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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가격

천재들의 가격

가도이 요시노부 (지은이), 현정수 (옮긴이)

창해·2009-04-15

  • 문학
  • KDC 8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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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천재들의 가격 1 한 장의 그림이 있다고 하자. 그 그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분할 때, 보통 우리들은 몸의 어느 부분을 사용할까? 물론, 눈이다. 그러나 자신을 가미나가 미유神永美有라고 소개한 그 젊은이는, 혀를 살짝 내밀더니 “여기입니다”라고 가리켰다. “만약 가짜라면, 본 순간 쓴맛을 느낍니다. 잡초를 우려낸 것 같은 역겨운 쓴맛이죠. 진품이라면 단맛을 느낍니다.” “그건 어떤 미술품을 봐도 똑같습니까?”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볼 그림은 당신에게 감정을 맡기는 편이 좋겠는데요?” 농담조로 말하자, 상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는 김에 한 가지 더.” 나는 말을 이었다. “미술상이란 인종 자체도 감정해주셨으면 좋겠군요. 그 양반들은 이렇게 사람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 일상다반사입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우리들이 벌써 20분 이상 이 하얀 회반죽벽에 둘러싸인 지하실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죠.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어쨌든…….” 가미나가는 거기서 입을 다물더니, 동그란 금테 안경을 손가락으로 살짝 밀어올리고는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보티첼리니까요.” 역시. 나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위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알 수 없죠, 실물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진품일 가능성은 낮습니다. 사사키佐佐木 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미나가의 표현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활약했던 일급 화가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아무도 모르게 전해져 내려왔다니, 어지간히 낙천적인 인간이 아니고서야 믿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나는 미술사를 전공한 학자 나부랭이다. 확실히 밝히자면 내가 이곳에 온 이유인즉슨, 아주 오래전에 그려진 그림이 현대의 가격표를 매달고 팔려나가는 현장을 한번 봐두고 싶다는 향학심, 혹은 속물근성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구경꾼이란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곱상한 청년은 왜 온 것일까. 나와 같은 이유에서일까? 아니, 그런 것 이전에 평소 하는 일은 무엇일까? 아까 위층의 홀에서 인사를 나누었을 때, 그는 명함을 건네지도 않고 직업을 밝히지도 않았다. 그것은 간판이 없는 가게처럼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말씨가 우아한 데다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으며 행동거지 하나하나 온화한 자신감에 넘치는 것이, 언뜻 봐도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뭐,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겠죠.” 내가 입을 연 순간, 문이 열려서 나와 가미나가는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앞머리가 벗겨진 작은 체구의 통통한 남자가 성급한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홍조를 띠고 있는 이마는 벌써부터 땀으로 푹 젖어 있어서 마치 이슬이 맺힌 것 같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을 내밀더니, 그것을 받아들려고 뻗은 내 손을 꾹 쥐었다. 동물 기름 같은 땀이 끈적끈적 들러붙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갤러리아 요코사와. 사장, 요코사와 다다오橫澤忠郞.’ 그런 직함과 이름이 적힌 명함을 건넨 미술상은, 가미나가에게도 같은 행동을 하더니 발길을 돌려 막 내려왔던 계단을 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보시게 될 그림은 이 저택의 초대 주인인 다키타 노리사다瀧田則定 자작이 몸소 동유럽, 지금의 슬로베니아 공화국으로 발을 옮겨서 구입한 작품입니다. 메이지 천황이 붕어한 이듬해였다죠. 당시로서는 아니, 현대의 시각으로 보아도 이것은 참으로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런던이나 파리 같은 거대 시장에서 눈을 돌리고도 진귀한 물건을 찾아낼 수 있는 수집가는 이 세상에 한 줌도 안 될 테니까요. 어이, 조심해!” 갑자기 미술상이 호통을 친 것은, 제복 차림의 젊은 아가씨가 좁은 복도에서 지나쳐 가려다가 나와 어깨가 닿았기 때문이었다.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자, 미술상은 코를 킁킁거리더니 여직원에게 세 사람의 커피를 시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청산유수 같은 화술과 시원시원한 목소리는 그가 이제까지 같은 말을 수도 없이 해왔음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마치 보험 회사 직원에게 생명보험을 강매당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기 전에 목적하던 방에 도착하게 되자, 미술상은 아쉬운 듯 미간을 좁혔다. “이러쿵저러쿵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보다는 역시 실물을 보는 게 제일이죠. 자아, 들어오세요.” 그러고는 하얀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나무문을 천천히 밀었다. “드디어 거장과의 대면이군요.” 나는 귓속말을 했다. “어쩌면, 거장의 허상일지도 모르죠.” 가미나가가 미소 지었다. 문을 지나 들어간 곳은 사방이 붉은색 벽돌로 둘러싸인 다섯 평 정도의 방이었다. 정면에는 가로세로 50센티 정도의 창문이 나 있었는데 불투명한 유리가 잡목림의 모습을 희뿌옇게 만들고 있는 모습이, 건물이 세워진 시대를 느끼게 했다. 창문의 반대쪽, 남쪽 벽은 최근에 단 것으로 보이는 두꺼운 차광 커튼에 덮여 있었다. 미술상은 손을 뻗어서 그 커튼의 왼쪽 끝자락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자아, 보십쇼. 보티첼리의 그림, 「가을」입니다!” 그렇게 외치더니, 몸을 우리들 쪽으로 향한 채 옆으로 걸어가며 다다미 한 장 분량을 가볍게 넘어가는 커다란 천을 옆으로 걷었다. 숨을 삼켰다. 그림은 벽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필치는 보티첼리와 매우 흡사했다. 수확을 마친 포도밭에서 광연狂宴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젊은 여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누워서 오른쪽 다리를 하늘을 향해 뻗고 있다. 눈을 감고서 어떤 신음을 흘리고 있는 것이, 이미 황홀경에 빠진 모습이다. 곁에는 갈색 피부를 한 근육질의 젊은 남자가 서 있는데, 이 인물도 쾌락의 소리를 지르면서 왼손을 여자의 목덜미에 대고 몸을 숙이고 있다. 지금이라도 하반신을 여자의 다리 사이로 밀어붙이려는 듯한 자세다. 그림의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있었다. 역시 두 사람 다 알몸이다. 남자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여자는 무릎을 꿇고 남자의 넓적다리에 달라붙어서 얼굴로 딱 남자의 국부를 가리고 있다. 남자의 오른손은 알이 큼직큼직한 포도를 세게 쥐고 있어서 뚝뚝 떨어지는 과즙이 여자의 어깻죽지를 물들이고 있다. 이 연회를 통솔하는 것은 왼쪽 가장자리에서 다리를 뻗고 앉아 있는 젊은 남자다. 하얀 피부의 그는 상반신을 포도나무에 기댄 채로 허리에 한 장의 작고 붉은 천을 두르고서 왼손으로 은 술잔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눈동자가 탁한 것은 술에 취한 탓일까? “그렇다는 얘긴, 이건 디오니소스로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말씀대롭니다.” 미술상은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술의 신이죠. 즉,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축제, 디오니소스 축제를 그린 것이라 사료됩니다.” 어쩐지 미묘한걸.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티첼리가 한때 고대 그리스 신들을 질리도록 그렸다는 것은 사실이니, 이것도 그러한 그림 중 하나라고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신화를 다루는 그의 붓놀림이 항상 세련되고 차분했던 것을 고려하면(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을 보라!) 이 거친 느낌은 그답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일급 화가가 심혈을 기울여 그린 작품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특히 내 눈에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다름 아닌 무지개였다. 곤드레만드레 취한 주신酒神의 발치에서 하늘을 향해 매끄러운 호弧를 그리고 있는 그것은, 무지개치고는 상당히 폭이 좁아서 끽해야 5센티미터 정도의 폭밖에 되지 않았지만 꼼꼼하게 일곱 빛깔로 칠해져 있었다. 이렇게나 세밀하고 아름다운 무지개라면 과연 하늘과 땅의 가교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흙의 질감이나 은 술잔의 광택, 여인들의 우아한 자세, 어느 것을 놓고 봐도 전체의 가치를 높이는 데 공헌하고 있었다. 거장의 작품이 아니라 할지라도 역시 대형미술관에 진열되기에 부족함 없는 그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내 의식을 현실로 되돌려놓았다. 돌아봤더니, 입을 손으로 누른 가미나가가 눈을 크게 뜨고서 몸을 약간 떨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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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천재들의 가격 · 7 지도 위의 섬 · 75 이른 아침의 열반 · 141 논점은 베르메르 · 209 유언의 빛깔 · 279 역자 후기 · 348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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