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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역사

신학의 역사

앨리스터 맥그래스 저/ 소기천 (옮긴이), 이달 (옮긴이), 임건 (옮긴이), 최춘혁 (옮긴이)

지와 사랑·2013-09-01

  • 종교
  • KDC 2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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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서론 이 책은 역사신학의 서론으로 기획된 것이다. 따라서 이 학과목의 중요성과 위치에 대한 감각을 신학 전반에 걸쳐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 자체로 독립된 학과목으로서 신학의 기원을 고려하면서 시작하여 그 주요 구성요소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신학”이라는 개념: 간략한 서론 “신학(theology)”이라는 용어는 신(theos)과 말(logos)이라는 두 헬라어로 간단히 나뉜다. 따라서 신학은 “신에 관한 말”이다. 이는 생물학(biology)이 생명(헬라어 bios)에 관한 말(logos)인 것과 같은 방식이다. 만일 오직 한 분의 하나님이 존재하고,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하나님”(2세기 테르툴리아누스의 표현)이라면, 신학의 본질과 범위는 상대적으로 잘 정의된 것이다. 따라서 신학은 그리스도인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에 관한 반성이다. “신학”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나 초기 교부시대에 종종 기독교 신앙의 특정 측면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2세기 후반에 활약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기독교의 테올로기아(theologia)를 이교도 작가의 뮈톨로기아(mythologia)에 맞세우면서 “하나님에 관한 기독교도의 진리청원”으로 “신학”을 명료하게 이해했다. 이는 이교 신화의 허망한 이야기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 같은 교부시대의 작가들도 “기독교도의 신 이해” 같은 것을 언급하기 위해 이 용어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말이 전체 기독교 사상을 지칭하려고 쓰인 것 같지는 않고, 단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측면에 국한되었다. 이제 기독교는 다신론 세계 안에 등장했고, 거기서 여러 신들의 존재에 대한 신앙은 일상적이었다. 초기의 기독교 작가들의 과제 중 하나는 종교시장에 즐비한 다른 신들과 기독교의 신을 구별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물어야 했던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언급하고 있는 신은 누구며 어떻게 이 신이 구약성서에 탁월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과 관계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부분적으로 삼위일체 교리도 기독교도 신학자들이 언급하고 있었던 신의 정체를 드러내려는 압력에 대한 응답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신론은 한물간, 아니 원시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신은 오직 하나요, 이 신이 바로 기독교의 하나님과 동일시된다는 가정은 널리 파급되어 유럽의 중세 초기에는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위한 논증을 전개하면서 자기가 증명한 신이 “기독교도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명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결국 어떤 다른 신이 존재하겠는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정의상, 기독교의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신학은 하나님의 본성과 섭리와 사역을 조직적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 핵심부에 있던 것은 바로 인간과 구별되는 신적 존재를 언급하는 것은, 비록 부적절 하지만, 하나의 시도라는 믿음이었다. 비록 “신학”이 주로 “하나님의 교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는 했지만, 파리 대학이 발전시켰던 것같이 그 용어는 12, 13세기에 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 대학수준에서 기독교 신앙의 조직적 연구를 위한 새 명칭이 필요했다.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와 길베르 드 라 포레 같은 파리 작가의 영향 아래 라틴 용어 테올로기아는 “거룩한 배움의 학과목”을 뜻하게 되었는 바, 이는 하나님 교리뿐 아니라 기독교의 전체 교리[교설]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12, 13세기 대학 서클에 신학이 도입된 것이 그 주제의 체계화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파리, 볼로냐, 옥스퍼드 같은 중세대학들에는 대체로 네 분야가 있었다. 교양, 의학, 법학, 신학, 교양학부는 입문수준으로 간주되었고, 학도들에게 세 개의 “더 높은 학과”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자질을 함양했다. 16세기의 지도적 신학자 두 명의 교육적 배경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일반적 패턴은 16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먼저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더 높은 신학과목으로 나아가기 전에 교양 과목을 공부했다. 장 칼뱅은 오를레앙 대학에서 법학을 배우기 이전에 파리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연구함으로써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발전의 결과 신학은 유럽 대학에서 고급 연구과정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정착했다. 점차 대학들이 서유럽에서 설립되었고, 신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보편화되었다. 처음에 서유럽에서 기독교 연구는 대성당과 수도원에 부설된 학교에 쏠렸다. 일반적으로 신학은 실천적인 것들, 곧 이론적 주제보다는 기도와 영성에 관한 것들과 관계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대학의 설립과 더불어 기독교 신앙의 학문적 연구는 점차 수도원과 대성당에서 공적 영역으로 이동해 갔다. 그 후 13세기에는 “신학”이라는 용어가 파리 대학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 일반에 대한 체계적 논의를 포괄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되기에 이른다. 이런 의미로 사용된 용어는 초기 저서들,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의 저서에서 제한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용어를 일반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인정되는 저서가 13세기에 등장했는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Summa Theologiae』이 그것이다. 발전상 제약은 있었지만 점차로 신학은 실천적 과목이라기보다는 이론적 과목으로 간주되었다. 보나벤투라와 할레의 알렉산드로스 등 13세기 초엽의 신학자 중 다수가 신학의 실천적 측면을 무시한다는 것의 의미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논증, 곧 신학은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학문이라는 논증을 많은 신학자들이 점차 수용하게 되었다. 이런 사태에 토마스 아 켐피스 같은 중세의 신령한 작가들이 경악했는데 그는 이런 경향이 하나님께 복종하기보다는 하나님에 관한 사변을 고양할 것이라 우려했다. 종교개혁 시대에 마르틴 루터 같은 저술가는 신학의 실천적인 측면을 재발견하려 했다. 1559년 칼뱅이 설립한 제네바 아카데미는 주로 목사들의 신학교육과 연관된 것이었고 교회 사역의 실천적 요구를 지향했다. 이렇게 신학을 교회 사역의 실천적 관심과 연관시키는 전통은 수많은 프로테스탄트 신학교와 대학 안에 지속된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배경에서 활약한 후대의 프로테스탄트 저술가들은 영적.윤리적 영역상 신학엔 구체적인 실천적 함의가 내재한다는 것을 명시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신학을 이론적 학문으로 간주한 중세의 이해방식으로 회귀했다. 18세기 계몽시대의 발흥으로 특히 독일에서 대학 내의 신학의 위상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계몽작가들은 학술적 논구는 그 어떤 외부 권위의 사슬에서도 자유로워야 할 것을 주장했다. 신학은 그리스도인의 신경이나 성경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신앙조목articles of faith”에 기초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신학은 점차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칸트는, 대학 철학부는 진리탐구에 종사하는 반면 다른 분야(신학, 의학, 법학 등)는 좀더 실천적인 일들, 이를테면 윤리나 건강 따위에 종사할 것을 주장했다. 점차로 철학은 진리의 문제에 종사하는 학과목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고, 대학 내 신학부 존속의 근거는 다른 차원에서 확보되어야 했다. 대학 내 신학부의 필요성에 대한 강력한 옹호는 19세기 초엽 F.D.E. 슐라이어마허가 제기했는데, 그는 잘 교육받은 성직자를 갖는 것은 교회나 국가 모두에게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신학 연구 소개요 Brief Outline of the Study of Theology』(1811)에서 슐라이어마허는 다음과 같이 논한다. 신학에는 3대 구성요소가 있다: 철학적 신학(“기독교의 정수”를 확인함), 역사신학(현재적 상황과 요구를 이해하기 위해 교회의 역사를 다룸), 실천신학(교회의 지도권과 실천의 “기술”과 관계함). 이러한 접근 결과 신학의 학적 인증은 잘 교육된 성직자가 사회에 긴요하다는 공공의 동의와 결합되기에 이른다. 이런 전제는 슐라이어마허가 자리잡은 19세기 초엽 베를린에서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에서 발흥한 세속주의와 다원주의로 인해 그 타당성은 점차 의문시되었다. 세속주의를 강하게 채택한 국가에서는 기독교 신학이 사실상 대학 정규과정에서 축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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