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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

천정배 (지은이), 차병직

강·2007-01-25

  • 사회과학
  • KDC 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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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대화’를 위한 독도법●●● 지도책과 마법사 여행지에 도착하면 천정배는 먼저 지도를 펼친다. 지리적 정보나 여행안내서는 이미 충분히 읽었고 길을 나서기 전에 알 만한 사람에게 묻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지도를 펼친 뒤 책에서 읽거나 본 장소와 현장과 유적 따위가 자리잡고 있을 곳을 가늠하는 것이다. 대개 이때쯤이면 아내 서의숙은 반쯤은 조바심을, 반쯤은 체념하는 자세로 천정배를 바라보고 있기 마련이다. “여행을 공부처럼, 공부를 여행처럼.” 고체화된 정보가 아니라 동적 지식과 세계 이해에 대한 이 견해는 타당하지만 감성이 거세된 듯해서 다분히 뻑뻑한 느낌을 ‘공부를 여행처럼’이라고 함으로써 넘어서고 있다. 지식이 박제화하지 않고 쓸모가 있으려면, 요컨대 동적 구조를 갖게 하는 것은 지식 체계도 중요하지만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표현하고 쓰는 사람의 자세가 결정적이다. 그런 점에서 지식이나 세계에 대한 탁월한 독도법이 있다면 당연히 권할 만하다. “오래도록 내 독도법은 법이었고, 이윽고 정치였다. 둘은 따로 보이지만 내 안에서는 하나다.” 변호사와 정치인, 이 둘은 직업적 방편이라기보다는 세상을 해명하는 데서 나아가 세상을 바꾸거나 고치고 끌어가는 데 필요한 선택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독도법에서 읽을 수 있듯, 그는 먼저 추상하고 머릿속으로 준비하여 돌다리 설계를 마친 뒤 두드려보고 길을 가는 편이다. 그에게 행동이란 사고의 외화된 형태라고 단정지어도 좋으리라. 책이 나오도록 길게 이뤄진 대화에서 그러므로 충동은 완전히 사치였다. 대화에서도 이런 증세는 자주 발견되었다. 천정배는 늘 지도책을 요구했다. 우선 스스로에게 구했고 급할 때는 옆 사람에게 지도책을 보여달라고 했다. 생각이 쉬 떠오르지 않으면 눈을 제법 오래 감고 명상에 잠기는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때로 거의 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의숙은 그럴 때면 도움을 주기보다는 함께 여행을 갔을 때처럼 웃으면서 기다렸다. 서의숙의 손길이 지나간 집 안은 깔끔했다. 책을 보거나 가족회의 할 때 쓰는 탁자에는 방금 데워 온 차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는 식지 않았다. 그것으로 서의숙이 함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천정배가 독도법을 회복하는 방법은 생각 밖으로 싱거웠다. 프로야구 경기나 코미디 프로그램 또는 K-1 경기--놀랄 것은 없다! 그에게도 일상은 있다--로 화제를 돌리더니 난데없이 다시 주제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두뇌 체조쯤으로나 이해해야 할 터이다. 대화 상대자인 차병직은 이런 천정배를 전혀 핀잔하지 않았다. 그 차병직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단 하나다. 강남 중심에 있는, 그와 동료변호사 30여 명이 모여서 일하는 사무실은 여느 법무법인과 다름없이 잘 정돈되어 있다. 처음 찾아가는 이라면 승강기를 타고 5층에서 내려 복도를 건너 유리문을 밀고 오른쪽으로 난 변호사 방을 몇 개 지나 사무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을 끼고 구석에 자리잡은 차병직의 방 앞에 이른 다음 잠시 멈춰 서야 한다. 보통 사람은 심호흡을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어도 좋다. 그리하면 금방 깨닫게 된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방에는 온통 책이 쌓여 있다. 헌책, 낡은 책, 찢어진 책, 구겨진 책, 새 책, 방금 배달된 책, 사 가지고 들어온 책, 회보나 우편물, 같은 사무실 변호사가 낸 책 따위가 한데 엉켜 햇볕 들어올 구멍조차 없다. 책장은 고작 하나뿐이다. 겨우 발을 디딜 틈이 조금 있는 책상 주변에는 쓰다 만 쪽지서껀 구겨버린 종이컵 따위가 마치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고 있었다는 듯 형편없이 당당하게 사람을 맞는다. 대개 그는 그 틈바구니에서 자료를 찾고 글을 쓰고 소송을 준비하고 시민운동에 필요한 사색을 한다. 책상은 비좁고 거의 망가진 의자는 겨우 몸을 세우고 있는데, 먼지 풀썩거리는 그 안에서 대개 하루 남짓 일을 한다면 허리가 아주 틀어질 판이다. “척추측만증이 문제가 아니라 지식이나 양심측만증이 문제 아이가.” 이 방 안에만 들어오면 그는 소싯적 울산 말투로 돌아간다. 재판정이나 시민단체 사무실에서 회의하는 점잖고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갈무리된 평소 차병직을 떠올리는 건 이런 그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병직의 사무실, 아니 일명 ‘차씨방’은 잘라 말해 지식환락가이거나 환락소다. 방 안에서 책과 함께 그는 해방자다. 설화에 나오는 마법사나 주술사의 비밀스런 방이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하기야 이 책을 쓰는 일을 포함해서 차병직이 저지르고 감당하고 있는 숱한 일들 자체가 일종의 마법이기는 하다. 어쩌다 연락이 닿질 않는다면 이 상상의 공방에서 차병직은 책과 간음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그 마법사는 하루에 한 번 이곳으로 망명하고, 이틀에 한 번 이 문명화된 각성된 오지로 투항한다. 마법사의 방에는 그 흔한 컴퓨터 한 대가 없다. 하기야 이 기이한 마법사는 수첩도 없어서 구질구질해진 종이묶음에 연락처 따위와 단상 등속을 끼적거리는 화상이다. 먼 길을 동행해보면 ‘차씨방’에서와 하등 다르지 않은 그를 발견하게 된다. 차병직은 마법이 달아나는 걸 막으려는 듯 씻지 않고 깎지 않고 밤마다 술을 들이켜대며 되지 않게 노래를 부른다. 곡조는 엇물리며 삼천포로 빠지는데 노랫말은 취중에도 까먹는 법이 없다. 좌중이 얼추 불콰할 쯤이면 어느 결엔가 그는 너부러져 있다. 황폐하게 평안한 낯으로. “여가 쿠차가.” 종로에서 다시 취했을 때 마법사는 오래전에 다녀온 비단길 옛 도시 쿠차 고성에 가 있었다. 그는 확실히 시공을 뛰어넘는 마법사다. 독도법 전문가와 마법사가 만나 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해성은 추임새를 넣었다. 흔히들 말하는 사회를 본 셈이다. 소리하는 데 북을 쳤다고 보면 되겠다. 서해성이 보기에 법 공부하고 변호사 노릇을 했다는 점에서 둘은 얼핏 같아 보이면서도 퍽 달랐다. 예의 그 독도법과 마법으로. 독도법은 구체성이 강한 현실 곧 정치와 가까웠고, 마법사는 포괄적 설득력과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이상에 가까웠다. 글이나 말이 밥 같을 때가 있다. 밥 같은 대화는 살로 가고 뼈로 영그는 법이다. 천정배와 차병직은 서로 번을 갈고 자리를 바꿔가며, 뼈가 되고 또 살이 되어 장단을 맞춰나갔다. ‘국민’이라는 말이 나올 때면 천정배는 목울대가 불거지는 편이었고, 차병직은 ‘시민’이라는 단어를 입초시에 올릴라치면 저음이 한껏 낮게 깔리는 축이었다. 천정배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나누고 싶은 대화라는 점에 못을 박았다. 차병직은 생산적이고도 민주적인 대거리의 본새를 만들어보자고 맞장구를 쳤다. 실천적 삶으로서 정치와 시민운동을 잇는 대화를 세상과 공유코자 하는 둘의 자세는 목마른 참에 단물을 만나는 격이다. 이 현실과 이상을 한 가지 음식으로 혹은 한 상에 차려내는 일이 사람살이, 세상살이일 터이다. 이 책은 거기에 대한 현실적 논의와 도전이자 대안에 대한 모색이다. 독도법과 마법에는 다 자장이 있다.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은 자장을 한데 모으거나 대결하거나 합의를 도출하거나 그도 안 되면 술로 해결했다. 지식과 정보는 대화로 생기를 얻는다. 두 사람은 ‘시대의 대화’를 위해 거듭 만났다. 만날수록 생기는 충전되었다. 이제 그 대화를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한다. 두 사람은 늦봄 여름 가을을 넘어 겨울 초입에 이르는 네 철 동안 나눈 긴 대화로 여행길을 동행했다. 그사이 지난겨울부터 생인손 비슷한 증세를 앓았던 차병직의 손가락은 다 나았다. 천정배는 벗들의 충고로 안경을 고쳐 새것인 양 쓰고 다닌다. 참, 이 말도 빼놓지 않아야겠다. “산갈치라는 놈은 달이 차오르면 동해 물밑에서 나와 산으로 기어올라간다. 오늘은 바다, 내일은 산, 이렇게 옮겨다니면서 이야기로 놀아보자.”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끔씩 선문답도 주고받았던 거다. 서해성(소설가)

목차펼치기

1. 프롤로그--유년의 기억, 금기의 세계 2. 일그러진 거울--생활과 규범 법 없이 살기, 법과 함께 살기 도망자와 두발 자유 3. 오래된 회초리--형벌제도 잔혹한 혹은 친절한 형별의 역사 무엇을 위한 회초리인가 패자만 있는 승리, 사형제도 4. 제도를 고칠 것인가, 세상을 고칠 것인가--사법개혁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아닌 형평성으로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는가” 5. 누가 판결로 역사를 살해했나--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처벌’은 ‘용서’에 대립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과거 청산 6. 내 수염은 죄가 없다--인권 살아 있는 인권을 만나다 권리와 효율성의 복잡한 경계 침해와 보호 사이, 문턱에 선 과학 기술 7. 시민이 쓴 정치 일지--NGO와 정치 NGO와의 인연 한국의 NGO, 정치를 말한다 ‘시민적 정당성’에 근거한 시민운동 8. 법창한담--이런 법 저런 생각 법 언어의 문제점을 짚다 “불의의 하수인이 되느니 차라리 법을 어겨라” 한미 FTA와 법률 시장 개방 9. 아프락사스의 술잔--법과대학 후배들에게 법률가의 초상, 어제와 오늘 전문적 지식과 보편적 지성을 갖춘 법조인을 위해 사법고시와 로스쿨 제도 법률가의 사회적 역할 10. 에필로그--너와 나의 내일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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