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올해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았다. 지난 전쟁에 대한 평가들이 분분했지만, 그 장대한 폭력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논의되어야 할 수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또한, 냉전의 질곡을 벗어난 지금도 급격한 지구화와 더불어 경제적 구조적 불평등이 낳는 차별과 무시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폭력이 인종과 종교 간의 갈등에 불을 붙이며 지구촌을 위협하는 새로운 위험으로 부상하고 있다. 가히 ‘폭력의 외부는 없다’고 할 정도로 일상적으로 편재되고 있는 오늘날 폭력의 양상을 지켜보며 시의적절한 정의의 개념과 실천전략을 새로 생각하는 일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과거적 의미의 정의로 역사적 과거와 현재의 폭력들이 충분히 평가되거나 해소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필자들은 오늘날 새로이 제기되는 다양한 폭력에 대한 성찰에 있어서 이와 같이 정의의 새로운 지평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강한 국민국가들의 정의론에 머물러 있으며, 소위 글로벌화 된 지구촌에서 일상적으로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과 인종/민족적 갈등들에 대한 진단과 대응도 과거적 정의의 관념에 의존하고 있다. 더욱 심화한 현재 의식에 기초한 폭력에 대한 성찰과 전망만이 폭력의 평가와 해법에 있어서 나타나는 이러한 편향과 시대착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서 이 책은 그 문제 해결의 단초를 숙고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성찰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되었다. 1부 “폭력과 기억”, 2부 “자유의 역설”에서 필자들은 각각의 방향에서 그러한 문제와 관련한 진단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1부에서는 주로 물리적 폭력과 그 기억의 양상을 다양한 문헌적 자료들에 근거해서 살피면서 폭력에 대한 담론의 전지구적 방향성을 요청하고 있다. 1부 1장 ‘전시 성폭행 문제와 정의론의 임계점들’에서 이창남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베를린과 동부전선에서 이루어진 전시 성폭행 문제에 나타나는 역사적 쟁점들을 다루었다. 90년대 유고내전을 필두로 개시된 전시 성범죄 기소와 관련하여 오늘날의 법적, 정치적, 문화적 담론의 공간 속에서도 여전히 노정되고 있는 과거 전후 처리의 젠더편향과 이데올로기적 폭력의 정당화를 트랜스내셔널한 정의론에 입각해서 비판하고 있다. 2장 ‘오키나와, 확장되는 폭력의 기억’에서 심정명은 오키나와 출신의 작가 메도루마 의 소설을 소재로 오키나와에서 미군의 성폭력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여기서 ‘전후’라는 말이 무색하게 일상 속에 지속되는 폭력과 그 기억들이 재현되는 양상을 통해 60여 년 전 폭력의 기억이 전유 되는, 혹은 전유 되어야 할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3장 ‘라틴아메리카 유해(遺骸)정치의 특징과 의미’에서 노용석은 유해의 사인에 대한 검증과 그 진실게임을 소재로 라틴 아메리카의 독특한 유해정치를 다루고 있다. 특히 초국가적 특징을 지니는 라틴아메리카의 국가폭력 네트워크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트랜스내셔널한 접근이 불가피함을 시사하고 있다. 유럽, 동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과거의 폭력들이 기억을 통해 현재화되고 있고, 여기에 작동하는 기억의 정치는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는 시금석이 된다. 1부의 세 편의 글들은 이 점에 착목하여, 현재적으로 유의미한 방향에서 그에 대한 성찰적 개입이 불가피함을 역설하고 있다. 2부에서는 글로벌시대에 경제적, 구조적, 심리적 차별에 따른 폭력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문성훈은 2부 1장 ‘지구화 시대의 폭력과 인정이론적 폭력개념’에서 인정과 무시의 연관성이 글로벌시대에 나타나는 폭력의 배후에 자리 잡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기초하여 그는 인정이론적 폭력개념을 제안하는데, 이를 통해 오늘날 특히 폭력적 갈등의 이슈로 등장하는 난민, 밀입국자, 불법체류자 등 지구화의 타자들에 대한 폭력을 개념화하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한 주요한 방향을 시사하고 있다. 2장 ‘신자유주의적 자유의 역설과 민주적인 사회적 공공성’에서 박영도는 경제적으로 새로운 글로벌화한 현상인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자기 훈육의 원리로 관철되면서 폭력적으로 사무실과 시장을 지배하는지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또한 불평등을 심화하고 자기훈육의 기제로 퇴행하는 자유의 역설이 전지구적으로 관철되는 시점에 정의의 새로운 정치사회적 기반을 모색하고 있다. 끝으로 네켈(S. Neckel-번역. 김주호)은 3장 ‘과두적 불평등’에서 후기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특권이 강화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분석하면서, 소위 계층 간 이동이 경직되어 구조적으로 견고한 중세적 위계가 새로이 나타난다는 하버마스의 ‘재봉건화’ 테제를 경험적으로 재확인하고 있다. 그는 프랭크와 쿡의 『승자독식사회』,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지구화의 불평등과 그것을 지원하는 정치사회적 제도들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오늘날 심화되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과 인종과 종교적 갈등에 불을 붙이면서 지구화의 위협적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2부 세 편의 글들은 이러한 현재적 폭력의 배후를 지구화와 신자유주의의 문제로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였다. 이 책의 1부와 2부는 다소 다른 방향에서 폭력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국민국가적 단위의 과거적 정의의 한계를 지양하고, 트랜스내셔널한 차원의 정의개념과 실천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공감을 이루고 있다. 그러한 목표는 현재화된 과거의 폭력들과 경제적 구조적 폭력의 토대들에 대한 비판적 진단 속에서 이루어져 갈 수 있을 것이다. 한 권의 책으로 폭력이라는 방대한 주제를 포괄하기에는 난점이 적지 않지만, 이 책의 개개 장들은 그 성찰과 비판의 방향성을 숙고하고, 전망을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1년여 전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학술회의(2015년 6월 20일)는 이 책의 토대가 되었다. 학술회의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해주신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또한, 이 편서를 위해 기꺼이 원고를 내주신 필자 선생님들과 번역자 선생님 그리고 번거로운 편집 작업에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세창출판사 편집진에 무엇보다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무쪼록 여러 후속 작업들을 통해서 이 책에서 제시된 아이디어와 고민이 이후보다 풍부한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2016년 12월 필자들을 대신하여 이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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