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역자 후기 독일 유학 시절 나타샤라는 친구한테서 요제프 로트의 소설 《욥-어떤 평범한 남자 이야기》를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3년 전 (가톨릭) 세례를 받고 난 후 이 책에 관심을 갖고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현대적 욥의 이야기로서 아주 생생하고 시적이며 성담聖譚적인 어조로 경건한 교사 멘델 징어와 그의 아내, 세 아들, 그리고 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인공 멘델 징어는 미국으로 이주를 한 후 그곳에서 많은 불행을 겪고 하느님께 등을 돌리지만, 나중에 불구자 아들 메누힘의 놀라운 치유를 통해 결국 하느님께로 돌아온다. 멘델 징어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는데, 기적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을, 그리고 훨씬 더 많이 돌려받는다. 한 편의 동화, 고통과 결핍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하느님께서 가르치고자 하신 욥의 치유사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욥-멘델 징어가 겪은 것처럼 예기치 않은 일들을 당한다. 이러한 운명의 타격을 받았을 때 우리는 묻게 된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서 우리는 변신론의 문제Theodizeefrage를 생각하게 된다. 멘델 징어는 불구자 아들 메누힘이 천재 작곡가가 되어 그를 구원하는 기적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이 책의 독자들도 힘든 삶의 여정에서 메누힘과 같은 ‘위로자’를 만나리라는 희망을 늘 지니고 살았으면 한다. 예전부터 고통, 재난, 병과 죽음은 욥이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늘 질문하는 경험들에 속한다. 어떻게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재앙을 허락하시는가? 왜 어린이와 죄 없는 사람들까지도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욥 이래로 고통과 죽음의 이유를 찾는 일은 철학, 신학, 문학에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욥의 이야기는 다양하게 문학에 수용된다. 특히 유다 시인들은 그의 운명을 가지고 유대인들이 항상, 무엇보다도 20세기에 견뎌내야만 했던 엄청난 일들을 표현하고자 욥으로 돌아간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유대 민족은 ‘민족들 가운데 욥’이라고 말했다. 서사적 욥 수용의 절정은 의심할 여지없이 1930년에 나온 요제프 로트의 《욥-어떤 평범한 남자 이야기》이다. 메누힘은 멘델 징어 가족에게 대표적으로 주어진 동유럽 유대인의 망명 생활의 고통에 대한 메타포이다. 또한 그 시대에 속하는 인간적 고통의 풀 길 없는 수수께끼, 세상의 근본적인 고통에 대한 보편적인 메타포이다. “그와 같은 이는 이스라엘에 많지 않을 것이다”라는 랍비의 말은 구원자적인 ‘고통 받는 하느님의 종’의 신학적 모티브를 연상시키며, 이로써 부수적으로 고통 받는 메누힘의 대리자-역할을 강조한다. 그한테서 기대되는 ‘구원자성’의 본질은 물론 대리적으로 자기 목숨을 제물로 바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대리적으로 시대의 고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창조적으로 새 세상을 위한 정신적 토대로 변화시키는 새로이 발전된 정신적 자세에 있는 것이다. “고통은 그를 현명하게 만들 것이다, 추함은 선하게, 고뇌는 온유하게, 병은 강하게.” 이러한 ‘지혜’와 ‘힘’은 권력이나 돈과는 무관하며, 이러한 ‘선함’과 ‘온유함’은 위에서 아래로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바닥으로부터 들어 올리는 사랑하는 하느님의 모범을 따르는 자세에서 주어진다. 고통, 추함, 비참함과 병으로 이루어진, 신에 의해 버림받은 작은 아이는 누군가 그 어떤 보편적 교리적 관심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 때문에, 즉 아주 비참함에, 아주 작은 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에 완전히 의존하게 된다. 메누힘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간질병’이라고 올바른 진단을 하는 지식인 의사로서가 아니고, 메누힘의 눈에서 생명을 인식하는 아주 작은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으로서 러시아 의사 졸티지욱이 하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메누힘을 돌보고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내고 그를 후원한다. ‘불행 속에 있는 남을 도와주어라, 그러면 도움이 필요한 자는 궁극적으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는 러시아 의사의 행동만이 메누힘을 통해서 대신하는 질문, 즉 현세에서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인간적인 대답으로서 제시된다. 왜냐하면 메누힘은 아주 작은 일에 대한 자신의 관심으로 빌레스 집 난로에서 떨어져 집을 불태우기 시작한 ‘불타는 장작’을 관찰하고 이 일을 계기로 말을 하게 될 때 이런 일을 하기 때문이다. 기적에 대한 희망은 이 소설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지만 오랜 세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마침내 부활절 저녁에 커다란 기적이 일어난다. 멘델과 메누힘은 만나고, 그뿐 아니라 메누힘은 아버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요나스는 살아 있으며 미리암을 병에서 고쳐줄 의사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멘델은 메누힘의 아이들의 사진을 봤을 때 데보라를 닮은 손녀의 모습에서 죽은 아내를 다시 찾는다. 아들이 바로 구세주의 과제를 떠맡고 나머지 가족들을 한데 모은다. 성경의 전설에서 형들에게 거의 죽임을 당할 뻔했던 요셉이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종족으로 하여금 다시 새로 시작하게 한 것처럼. “고통은 그를 현명하게 만들 것이다. 추함은 선하게, 고뇌는 온유하게, 그리고 병은 강하게”라고 랍비가 데보라에게 한 말이 이루어졌다. 멘델은 행복하고 기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나쁜 경찰서장이라고 말했던 것을 부끄러워한다. 이제 그는 말년에 많은 손자손녀들에 둘러싸여, 욥기記에 씌어 있는 대로 “늘그막까지 수를 다하고” 좋은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희망을 가진다. 멘델 징어에게 일어난 기적이 독자들에게도 일어나길 빈다. “우리는 부활한 죽은 자들이다Wir sind die auferstandenen Toten.”(요제프 로트) 요제프 로트의 언어는 성경의 언어를 상기시킨다. 단순하고 소박하며 영상이 풍부하고, 문장들이 반복되며 또한 가끔 시적이다. 내용을 떠나 저자는 우선적으로 ‘성경적 음악’, 즉 리듬, 음향, 어휘, 신학적 모티브와 루터성경의 모범을 따른 영상성으로부터 결정적인 효과를 기대한다. 이러한 유미주의적 개념eine ?sthetizitische Konzeption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위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상당히 강한 영향력을 지닌다. 그리하여 종교의 대리자로서 ‘고귀한’ 문학이 생긴다. 민속음악 음반(메누힘의 노래)이 토라와 기도서를 대신하고 ‘대가적’으로 행해지지만 역설적으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통속적 위로가 변신론을 대신한다. 번역할 때 리듬을 고려한 효과를 될 수 있는 한 살리려 했으므로, 독자들은 처음에 낯선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그리고 여러 가지로 수고를 해주신 출판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꺼이 이 책을 출판해 주신 임양묵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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