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본서는 『의례』 17편의 경문과 이에 대한 최초의 완정한 주석이자 후대 『의례』 주석의 전범이 되었던 ‘정현鄭玄의 주注’를 함께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해한 것이다. 또한 번역과 주해 속에 『의례』의 명물도수名物度數에 관한 도상圖象, 정현의 주석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예학사 상의 논쟁점, 새롭게 보완된 후대의 주요한 주석 등을 함께 정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본 번역을 통해 『의례』와 그 주석사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 『의례』는 한초漢初 고당생高堂生으로부터 전승된 것으로, 후에 『예기』, 『주례』와 더불어 ‘삼례三禮’로 칭해지게 되었다. 후한 말 정현이 『삼례목록三禮目錄』을 작성할 당시 『의례』의 전본傳本에는 ‘대대본大戴本’, ‘소대본小戴本’ 그리고 유향劉向의 ‘『별록別錄』본本’ 등이 있었다. 정현은 ‘『별록』본’에 의거하여 주석 작업을 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의례』 17편이다. 정현 ‘의례 주’의 특징으로는 ‘훈고訓?’의 측면에서 ① 여러 이본異本들을 대조하여 글자에 대한 교감을 가하였고, ② 전·후한 시대 금문학파의 번쇄한 주석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학설을 망라하면서도 핵심적인 논점을 중심으로 종합하여 관통시키는 ‘회통會通’의 방식을 취하였으며, ③ 간략하면서도 심오한 기록 탓에 난해하였던 고례古禮의 행례 절차와 배경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의리義理’의 측면에서 보면, ① 외형적 행례 절차를 기록한 ‘경문’을 가시적으로 형상화시키면서 동시에 경문의 행례 과정이 담고 있는 예학적 의미를 밝혀냈고, ② 『의례』 외에 『주례』와 『예기』 등 ‘삼례서三禮書’ 전체에 대한 주석 작업을 통해 정현 자신이 도달한 성찰, 즉 고례의 원리와 체계에 대한 구조적 성찰을 반영시킴으로써 고대 예학의 세계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말하자면 정현의 주는 ‘삼례’의 원융한 예의 체계를 구축하고, 그 체계 속에 모든 경서를 정합적으로 포괄한다는 정현의 학문적 영위의 일환으로 저술되었던 것이다. 후대에 ‘예학禮學은 정학鄭學’이라고 칭해질 정도로 정현의 삼례주三禮注는 중국 고대 예학 연구의 토대가 된다. 정현의 주석에 의거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난독지서難讀之書’·‘망이생외望而生畏’로 알려진 『의례』에의 접근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의례』의 경문과 더불어 ‘정현의 주’를 함께 번역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한·중·일 동아시아 3국에서 예학연구는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받는 학문영역 가운데 하나이다. ‘근대의 망루’에서 ‘예’는 동아시아 근대화를 가로막는 사상적 근원이자 제도적 고착으로서 비판받았다. 그러나 근대 자체가 상대화된 이후 이제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벗어나 그 ‘예’의 실체가 무엇이었으며 그것으로 지탱되던 전통시대 사회시스템의 실체는 어떠했는지를 객관적으로 구명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가 되고 있다. 학문적 차원에서도 조선시대의 예송논쟁뿐 아니라 국가전례의 구체적 실상, 조선과 중국의 종묘제론, 종법론, 상복제도 나아가 일반 생활사의 영역에서도 예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고, 새로운 시야가 개척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당연히 의식의 구체적 행위절차를 규정한 『의례』에 대한 접근을 선행 조건으로 해야 하며, 따라서 엄밀한 학문적 차원에서 『의례』 등 주요한 예서를 역주하는 작업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서는 리쉐친(李學勤) 주편 십삼경주소정리본十三經注疏整理本 『의례주소儀禮注疏』(北京, 北京大學出版社, 2000)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것이다. 이 저본은 가장 최근에 간행된 『의례』본으로 『의례』의 경문, 정현의 주, 가공언의 소를 단락별로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다양한 판본에 대한 치밀한 교감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 번역에서도 표점은 기본적으로는 이 저본의 표점 원칙을 수용하였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각종 정본 사업의 표점 원칙을 반영하였고, 또 옮긴이들의 관점에서 필요한 표점 방식을 만들어내어 적용하였으며, 인용부호, 강조점 등은 우리말 어법에 맞추어 바꾸었다. 리쉐친 『의례주소』본의 표점에 오류가 있는 경우 역시 정정하였다. 옮긴이들은 정현의 주에 의거하여 경문을 번역하는 방식을 취하였는데, 정현의 해석은 매우 간오簡奧하기 때문에 한대의 언어학적 맥락을 짚어내지 못한다면 그 행간에 담긴 함의를 간취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따라서 경문과 정현의 주에 대한 후대 주석가들의 해석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점에서 청대 호배휘胡培彙의 『의례정의儀禮正義』는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표준적 해석’이라는 뜻에 걸맞게 『의례정의』에는 송대의 오계공敖繼公·이여규李如圭를 비롯해서 명대의 장이기張爾岐, 청대의 오정화吳廷華·채덕진蔡德晉·저인량著寅亮·호광충胡匡衷 등 역대 주석가들의 논점을 정합적인 논거와 비판적인 안목으로 각각의 정현 주 아래에 덧붙여 소개하고 있다. 약간 번잡한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들 후대 주석가들의 논점을 주석에 상세히 정리함으로써, 『의례』 해석의 시대적·역사적 변화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해석의 정확성을 최대한 높이고자 하였다. 또한 매 편의 표제 아래에 정현의 『삼례목록』을 번역하여 넣음으로써 『의례』 17편에 실린 각 의례의 역사적 연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각각의 행례 절차가 시작되는 앞머리에 의례의 연원 및 의미, 그리고 각 의례의 행례 장소와 전반적인 행례 과정에 대한 간략한 개요를 제시하여 ‘해제’로 붙임으로써, 복잡한 각각의 의례 절차와 의의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한 후 본문 이해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의례』는 상대적으로 예의 이론적 측면을 논하는 『예기』와 달리 구체적 의식 절차를 기록한 매뉴얼이다. 따라서 그 번역은 단순히 우리말로 옮기는 것뿐 아니라, 그것의 실체를 입체적이고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궁실, 의복, 기물, 건축물 등 명물도수名物度數들에 대한 도상圖象과 도해圖解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번역에서는 송대 양복楊復의 『의례도儀禮圖』·섭숭의?崇義의 『삼례도三禮圖』, 명대 유적劉績의 『삼례도三禮圖』, 청대의 『흠정의례의소欽定儀禮義疏(禮器圖)』·장혜언張惠言의 『의례도儀禮圖』·황이주黃以周의 『예서통고禮書通考』 등에 수록된 도상과 도해뿐 아니라 양톈위(楊天宇), 이케다 스에토시(池田末利), 다니다 다카유키(谷田孝之) 등 현대 『의례』 연구자들의 성과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번역’이란 원문의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고 타국의 언어로 이를 고스란히 되살려 내는 작업일 뿐 아니라 비전공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가독성을 높여야 한다는 상호 모순을 해소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의례』와 같은 고문헌을 번역할 때에는 그러한 고심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데, 특히 제기 등 기물의 명칭을 어떻게 우리말로 옮길 것인가를 두고 번역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있었다. 가령 ‘변?’과 ‘두豆’의 경우, ‘변’과 ‘두’로 옮기는 것이 가장 정확한 번역일 수 있지만, 『의례』 안에는 수많은 제기, 궁실, 건축물, 의복, 음식 등의 명칭이 등장하는데 이를 모두 원래의 명칭 그대로 표기하게 될 경우, 번역문은 거의 기호의 나열이나 다름없어 가독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본 번역에서는 명물名物에 대한 정현의 해석과 각종 문헌의 기록에 의거하여 그 기물의 특징과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우리말로 표기하기로 하였다. 정현은 ‘변?’에 대해 “변은 대나무로 만든 제기이다”(『周禮』, 「天官·?人」, “?,竹器”), “말린 고기를 올릴 때에는 변을 사용하는데, 변은 말린 음식을 담는 데에 적당하다”(『儀禮』, 「鄕射禮」, “脯用?, ?宜乾物”)고 하였고, ‘두豆’에 대해서는 “고기 젓갈을 올릴 때에는 두를 사용하는데, 두는 젖은 음식을 담는 데에 적당하다”(『儀禮』, 「鄕射禮」, “?以豆, 豆宜濡物也”)고 하였다. 또 『이아爾雅』 「석기釋器」에서는 “나무로 만든 제기를 두라 하고, 대나무로 만든 제기를 변이라 한다”(木豆謂之豆, 竹豆謂之?)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변’과 ‘두’는 그것을 만드는 재료의 측면에서는 ‘대나무’와 ‘나무’라는 차이가 있고,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말린 음식을 담는 제기’와 ‘젖은 음식을 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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