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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장도은괄총요

정복심 (지은이), 전병욱 (옮긴이)

세창출판사·2018-08-31

  • 285쪽
  • 152×225mm
  • 철학
  • KDC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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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역자의 말 이 책은 조선시대의 학자들에게 흔히 『사서장도(四書章圖)』로 불린 『사서장도은괄총요(四書章圖檃栝緫要)』를 번역한 것이다. 『사서장도』는 주자의 『사서집주』를 그림으로 해석한 저작으로서 원나라의 학자 정복심이 지은 것이다. 정복심(程復心, 1255-1340)은 자(字)가 자견(子見)이고 호(號)는 임은(林隱)이며 1255년에 지금의 중국(中國) 강서성(江西省) 무원(婺源)에서 출생하여 줄곧 그곳에서 활동하였다. 무원은 송대(宋代)에 휘주(徽州, 지금 안휘성의 대부분)에 속하였고 휘주는 엄주(嚴州, 절강성의 서부 지역)와 함께 진(晉)나라 시기에 신안(新安)으로 불렸다. 이 무원은 파양호(鄱陽湖)의 서쪽 지역으로서 주자의 본적지로 주자 당시에 제자가 배출되었고 주자학의 주요 근거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에서 멀지 않다. 그래서 정복심이 성장하는 시기에 무원에는 여러 주자학파가 공존하고 있었다. 주자의 제자인 동수(董銖)·정단몽(程端蒙)·황간(黃榦)에게서 두루 배운 동몽정(董夢程)이 강서성 덕흥(德興)에서 학파를 형성하여 무원까지 세를 확장하면서 이 지역에서 심귀보(沈貴珤)·허월경(許月卿)·주홍범(朱洪範) 등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1279년 남송이 완전히 멸망한 뒤에도 원(元)나라 정권에 협조하지 않고 주자학에 종사하였다. 정민정(程敏政)의 『신안문헌지(新安文獻志)』에 실린 전기문에는 정복심이 주홍범(호는 소옹(小翁))의 제자로 소개되어 있는데, 그의 친구였던 운봉(雲峰) 호병문(胡炳文, 1250-1333)의 부친이 바로 주홍범의 문인이었으므로 정복심은 주홍범의 만년 제자인 셈이다. 그리고 『사서장도』에 인용된 면면을 통해 정복심이 심귀보와 허월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복심은 20세경부터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註)』의 각 장에 담긴 요지를 도식으로 그려 『사서장도(四書章圖)』(뒷날 정복심의 저작 전체를 지칭하는 『사서장도은괄총요(四書章圖)』와는 다른 의미이다. 아래도 동일)를 저술하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조순손(趙順孫)의 『사서찬소(四書纂疏)』를 토대로 『사서집주』에 대한 새로운 주석서인 『사서찬석(四書纂釋)』을 제자인 왕약홍(汪若虹) 등과 함께 완성한 뒤에 1302년에 서문을 지었다. 1308년에 원나라 무종(武宗)이 등극하여 유교를 중시하면서 조여호(趙與虎)라는 학자가 항주로(杭州路)의 유학(儒學)1에 정복심의 이 『사서장도』와 『사서찬석』을 추천하였기 때문에 항주로 유학이 상급기관인 강절등처 유학제거사(江浙等處 儒學提擧司)2에 보고하고 강절등처 유학제거사는 이것을 상급기관인 강절등처 행중서성(江浙等處 行中書省)에 보고하였다. 1310년경에는 당시에 명망이 높았던 방회(方回)와 장몽해(臧夢解)가 정복심의 저작에 대한 추천서를 썼고 이를 토대로 송강부(松江府)의 지사(知事)3가 그것을 강절등처 유학제거사에 추천했다. 그러다 1311년에는 인종(仁宗)이 즉위하여 인재를 선발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강절등처 행중서성은 정복심의 저작을 중서성에 보고하였으며, 중서성은 예부(禮部)에 보내 검토하게 하였고 예부는 검토 작업을 한림국사원(翰林國史院)에 맡겼다. 그리고 1312년에는 집현원 학사(集賢院 學士)인 조맹부(趙孟頫)도 한림국사원에 정복심을 추천하였다. 1313년 정월 말에 한림국사원의 검토 결과를 보고받은 예부가 중서성에 보고하였고, 이즈음 정복심도 무원을 떠나 연경(燕京)으로 향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중서성이 한림국사원의 평가를 토대로 정복심을 무원로(婺源路) 유학의 교수(敎授)에 제수하였고 연경에 도착한 정복심은 교수 직함으로 퇴직하여 귀향하기로 선택하고서는 당시 명사들로부터 서문을 받았다. 정복심은 귀향한 뒤에 친척 등 좁은 범위 안에서 교육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무원(婺源)의 호병문(胡炳文)과 이웃 지역인 휴녕(休寧)의 진력(陳櫟)이 각각 『사서통(四書通)』과 『사서발명(四書發明)』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서로 의견을 교환할 때 정복심은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의 저작은 두 사람에게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정복심의 저작이 언제 처음 출판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은데 그의 생전인 1337년에 복건성(福建省) 건양(建陽)의 부사(富沙)에 있던 덕신서당(德新書堂)에서 출간되었다. 이 판본은 정복심의 『사서장도』와 『사서찬석』을 통합하여, 『사서집주』의 각 장마다 도식과 주석을 붙인 『사서장도찬석(四書章圖纂釋)』과, 『사서집주』의 어느 한 장에 포함시키기 어렵거나 통합적인 부분 등을 하나로 묶은 『사서장도은괄총요(四書章圖檃栝緫要)』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덕신서당본은 판본상태가 좋지 않은데 일본의 노무라 아츠시(野邨溫)가 1804년 교정하여 필사한 판본에 따르면 『사서장도은괄총요』 상·중·하권에 수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권의 첫 부분에는 정복심을 조정에 추천하고 교수직에 제수하는 과정에 있었던 공문서들이 수록되어 있고, 그다음에는 서문과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다음부터가 정복심이 지은 글들인데, 먼저 정복심의 서문이 있고 그다음에는 범례와 함께 보편적 독서법, 『사서』를 읽는 법, 『사서집주』를 읽는 법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다음에는 도통(道統)과 관련된 계보가 소개되어 있다. 그다음이 『사서장도』의 본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염계(周濂溪)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관련된 일련의 그림들과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다음에는 장횡거(張橫渠)의 「서명(西銘)」과 「동명(東銘)」에 대한 그림들과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중권에는 『사서(四書)』의 핵심적인 개념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논어(論語)』 → 『맹자(孟子)』 → 『대학(大學)』 → 『중용(中庸)』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논어』와 관련해서는 심(心)·성(性)·인(仁)·의(義)·충서(忠恕)·지행(知行)·사잠(四箴)·박문약례(博文約禮) 등에 대해 설명하고 『맹자』와 관련해서는 진심(盡心)·부동심(不動心)·성(性)·사단(四端)·천(天) 등에 대해 설명하였으며, 『대학』과 관련하여서는 명덕(明德)·신민(新民)·치지격물(致知格物)·성의(誠意) 등에 대해 설명한 뒤 『대학』과 『중용』의 이동(異同)에 대해 다루었고 『중용』에 대해서는 중용(中庸)·비은(費隱)·인심도심(人心道心)·귀신(鬼神)·성(性)·도(道)·교(敎)·중화(中和)·천도인도(天道人道)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 하권에는 명물제도(名物制度)와 관련된 부분으로 북극(北極)·팔일(八佾)·체(褅)·협(祫)·오묘소목(五廟昭穆)·사직단(社稷壇)·명당위(明堂位)·정전제(井田制)·왕기(王畿)·향사(鄕射)·향음주(鄕飮酒) 등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력(陳櫟)의 제자 예사의(倪士毅)가 1337년에 편찬하여 1384년에 출간한 『사서집석(四書輯釋)』은 호병문의 『사서통』과 진력의 『사서발명』을 절충하여 만든 것인데, 이 책에는 정복심의 저작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뒷날 정복심의 “사서장도(四書章圖)” 부분을 가려 뽑아서 거기에 예사의의 『사서집석』과 왕원선(王元善)의 『사서통고(四書通攷)』를 결합하여 만든 『중간사서집석(重刊四書輯釋)』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영락대전(永樂大典)』이나 『성리대전(性理大全)』에도 곳곳에 『사서장도』(정복심의 저작을 통칭한 것이다. 아래도 마찬가지이다.)가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이 뒷날까지도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이존(朱彛尊, 1629-1709)의 『경의고(經義考)』에 『사서장도』가 여러 명사들의 서문들과 함께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이 후대까지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덕신서당본은 중국과 한국에는 남아 있지 않고 일본 국립공문서관(國立公文書館)과 궁내청(宮內廳) 서릉부(書陵部)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와 별도로 위에 언급한 교정본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의 경우,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제자로서 대사성을 지낸 김반(金泮)은 양촌의 『입학도설(入學圖說)』에 보설(補說)을 붙이면서 『사서장도』(1337년에 출간된 정복심의 전체 저작인 것으로 보인다. 아래도 동일)를 활용하였다. 그 뒤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의 제자가 어렵게 『사서장도』를 구해서 청송에게 소개하였는데 청송은 도학(道學) 공부를 하는 사람은 굳이 이 책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내쳤다. 조선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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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장도은괄총요 권하 四書章圖檃栝總要 卷之下 북극도설(北極圖說) 팔일의 춤추는 자리(八佾舞位) 군주가 불러 빈을 맡겼을 때의 그림(君召使擯之圖) 설 때 문 가운데에서 차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림(立不中門之圖) 네모를 그리는 도구에 대한 그림(爲方矩器之圖) 주자의 혈구지도와 관련한 두 그림(朱子絜矩兩圖) 주나라 체제와 흡제의 묘제에 대하여(周禘祫廟制) 주자가 오묘의 소와 목을 논함(朱子論五廟昭穆) 방의 네 귀퉁이(室四隅) 군묘 각 실의 신주 방향에 대하여(群廟各室主向) 태묘에서 합식(合食)할 경우 신주의 방향에 대하여(太廟合食主向) 여러 유자가 칠묘의 소와 목을 논한 것에 대하여(諸儒論七廟昭穆) 유흠이 칠묘의 소와 목에 대해 논한 것을 그린 그림(劉歆論七廟昭穆之圖) 오사에 제사를 지낼 때 오에 제사상을 차려 놓는 것에 대한 그림(五祀奧設之圖) 사직단 제도에 대하여(社稷壇制) 문공의 사직단제의(文公社稷祭儀) 상나라가 각층의 나라들을 세운 것에 대한 그림(商建國圖) 주나라 제도에서 왕과 제후의 성곽에 대한 그림(周制王諸侯城郭圖) 주나라 제도에서 왕국의 경과 위, 도와 궤에 대한 그림(周制王國經緯涂軌圖) 명당의 위치에 관한 제도(明堂位制)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순수라고 한다는 규정에 대하여(天子適諸侯曰巡狩) 제후가 천자를 조회하는 것을 술직이라고 한다는 규정에 대하여諸侯朝天子曰述職) 삼대에 백성의 산업을 제정한 것에 대하여(三代制民之産) 삼대의 명륜 교육에 대하여(三代明倫之敎) 각 시대 학교의 일치와 차이에 대하여(論各代學校異同) 경작하는 자의 ‘구분의 일’ 세법에 대하여(耕者九一之法) 벼슬하는 자의 세록의 땅에 대하여(仕者世祿之地) 주나라의 정전제에 대한 그림(周制井田之圖) 상나라 정전제(商井田制) 주나라 정전제(周井田制) 주나라 제도의 정과 읍에 대한 그림(周制井邑之圖) 수·구·혁·회의 그림(遂溝洫澮之圖) 육향을 그림(六鄉之圖) 육수를 그림(六遂之圖) 왕기의 향수와 채지를 그림(王畿鄕遂采地之圖) 적전에서 밭을 갈 때 돕는 것에 대한 그림(籍田耕助之圖) 주나라 제도에서 땅을 맡기는 법(周制任地之法) 주나라 제도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법(周制征稅之法) 주나라 왕실의 작위를 나누는 제도에 대하여(周室班爵之制) 주나라 왕실의 녹봉을 나누는 제도에 대하여(周室班祿之制) 녹전의 세 등급 구별(祿田三等之別) 농전의 다섯 등급 구별(農田五等之別) 국군의 도읍에서 시전에 세금을 징수하는 곳에 대하여(國君都邑市廛征賦之所) 향과 수에 대한 총괄적인 그림(鄕遂緫圖) 숙·상·서에 대한 그림(塾庠序圖) 향사는 서에서 거행한다(鄕射在序) 향음은 상에서 진행함에 대하여(鄕飮在庠) 향음주례를 익힘과 관련한 서문(習鄕飮酒儀序)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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