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 책을 읽는 어린이에게 진눈개비가 내립니다. 질척질척 내리는 눈발 사이를 걷다보니 문득 조국을 위해 몸 바쳐 싸웠던 수많은 분들을 떠오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안재홍 선생님이 생각나는 것은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42년 12월, 일본 경찰에게 잡혀가 영하 20도를 밑도는 살을 에는 듯한 날씨에 온갖 고문을 당하며 괴로워했을 안재홍 선생님을 생각하면 존경스러우면서도 한없이 궁금해집니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암울한 시대, 안재홍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위해 수도 없이 감옥을 들랑거렸을까요? 안재홍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며 그 무시무시한 고문을 견뎌 냈을까요? 일본 경찰의 입에서 쏟아지던 온갖 욕설과 협박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것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목숨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안재홍 선생님 역시 그런 분이었습니다. 얼마든지 가족들과 평화롭고 고요한 일생을 보낼 수 있었지만,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가족을 잃고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안재홍 선생님은 스스로 평화로운 생활을 버리셨습니다. 그런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강제로 우리 나라를 지배하면서 우리 나라 국민들은 무려 36년 동안 혹독한 고통을 맛봐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치욕을 참으며 겨우 목숨을 유지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동포를 배신하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아부해 자신의 배를 불렸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내 놓고 저항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용기 있게 저항하는 것만이 훌륭한 일이었으며, 목숨을 부지했던 이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역사적 사건 앞에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결단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런 결단의 순간 앞에서는 용기가 있다 해도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역사적인 시각과 안목입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볼까요? 역사적인 시각에서 넓게 보면, 개인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착해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 아주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가령 1909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쏜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이토 히로부미는 한 가족의 가장으로, 아버지로, 혹은 남편이자 자식으로 착하고 완벽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를 강제로 빼앗고 수많은 민중들에게 고통을 안겨 준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반대로 민족에게는 꼭 필요하고 또 아주 훌륭한 인물이 비정한 아버지일 수도 있고요. 그러한 까닭에 우리가 한 인물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잘잘못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만 합니다. 무엇이 사회를 위한 것인지, 역사적으로 무엇이 옳았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민세 안재홍 선생님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재홍 선생은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조국을 구하기 위해 평생토록 모든 것을 바치신 분입니다. 독립운동을 하느라 늘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고,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가족들이 늘 굶주리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습니다. 선생님 자신은 무려 아홉 번씩이나 감옥에 들랑거리며 모진 고문과 치욕을 겪어야 했고요. 이 모든 것들은 우리 민족을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이웃을 위해,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바친 안재홍 선생님의 삶은 그래서 안타깝고 슬프면서도 감동적입니다. 모든 괴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까지 안재홍 선생님이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일제강점기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은 안재홍 선생님만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우리 나라는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생각과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들 역시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서로 충돌하고 미워하는 일도 자주 있었지요. 해방 후에 우리 나라가 하나가 되지 않고 서로 싸워 남북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람들이 제 고집만 부린 탓에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나로 합쳐 내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지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가운데에서 특히나 안재홍 선생님의 삶을 돌아보고 싶었던 까닭은 그분이 이런 갈등을 염두에 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을 조정해 ‘다함께 잘 살기’, 즉 ‘다살이’를 몸소 실천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조국 독립이라는 큰 목표 아래 안재홍 선생님처럼 민족이 크게 뭉쳐야 한다고 외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한 군데로 뭉치려면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때로는 양보하며 서로의 입장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못했거든요. 그러니 안재홍 선생님의 ‘다살이’ 정신은 오늘날 여전히 필요한 가치가 아닌가 싶었던 것이지요.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며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잇속을 위해서 나쁜 일을 일삼는 사람들, 자기는 많은 잘못을 저지르면서 다른 사람의 실수는 작은 것도 참아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안재홍 선생은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며 ‘다 같이 더불어 잘 살자’고 조용히 외치고 계십니다. 이 책에서 어린이 여러분들은 민세 안재홍 선생님의 귀한 생각을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뒤에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라봅니다. 2009년, 겨울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글쓴이 오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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