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1%의 힘』 들어가는 글 이 책은 ‘1%가 인생을 바꾼 실화들’로 가득하다. 온 세상에 불안과 고통이 가득하지만, 그에 지지 않고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 준 ‘1%의 힘’에 관해 꼭 한 번 써보고 싶었다. 1%에는 인생을 바꾸는 신비로운 힘이 담겨 있다. 절망의 한가운데로 내몰려 길을 찾기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어떻게든 1%만 바꿔보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함께 1%의 신비한 힘에 눈을 떠보자. 절체절명의 순간에 100% 완벽하게 모든 것을 고치고자 하면, 몸부터 그만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만다. 그러다가 자칫 온몸을 꼼짝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에는 ‘우선 1%’, 그리고 ‘1%씩’ 해보자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과연 오늘날보다 ‘1%의 힘’이 더 절실한 시대가 또 있을까? 나는 지금부터 14년 전인 2000년에 『분투하지 말자』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 『분투하지 말자』를 ‘암, 너무 열심히만 살 건 없지’‘그냥 있는 그대로 살자’로 바꾸면 어떨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 무렵보다 요사이가 훨씬 더 살기 힘들다. 시대는 분명히 더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1%가 더 소중하다고 보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서도 세계 곳곳에서는 처참한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어이없게도 많은 가해자가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이는 오로지 자기만 앞세우는 이기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세상에 알려지는 사건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우리와 가까운 주변에서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소소한 사건들이 잔뜩 벌어지고 있다. 나, 나, 나, 그리고 또 나. 그야말로 오로지 나뿐이다. 이럴 때 단 1%만이라도 좋으니,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틀림없이 그렇게 하는 ‘1%씩’ 사태가 호전될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 1%가 사회를 바꾼다. 1%에는 세계를 바꾸는 힘이 담겨 있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내가 의료지원을 위해 힘을 써온 이라크,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은 지금도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최근 수년 동안 한중일 사이에는 상대에 대한 비판과 중오심이 이글거리고 있다. 이런 때 각자 대체적으로 자신이 속한 나라의 주의주장을 따른다 할지라도, 1%만 상대국가의 어려움을 헤아려준다면 어떨까. 어쩌면 그 1%가 전쟁을 막아줄지도 모른다. 나는 언젠가부터 1%는 누군가를 위해,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한 1%가 돌고 돌아 이제는 나에게 힘을 보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서 더 커진 힘을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용한다. 이렇게 1%가 회전해 나아가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그게 정말로 1%였는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돼버린다. 그처럼 ‘1%는 누군가를 위해’가 돌고 돌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100%를 넘어서게 된다면, 그 기쁨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때일지라도 나는 변함없이 1%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1%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도움을 받는 사람도 1%라면 그다지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누구나 나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100%의 힘을 쏟아가며 살게 된다. 그게 인간이다. 나는 참고 또 참으며 열심히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온몸에 잔뜩 힘을 준 채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산다는 것은 투쟁하는 것이다. 전력투구이다. 나의 이런 말은 어쩌면 역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고 삶의 보람이라 할 ‘소중한 나의 일’을 지키기 위해 100%의 힘을 쏟아 붓는 순간, 거기에서 ‘1% 더’가 절실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필생의 일을 추구할 때에도 100%만으로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흘러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기적인 생명체인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경쟁사회에서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세상에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는 태도를 취해도 감히 비난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위에 1%, 누군가 다른 이를 위해 살면 심신에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 고혈압 발생율도 떨어지고, 동맥경화도 줄어든다. 우리는 마음을 지닌 동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면 우선 자신의 심신에 좋은 것이다. 1%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상황에서는 전쟁터의 분위기가, 가정의 분위기가, 삶을 영위하는 지역의 분위기가 바뀐다. ‘1%주의’에는 지속력이 있다. 계속된다는 건 하나의 힘이다. 나는 체르노빌의 원조활동을 위해 24년이 넘게 힘을 쏟아왔다. 이라크의 백혈병 환우 지원사업도 벌써 10년을 맞았다. 체르노빌에 처음 갈 때도, 이라크의 전쟁터로 오가기 시작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바보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바보다. ‘1%주의’를 취하면 누구나 쉽사리 바보가 될 수 있다. 역설적인 표현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워지기도 쉬운 것이다. 고단한 인류사회에는 이런 바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전 인생을 거는 것이 아니라 단 1%를 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선택하기가 한결 쉽다. 그런데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 가마타 같은 사람에게 온전히 다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진심으로 도와주려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1%의 응원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대신 나도 1%의 무리, 노력, 인내, 기력 따위를 한껏 발휘하려고 애써왔다. 1%도 다발로 묶이면 저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참고 또 참으며 너무 열심히 살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계속 분투해온 나의 경우 입으로는 1%, 1%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101%를 목표삼아 왔는지도 모르겠다. ‘1%의 인내’라고 생각하면, 내키지 않는 상황에서도 인내할 수 있었다. ‘1%의 무리’라고 생각하면 어떤 무리라도 해낼 수 있었다. ‘1% 더’라고 생각하면 마음이나 몸을 움직이기가 훨씬 수월했다. 나는 스와 중앙병원에 부임한 이래 나가노 지역의 건강만들기 운동을 40년째 진행해왔다. 나는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말을 건네곤 했다. “1%만 생활습관을 바꿔보지 않겠습니까?” 몸에 배인 생활을 한꺼번에 다 바꾸기란 너무 어렵다. 하지만 1%라면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뒤 나가노 지역 전체가 크게 바뀌고, 놀랍게도 일본 제1의 장수촌으로 올라섰다. 나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인생 또한 1%로 바뀌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란 참으로 신비한 숫자이다. 제로(0)와 비교해보면, 1%는 그야말로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다. 100%와 비교할 때 형편없이 작아 보이는 1%가 사실은 무한대의 힘을 발휘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1%, 그것을 바라보는 눈길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모두가 1%만 생활습관을 바꾸면, 틀림없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도 바뀐다. 어쩌면 세계 전체가 바뀔 수도 있다. 이것이 ‘1%의 오묘한 작용’이다. 1%에는 신비로운 힘이 담겨 있다.
리뷰 남기기
로그인하면 리뷰를 남길 수 있어요.
리뷰 0개
아직 리뷰가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