ‘우다다액션단’의 발족식을 위해 영등포의 한 백화점 앞에 갔던 날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서울을 비롯한 각지의 백화점을 직접 돌아다니며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의 일하는 환경을 모니터링하게 될 ‘시민 모니터링 액션단’이었지요. 우리가 왜 여기에 섰는지, 몇 사람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까만 양복을 입은 백화점 관계자들이 한쪽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지나가던 많은 시민들은 우리가 들고 있던 피켓의 문구에 관심을 기울여 주었습니다?“백화점 노동자의 든든한 빽, 시민들이 함께 바꿔 나가요”. 액션단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신문 여기저기 많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백화점으로 가 ‘사람’을 보았습니다. 아니, ‘사람’을 보기 위해, 백화점에 갔습니다. ‘우다다액션단’의 발족식이 있기 1년 전인 2013년, 우리 사회는 백화점 노동자 두 분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전부터 식당, 마트 등 여성노동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 서비스 직종의 노동 환경을 인권적으로 바꾸기 위한 활동을 지속해 왔던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표적인 서비스직인 백화점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백화점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당사자 인터뷰를 진행했고,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열네 분의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그 중 열두 분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렸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서비스·판매직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 장시간 노동과 매출 압박, 끊임없는 감시와 감독을 받는 등 ‘물건’보다 낮은 대우를 받거나, 그 존재가 인식되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객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백화점의 서비스 정책 때문에 백화점 노동자들은 손님이 없어도 ‘서비스 라인’에 서서 깍듯한 인사를 하거나, 명찰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점을 받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화점은 ‘서비스 품질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미스터리 쇼퍼 제도’ 등을 통해 노동자를 극도의 긴장 상태에 두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백화점 노동자들의 이런 이야기들을 ‘시민들의 눈과 목소리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서비스·판매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노동 환경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모여, 직접 발로 뛰어 백화점 노동 환경의 실태를 확인하고 시민의 목소리로 또 다른 시민들과 백화점에 변화를 요구하며 그야말로 ‘백화점 노동자의 든든한 빽’이 되어 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2014년의 봄날, 민우회는 ‘우리가 간다! 바꾼다!’ 일명 우다다액션단을 모집했고, 서울을 비롯하여 고양, 파주, 광주, 춘천 등지에서 39명의 액션단이 모였습니다. 그 중에는 이전에 백화점에서 노동자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을 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화려한 백화점의 이미지에 주눅이 들어 왠지 모를 불편함이 들었던 경험도, 편하게 선물이나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어 즐겨 찾게 되더라는 경험도 서로 나누었지요. 우리는 모여서 백화점의 고용구조와 유통구조 등에 대한 강의를 들었고, 각자 시간을 내어 백화점에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다녀온 백화점 매장이 총 499개 매장입니다. 온갖 상품으로 가득한 백화점에, “물건이 아닌 ‘사람’을 보러 간다”라는 액션은 생각보다 더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늘 물건만 보이는 안경을 끼고 다니다가, 갑자기 물건 대신 사람이 보이는 3D 안경을 낀 것 같았달까요? 화장품 매장에서 건네주는 샘플이나 새로 나온 화장품을 보는 대신에, 그 화장품을 건넨 사람이 손님들에게 건네는 멘트에 더 귀 기울이고, 백화점 매장에서 팔고 있는 신발이나 의류를 보는 대신에, 백화점 노동자들이 신고 있는 신발과 유니폼이 불편하지는 않은가를 더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러자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백화점에는 ‘백화점’(百貨店)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물건만 많은 줄 알았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큰 백화점의 경우에는 한 개 층에만 100명이 넘는 판매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고 하니, 백화점 건물 하나가 마치 작은 마을처럼 느껴졌습니다. 창문 하나 없이 높고, 크고, 각진 모습의 백화점 건물을 바라보면서, 화려하지만 위압적인 얼굴을 가진 그런 마을 같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백화점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묵직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높은 천장에 매달린 눈부신 조명과 함께 군데군데 설치된 CCTV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백화점의 층마다 돌아다니며 CCTV의 개수를 세어 보았습니다. 매장 안팎과 계산대 위에 빼곡하게 설치된 백화점의 CCTV를 보며 ‘저 수많은 눈들이 일하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참 숨이 막혔습니다. 비상계단에까지 설치되어 빨간 전원 표시를 반짝이며 돌아가는 CCTV를 보며, 우리는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건도 사람도, 그리고 CCTV도 참 많은 백화점에는, 반면에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풍경들도 있었습니다. ‘앉아 있는 백화점 노동자’, ‘안경을 낀 여성노동자’,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는 백화점 노동자’입니다. 앉을 수 없는 것뿐만 아니라 앉을 의자조차 없다는 것이 못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화려하고 근사한 건물이 직장인데, 알고 보면 ‘의자 하나 주지 않는 직장’이라니 말입니다.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매장이 많은 백화점 1층에서는 ‘안경 낀 여성노동자’ 또한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백화점은 시력이 좋은 사람만 뽑는 것도 아닐 텐데, 거짓말처럼 안경 낀 사람이 이렇게 없다니, 이상한 일 아닌가요? 물기 한 방울 없이 깔끔한 ‘고객용’ 화장실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우리는 백화점 노동자를 만나 볼 수 없었습니다. “이 제품, 좀더 작은 사이즈는 없나요?”라고 했을 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객님”하고 달려가 재고품을 가져온 백화점 노동자는 어디로 어떻게 다녀온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백화점에서 많이 발견한 것과 전혀 발견하지 못한 것들은 어쩐지 조금 뒤바뀌어 있는 것 같았고, 우리는 백화점을 방문하는 내내 ‘우리가 이 노동 환경의 생생한 목격자가 되자’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연, 기억에 남는 순간은 ‘스태프 온리STAFF ONLY 구역’에 들어가던 날이었습니다. 백화점 곳곳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 ‘스태프 온리 구역’, ‘고객 출입 제한 구역’이라고 써 놓은 문이 있습니다. 그 공간 너머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요? 고객의 눈에 가장 화려하고 편리하게 보이게 꾸며진 백화점이지만, 그 고객에게 ‘금지된 공간’인 그곳의 풍경이 참 궁금했습니다. 스태프 온리 구역의 출입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어떤 곳은 철로 만들어진, 사람 키 높이의 기다란 사물함이 좁은 복도 양쪽에 가득 차 있었고, 어떤 곳은 상품으로 가득 찬 박스들이 공간을 한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상품이 담긴 종이박스들이 가득 가득인 모습을 보며, 확실히 그곳은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상품만을 위한 공간’, 즉 창고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물건은 다리가 아프지도 않고, 잠시 햇볕을 쬐고 하늘을 보며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필요도 없으니, ‘물건만을 생각한’ 창고에는 의자나 창문이 필요 없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여기는 엄연히 ‘STUFF ONLY(물건 전용)’가 아닌, ‘STAFF ONLY’,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화려한 백화점 실내에서 문 하나 넘었을 뿐인데, 삽시간에 밋밋한 무채색의 공간이 나타났고, CCTV가 달린 복도를 따라 걸어가자, ‘직원 전용 화장실’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 싶을 만큼 화려한 고객 전용 화장실과 달리, 그곳은 허름한 화장실이 서너 칸 딸린 작은 화장실이었지요. 화장실 안에도, 물건이 담긴 박스가 가득 들어가 있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칸은 두어 칸 정도로 보였습니다. 그 작은 화장실을, 100명도 넘는 백화점 노동자들이 함께 사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매 층마다 직원용 화장실이 있는 게 아니어서, 화장실에 가려면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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