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옮긴이의 글 《펭귄의 실종》은 2006년 솔에서 번역출간 했던 《펭귄의 우울》의 속편이다. 전편은 펭귄 미샤가 타기로 예정되었던 남극행 비행기에 주인공 빅토르가 대신 탑승하면서 별다른 결말이 없는 상태로 마무리되었고, 빅토르가 남극에 도착하면서부터 펼쳐지는 드라마가 속편인 《펭귄의 실종》에 담겼다. 전편에 비해 속편을 읽는 재미가 떨어질 거라는 걱정은 이 글에서는 실종되고 만다. 숨 가쁠 정도의 역동적인 액션 속에서도 삶의 근본문제와 인간심리에 대한 작가의 서정적인 접근이 드러나며, 혼란스러울 정도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러운 종착점에 이르면서 속편이 없는 《펭귄의 우울》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소비에트 해체 이후 극심했던 1990년대의 사회혼란, 그리고 생존을 최대한의 덕목으로 삼아야 했던 암울한 키예프의 상황이 《펭귄의 우울》에 투영되었다면, 《펭귄의 실종》에는 키예프의 고통이 모스크바, 체첸, 그리고 발칸반도에 이르는 슬라브인들의 고난의 현대사로 확장되고 있다. 고난의 현대사는 실종된 펭귄 미샤를 찾아 나서는 빅토르의 순례의 여정을 통해 대서사시의 형태로 그려지며, 슬라브인의 서사시는 마침내 발칸과 구舊 소비에트의 영토를 벗어나 남미의 외딴 곳 아르헨티나에서 구원의 항구를 발견하면서 여정을 마감한다. 소설 한두 권에 담기가 벅찰 정도의 큰 스케일과 다양한 사건들을 단일한 소설공간 속에 포착한 것은 쿠르코프의 추리소설식 글쓰기 기술 덕분이다. 작은 소품 하나도 결국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힘으로 활용되고, 스릴러를 읽는 듯한 긴장감은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주며, 일관성 있는 결말로 향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살아남는 것이 미덕이었던 고난의 역정 속에서 다양한 삶을 그리면서 소설 공간이 한없이 증폭되지만 결국 일정한 부분으로 수렴되는 전개과정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 이야기꾼 쿠르코프의 사설에 빠지면 이야기를 다 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쪽을 덮으면서 얼개가 잘 짜인 추리소설 한 편을 읽었다는 느낌에 머물지 않는다. 사라진 펭귄 미샤를 찾아서 남극으로 데려다주는 여정이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 되고 ‘격변기를 살아남은 슬라브인들이 새롭게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불쑥 들어오기 때문이다. 마치 톨스토이의 에서의 피에르 베주호프와 같이 끝내 살아남아서 러시아의 삶을 이어가는 파노라마의 현대적 판본을 본 듯하다. 《펭귄의 실종》에는 겉으로는 잃어버린 펭귄을 찾아 고향인 남극으로 데려다 주는 과정이 드러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지난 세기 90년대를 살았던 슬라브인들에게 바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작가의 마음은 격동의 시기에 스러져간 자들에게는 진혼곡의 형태로, 그리고 생존한 자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항해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모스크바와 키예프를 비롯한 구 소비에트 지역의 1990년대와 현재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더 흥미롭고, 소설 내부에 한국인 등장인물과 삼성을 비롯한 한국을 연상시키는 상징물들이 장치되어 있어 한국인 독자에게는 쿠르코프 소설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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