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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기억 속의 너

하얀 기억 속의 너

김상옥

(도서출판)창해·2010-01-30

  • 문학
  • KDC 8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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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신혼여행과 병문안 사랑을 받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다. - 헤르만 헤세 중에서 “최 선주, 어떻게 결혼을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상옥은 자신이 없었다. 지금 상옥의 가슴속에는 온통 수빈이 생각뿐인데 어떻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여 사랑할 수 있을지, 그것이 두려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예 입 밖에도 내지 말그라. 누구네 집안 망하는 꼴 볼라카나? 그라고 예정대로 실수 없이 결혼식 올리고 신혼여행도 잘 다녀와야 되능 기라. 그라고 나서 아무도 모르게 수빈 씨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기라. 내도 힘닿는 데까지 도울 테니까네. 알겠제? 그라고 이 일은 니와 내를 빼고는 귀신도 몰라야 되능 기라. 만약에 이런 일이 소영 씨나 소영 씨 친정에 알려지게 되는 날이모 내는 모가지가 열 개가 있어도 모자란다 카이.” “왜, 내 목이 아니고 자네 목이 모자란단 말이야?” “일마야 속 모르는 소리 하지 말그라. 내가 소영 씨와 니를 엮을라꼬 왔다 갔다 얼매나 쇼를 한 줄 아나? 그런데 일이 잘못되는 날이모 내는 내 명에 못 죽능 기라. 그라이 니도 친구 하나 있는 거 살릴라 카모 앞으로 잘해야 되능 기라. 알겠나?” “그러면 처음부터 모든 것이 최 선주 자네의 계획적인 작전이었단 말이야?” “그기야 어찌 되었든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네. 앞으로 행복하게 잘살아 도고. 그래 주면, 니도 좋고 내도 살리는 거니까네. 니 알아서 하그라.”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최 선주의 치밀한 작전이었다. 도저히 설득할 수 없을 거라는 동생들과 아이들까지 부추겨 상옥의 결혼을 성사시킨 사람이 바로 최 선주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상옥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듯 허탈한 마음이었으나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상옥은 다음 날 한소영이라는 여인과 아담하고 깨끗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친구들과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왔다. 상옥은 이미 예약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런데 즐거워야 할 신혼여행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마음은 이래서는 안 된다 하면서도 상옥의 머릿속에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수빈의 수척한 모습만 보이는 것이었다. 상옥은 생각다 못해 술이라도 마시면 나아질 것 같아 신부를 데리고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갔다. 그곳은 이미 신혼부부들로 가득했다. 상옥은 밤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는 아무 말 없이 벌써 몇 번째 술잔을 비워 냈다. “소영 씨! 나와 결혼한 거 후회하지 않아요?” 상옥이 따라 준 술잔을 다소곳이 바라만 보고 있던 소영은 상옥의 바보 같은 질문에 엷은 미소를 지을 뿐 아무런 대답이 없다. “상옥 씨가 제 이름도 모른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제 이름?” 상옥은 순간 무언가에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건 최 선주의 고자질이 분명하였다. “누가 그런 터무니없는 모략을 했어요?” “상옥 씨 친구분께서 그러시던데요.” “최 선주 말입니까?” “네.” “그 친구 언제 만났어요? 어젯밤 늦게까지 나와 술 마셨는데.” 소영이는 아무런 대답 없이 웃고 있었다. 꾸밈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소영의 얼굴이 예쁘게 보였고, 그의 고른 치열이 조명등의 빛을 받아 진주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결혼식 직전에 신부 대기실에 와서 말해 주던데요. 신부의 이름도 모르고 결혼하는 멍청이가 있으니 혼내 주라고 하면서요.” “그건 낭설입니다. 아무려면 자기 신부의 이름도 모르고 결혼하는 바보가 있겠어요.” 돌덩이처럼 굳어져 있던 상옥의 마음은 몇 잔 마신 술기운과 소영의 잔잔한 웃음과 싫지 않은 유머에 조금씩 풀려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상옥의 마음은 또다시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그것은 수빈이 때문이 아니었다. 상옥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소영이었다. 소영은 상옥의 지난 과거를 모두 알고 있었다. 상옥이 책에서 말한 대로 수빈과의 모든 관계는 이미 정리가 된 걸로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주일 전부터 불과 며칠 전까지의 일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상옥은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저 가녀린 여인 한소영은 자신의 첫 결혼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신중히 선택하여 제2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자신과 결혼을 결심한 것이었다. 상옥 또한 주위의 강력한 권유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결혼이라고 변명을 하였지만 솔직히 자신의 내면에서는 진작부터 재혼을 생각해 왔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상옥은 그러한 용기와 결단력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밀려온 것이었다. 상옥은 소영과의 재혼을 결심하던 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였다. 재혼을 하면 지난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철저하게 현실에 충실하여 새로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찾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상옥은 하룻밤의 악몽도 참아 내지 못하고 하광정을 찾아갔고, 또다시 인천까지 찾아가 수빈의 참담한 현실을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그 참담함에 또다시 심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자신이 미웠고, 소영에게 엄청난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에 몸을 떨고 있는 것이다. 상옥은 술을 많이 마셨고 마신 만큼 술에 취했다. “소영 씨, 미안해요. 내가 너무 취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소영 씨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소영 씨! 지금 당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당신, 한소영을 나의 가슴 가득히 사 랑할 것입니다. 한소영 당신 말고는 그 누구도 나의 가슴에 들어올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렵더라도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 “소영 씨.” 그러고는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심한 갈증에 눈을 떠 보니 상옥과 소영은 반라가 되어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스카이라운지 이후로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완전히 필름이 끊긴 것이었다. 상옥은 결혼 첫날밤을 그렇게 보냈다. 상옥과 소영은 3박 4일 동안 그런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마치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처가댁의 풍습대로 여행에서 돌아온 날 밤은 처가에서 보내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상옥과 소영은 부부라는 이름으로 한집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서툰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것이다. 소영은 매사에 열심이었다. 결혼 전까지 7년 동안이나 운영하던 슈퍼마켓도 미련 없이 정리하고 집안 살림을 하면서도 상옥이 운영하는 공장일을 열심히 도와 주었다. 그러나 상옥의 마음은 소영처럼 그러지를 못하고 온통 인천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상옥이 결혼식을 올린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수빈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여 죽을 지경인 데도 어떻게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옥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최 선주였다. 최 선주는 이른 아침에 상옥의 집을 찾아와 너스레를 떨고 있다. “보소, 제수씨요. 미안하지만도 늙은 새신랑 하루만 빌려 주소.” “늙은 새신랑을 어디에 쓰실려구요?” “내사, 저놈아가 딱 하루만 필요한 기라요.” “하루씩이나요? 전 한 시간만 없어도 안 되는데. 대체 뭐 하실려고 그러세요?” “다름이 아니고요. 내가 오늘 서울에 볼일이 좀 있는데 서울 지리도 잘 모르고 혼자 가기가 심심해가 그런다 아잉교. 그러이 오늘 하루만 빌려 주소. 세는 비싸게 낼게예.” 상옥은 그제야 최 선주가 너스레를 떠는 저의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세요. 그럼 빌려 드릴게요. 여행시켜 주고 세까지 준다 하는데 일거양득이네요.” 상옥은 소영의 허락이 떨어지자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상옥의 마음은 이미 인천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보니, 두 분이 사전에 약속했던 거 아니에요?” 최 선주와 사전에 약속한 것은 아니었으나, 상옥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야, 나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어요.” “그럼 그렇게 빨리 외출 준비를 할 수가 있어요? 아무래도 사전 모의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에요?” “전혀 아니야. 이봐 최 선주 뭐라 말 좀 해 주라구.” “알았어요. 어서 다녀들 오세요. 재미있는 여행 되세요.” 상옥은 최 선주의 마음씀이 한없이 고마웠으나 소영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목차펼치기

제3부 나 이제 너를 잊으리 신혼여행과 병문안 9 짧은 행복 22 비밀은 없다 45 악연의 끝은 어디인가 74 숙명적 만남 107 떠나는 자 떠나게 하라 126 사랑을 이길 무기는 없다 137 제4부 다시 사랑하지 않으리 새벽 안개 171 운명의 재회 179 보은 197 갈등 217 시련기 224 생과 사의 갈림길 251 두 집 살림 272 또 하나의 길 308 세월 325 짧은 행복, 그리고… 350 첫사랑의 얼굴 373 만찬 400 눈물 편지 420 끝없는 기도 437 잠든 파도 455 에필로그 47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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