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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장도은괄총요

사서장도은괄총요

정복심 (지은이), 전병욱 (옮긴이)

세창출판사·2018-07-30

  • 339쪽
  • 철학
  • KDC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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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은 조선시대의 학자들에게 흔히 『사서장도(四書章圖)』로 불린 『사서장도은괄총요(四書章圖檃栝緫要)』를 번역한 것이다. 『사서장도』는 주자의 『사서집주』를 그림으로 해석한 저작으로서 원나라의 학자 정복심이 지은 것이다. 정복심(程復心, 1255-1340)은 자(字)가 자견(子見)이고 호(號)는 임은(林隱)이며 1255년에 지금의 중국(中國) 강서성(江西省) 무원(婺源)에서 출생하여 줄곧 그곳에서 활동하였다. 무원은 송대(宋代)에 휘주(徽州, 지금 안휘성의 대부분)에 속하였고 휘주는 엄주(嚴州, 절강성의 서부 지역)와 함께 진(晉)나라 시기에 신안(新安)으로 불렸다. 이 무원은 파양호(鄱陽湖)의 서쪽 지역으로서 주자의 본적지로 주자 당시에 제자가 배출되었고 주자학의 주요 근거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에서 멀지 않다. 그래서 정복심이 성장하는 시기에 무원에는 여러 주자학파가 공존하고 있었다. 주자의 제자인 동수(董銖)·정단몽(程端蒙)·황간(黃榦)에게서 두루 배운 동몽정(董夢程)이 강서성 덕흥(德興)에서 학파를 형성하여 무원까지 세를 확장하면서 이 지역에서 심귀보(沈貴珤)·허월경(許月卿)·주홍범(朱洪範) 등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1279년 남송이 완전히 멸망한 뒤에도 원(元)나라 정권에 협조하지 않고 주자학에 종사하였다. 정민정(程敏政)의 『신안문헌지(新安文獻志)』에 실린 전기문에는 정복심이 주홍범(호는 소옹(小翁))의 제자로 소개되어 있는데, 그의 친구였던 운봉(雲峰) 호병문(胡炳文, 1250-1333)의 부친이 바로 주홍범의 문인이었으므로 정복심은 주홍범의 만년 제자인 셈이다. 그리고 『사서장도』에 인용된 면면을 통해 정복심이 심귀보와 허월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복심은 20세경부터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註)』의 각 장에 담긴 요지를 도식으로 그려 『사서장도(四書章圖)』(뒷날 정복심의 저작 전체를 지칭하는 『사서장도은괄총요(四書章圖)』와는 다른 의미이다. 아래도 동일)를 저술하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조순손(趙順孫)의 『사서찬소(四書纂疏)』를 토대로 『사서집주』에 대한 새로운 주석서인 『사서찬석(四書纂釋)』을 제자인 왕약홍(汪若虹) 등과 함께 완성한 뒤에 1302년에 서문을 지었다. 1308년에 원나라 무종(武宗)이 등극하여 유교를 중시하면서 조여호(趙與虎)라는 학자가 항주로(杭州路)의 유학(儒學)에 정복심의 이 『사서장도』와 『사서찬석』을 추천하였기 때문에 항주로 유학이 상급기관인 강절등처 유학제거사(江浙等處 儒學提擧司)에 보고하고 강절등처 유학제거사는 이것을 상급기관인 강절등처 행중서성(江浙等處 行中書省)에 보고하였다. 1310년경에는 당시에 명망이 높았던 방회(方回)와 장몽해(臧夢解)가 정복심의 저작에 대한 추천서를 썼고 이를 토대로 송강부(松江府)의 지사(知事)가 그것을 강절등처 유학제거사에 추천했다. 그러다 1311년에는 인종(仁宗)이 즉위하여 인재를 선발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강절등처 행중서성은 정복심의 저작을 중서성에 보고하였으며, 중서성은 예부(禮部)에 보내 검토하게 하였고 예부는 검토 작업을 한림국사원(翰林國史院)에 맡겼다. 그리고 1312년에는 집현원 학사(集賢院 學士)인 조맹부(趙孟頫)도 한림국사원에 정복심을 추천하였다. 1313년 정월 말에 한림국사원의 검토 결과를 보고받은 예부가 중서성에 보고하였고, 이즈음 정복심도 무원을 떠나 연경(燕京)으로 향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중서성이 한림국사원의 평가를 토대로 정복심을 무원로(婺源路) 유학의 교수(敎授)에 제수하였고 연경에 도착한 정복심은 교수 직함으로 퇴직하여 귀향하기로 선택하고서는 당시 명사들로부터 서문을 받았다. 정복심은 귀향한 뒤에 친척 등 좁은 범위 안에서 교육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무원(婺源)의 호병문(胡炳文)과 이웃 지역인 휴녕(休寧)의 진력(陳櫟)이 각각 『사서통(四書通)』과 『사서발명(四書發明)』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서로 의견을 교환할 때 정복심은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의 저작은 두 사람에게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정복심의 저작이 언제 처음 출판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은데 그의 생전인 1337년에 복건성(福建省) 건양(建陽)의 부사(富沙)에 있던 덕신서당(德新書堂)에서 출간되었다. 이 판본은 정복심의 『사서장도』와 『사서찬석』을 통합하여, 『사서집주』의 각 장마다 도식과 주석을 붙인 『사서장도찬석(四書章圖纂釋)』과, 『사서집주』의 어느 한 장에 포함시키기 어렵거나 통합적인 부분 등을 하나로 묶은 『사서장도은괄총요(四書章圖檃栝緫要)』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덕신서당본은 판본상태가 좋지 않은데 일본의 노무라 아츠시(野邨溫)가 1804년 교정하여 필사한 판본에 따르면 『사서장도은괄총요』 상·중·하권에 수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권의 첫 부분에는 정복심을 조정에 추천하고 교수직에 제수하는 과정에 있었던 공문서들이 수록되어 있고, 그다음에는 서문과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다음부터가 정복심이 지은 글들인데, 먼저 정복심의 서문이 있고 그다음에는 범례와 함께 보편적 독서법, 『사서』를 읽는 법, 『사서집주』를 읽는 법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다음에는 도통(道統)과 관련된 계보가 소개되어 있다. 그다음이 『사서장도』의 본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염계(周濂溪)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관련된 일련의 그림들과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다음에는 장횡거(張橫渠)의 「서명(西銘)」과 「동명(東銘)」에 대한 그림들과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중권에는 『사서(四書)』의 핵심적인 개념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논어(論語)』 → 『맹자(孟子)』 → 『대학(大學)』 → 『중용(中庸)』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논어』와 관련해서는 심(心)·성(性)·인(仁)·의(義)·충서(忠恕)·지행(知行)·사잠(四箴)·박문약례(博文約禮) 등에 대해 설명하고 『맹자』와 관련해서는 진심(盡心)·부동심(不動心)·성(性)·사단(四端)·천(天) 등에 대해 설명하였으며, 『대학』과 관련하여서는 명덕(明德)·신민(新民)·치지격물(致知格物)·성의(誠意) 등에 대해 설명한 뒤 『대학』과 『중용』의 이동(異同)에 대해 다루었고 『중용』에 대해서는 중용(中庸)·비은(費隱)·인심도심(人心道心)·귀신(鬼神)·성(性)·도(道)·교(敎)·중화(中和)·천도인도(天道人道)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 하권에는 명물제도(名物制度)와 관련된 부분으로 북극(北極)·팔일(八佾)·체(褅)·협(祫)·오묘소목(五廟昭穆)·사직단(社稷壇)·명당위(明堂位)·정전제(井田制)·왕기(王畿)·향사(鄕射)·향음주(鄕飮酒) 등에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력(陳櫟)의 제자 예사의(倪士毅)가 1337년에 편찬하여 1384년에 출간한 『사서집석(四書輯釋)』은 호병문의 『사서통』과 진력의 『사서발명』을 절충하여 만든 것인데, 이 책에는 정복심의 저작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뒷날 정복심의 “사서장도(四書章圖)” 부분을 가려 뽑아서 거기에 예사의의 『사서집석』과 왕원선(王元善)의 『사서통고(四書通攷)』를 결합하여 만든 『중간사서집석(重刊四書輯釋)』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영락대전(永樂大典)』이나 『성리대전(性理大全)』에도 곳곳에 『사서장도』(정복심의 저작을 통칭한 것이다. 아래도 마찬가지이다.)가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이 뒷날까지도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이존(朱彛尊, 1629-1709)의 『경의고(經義考)』에 『사서장도』가 여러 명사들의 서문들과 함께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이 후대까지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덕신서당본은 중국과 한국에는 남아 있지 않고 일본 국립공문서관(國立公文書館)과 궁내청(宮內廳) 서릉부(書陵部)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와 별도로 위에 언급한 교정본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의 경우,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제자로서 대사성을 지낸 김반(金泮)은 양촌의 『입학도설(入學圖說)』에 보설(補說)을 붙이면서 『사서장도』(1337년에 출간된 정복심의 전체 저작인 것으로 보인다. 아래도 동일)를 활용하였다. 그 뒤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의 제자가 어렵게 『사서장도』를 구해서 청송에게 소개하였는데 청송은 도학(道學) 공부를 하는 사람은 굳이 이 책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내쳤다. 조선철학사에서 『사서장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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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의 학문체계를 논함(論四書之學) 사서에서 심성과 인의를 말한 것의 차이를 논함(論四書言心性仁義) 심에 대한 성현들의 논의에 담긴 요점(聖賢論心之要) 심의 허령에 대해 논함(論心之虛靈) 심의 지각에 대해 논함(論心之知覺) 심의 신명에 대해 논함(論心之神明) 장횡거가 사용하는 천, 도, 성, 심의 명칭(張子天道性心之名) 장횡거의 천, 도, 성, 심에 대한 또 하나의 이론(又張子天道性心之說) 천지지성과 기질지성(天地氣質之性 ) 천지지성과 기질지성에 대한 또 하나의 설명(又天地氣質之說) 심통성정에 대해 논함(論心統性情) 형기와 심리의 치우침과 온전함에 대해 논함(論形氣心理偏全) 오상을 논할 때 건순을 언급할 필요가 없음에 대하여(論五常不必言健順) 사단을 논할 때 신을 언급할 필요가 없음에 대하여(論四端不必言信) 공자가 인을 단독으로 말한 것에 대하여(孔子專言仁) 맹자가 의를 겸하여 말한 것에 대하여(孟子兼言義) 논어의 ‘인’자에 대한 풀이(論語仁字訓義) 인의 안과 밖, 같고 다름에 대해 논함(論仁表裏同異) 인은 사랑함의 이치이고 마음의 덕이라는 풀이에 대해 논함(論仁者愛之理心之德) 사랑에 차등이 있음에 대하여(論愛有差等) 인을 확장하는 일에 대한 이론(廣仁說) 인의 안과 밖, 주인과 손님에 대해서 논함(論仁內外賓主) 인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같고 다름에 대해 논함(論仁用力同異) 인에 대한 질문에 답이 같거나 다른 것에 대해 논함(論仁問答同異) 증자의 ‘충서’가 하나로 관통하는 것이라는 설명에 대하여(曾子忠恕一貫) 안자는 지와 행이 모두 완벽함에 대하여(顏子知行兼盡) 안자의 극기 공부에 대하여(顔子克己工夫) 언행의 요체(言行要切) 지와 행의 선후를 논함(論知行先後) 사물잠(四勿箴) 박문약례의 요체(博文約禮切要) 마음을 다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盡心說) 부동심에 관한 문답(不動心問答) 부동심에 이르는 데 여러 방법이 있음에 대하여(不動心有道) 고자와 공도자와 맹자의 성에 대한 논변(告子公都子孟子性辨) 형색이 천성이라는 것에 대하여(形色天性) 사단의 성체性體에 대하여(四端性體) 사단의 정체情體에 대하여(四端情體) 성품과 기품의 구별에 대하여(性品氣品之別) 사람과 다른 만물의 본성이 같고 다름에 대하여(人物所性同異) 사람의 마음이 잡느냐 놓느냐에 따라 간직되고 없어짐에 대하여(人心操舍存亡) 하늘을 알고 하늘을 섬김에 대하여(知天事天) 대학이 덕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것에 대하여(大學入德之門) 명덕과 신민의 근거와 과정(明德新民之故) 격물치지의 이론적 근거(致知格物之故) 성의의 학문에 대하여(誠意之學) 대학과 중용의 공부가 합일된다는 그림(大學中庸工夫合一之圖) 『대학』은 배움을 말하고 『중용』은 가르침을 말한다(大學言學中庸言教) 중용설(中庸說) 넓음과 미묘함에 대하여(費隱說)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또 하나(又) 귀와 신에 대하여(鬼神說) 중용이 옛 성인을 잇고 후세를 연 이론의 요지(中庸繼往開來之要) 중용의 성·도·교에 담긴 요지(中庸性道教之旨) 중과 화가 체와 용이 되는 근원에 대하여(中和體用之源) 천도와 인도의 구별에 대하여(天道人道之別) 기화를 통해 형체가 생기면 리가 부여되는 연유에 대하여(氣化形生理賦之由) 도를 떠날 수 없는 까닭에 대하여(道不可離之故)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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