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즉물적 추상 ― 연평도 검은 바위들에 응답하는 시선 이영욱?| 사진가 김보섭의 사진은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의 집중감이 있다. 대상 스스로 발하는 어떤 느낌에 꽂인 시선의 응집력이 있다. 시선을 붙잡는 이 힘은 태고(太古)적 바위가 가지고 있는 대상의 무게감과 세월의 흔적이 만들어낸 시간의 지층들이 쌓인 결과이자, 작가 김보섭이 그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을 정면에서 마주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연히 친구를 만나러 섬에 들어갔다가 소연평도 바닷가의 검은 바위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 당시로는 이들 바위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구체화 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이 바위들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2003년 태풍이 올라오기 하루 전날 섬에 들어가 바위들을 다시 대면하고 거의 무아의 경지로 4시간 동안 촬영했다. 이후 해가 있을 때는 안가고 비가오거나 맑은 흐린 날, 안개 낀 날, 틈틈이 찾아가 이들 바위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러기를 거의 10년을 넘게 이 작업을 했고 과거에 묶여 놓았던 사진들을 숙성시켜 이번에 선보이게 됐다. 김보섭의 연평도 바위들 사진은 표면의 질감을 집적 만지듯 생생하게 촉각적이다. 마치 바닷가 물기와 안개와 바람이 축축하게 젖어오듯이 습하다. 시간은 흘러오다 멈춘 듯, 어둠이 내려앉아 스며든 그림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톤은 바위의 무게감을 육중하게 만들어 꼼짝없이 시선을 붙들어 맨다. 시선을 포박하는 이 응집력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강력한 바위들의 존재감, 그것은 바위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대상의 세부적인 형태의 복잡성을 생략하고 세도우 톤의 깊은 맛의 디테일을 흑백사진으로 섬세하게 살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치 수묵화의 농도 짙은 갈필의 질감을 보는 듯 매우 거친 필름의 입상성이 더해서 추상적인 형태가 전체적 분위기를 감싸고돈다. 김보섭의 사진에서 검은 톤이 단지 검은 색으로만 지각되지 않는 것은 알 수 없는 심연의 어둠이자, 대상의 즉물적 힘에 의해서 시선을 사로잡는 아주 강력한 힘을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을 김보섭사진의 즉물적 추상성이라 말하면 어떨까? 이 말은 일면 모순적인 듯하지만, 사진에서 대상이 그 존재감을 강력하게 들러나면 날수록,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대상이 단순히 즉물적이지만, 추상적 형태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바위들의 존재감을 사로잡는 자연의 물질성과 변화의 흔적들이 만들어낸 시간의 아우라 이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 김보섭의 사진에서 바위의 ‘의미’는 관객의 추측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어떤 근원적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 의미의 추상성을 가진다. 그는 특별하게 대상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서 현란한 구도를 잡거나 인위적인 프레임을 잡지 않았다. 대상 그 자체가 품고 있는 세월의 흔적과 자연적 조건이 만들어낸 수많은 사연들이 빚어낸 독특한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겨지기를 바랐다. 작가 김보섭은 이렇게 말한다. “촬영당시 최대한 느끼는 대로 대상에 집중하면서 솔직하게 대상을 바라보고자 했다.”고 그렇다면 그의 사진 접근법은 연평도 바위들의 사실적 객관성에 집중하기보다 나와 대상의 교감에서 오는 주관적 느낌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진에 접근법과 태도는 그의 전작 , , , , 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매우 솔직한 태도로 대상에 접근했다. 그는 주로 인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작업했고, 소재는 다르지만 풍경과 건축에서도 일괄적으로 관통하는 공통점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폭력적으로 포착하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작가 김보섭은 대상이 발산하는 강렬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드려 그 시선에 스스로가 포획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사진가가 대상이 보내는 시선에 응답하는 주관적 응시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이때 대상에 덧붙여진 이러저러한 사회적의미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즉, 작가 김보섭은 이들 대상을 당대의 역사적, 시대적 배경에 천착해서 사회적의미를 부여하고자 이들 대상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앞서 대상에 주관적인 관심사와 자신이 느낀 솔직한 감정에 충실하고자 했다. 바로 그 점이 김보섭 사진의 독특성이고 그러한 결과 지금시점에서 사회적 의미로만 포획되지 않는 잘 보이지 않아 숨겨진 대상들의 존재감이 기록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 지난다음에 숙성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사실상 그는 하나의 대상을 선택해서 단박에 작업을 끝내지 않는다. 오랫동안 끈질기게 인내심을 가지고 심사수고해서 작업을 숙성시켜 세상에 내보인다. 우리는 성급하게 다큐멘터리형식을 취하고 있는 사진에 어느 정도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기 쉽고 또 그렇게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읽어내려 한다. 하지만, 작가자신의 내면의 감정에 솔직하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사진 앞에서 작가의 정치적 태도와 역사적 입장을 정확히 읽어내기란 어렵다. 또 오해의 소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가지는 힘은 그 대상이 과거에 반드시 존재했고, 지금 여기에 그것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강력하게 그 존재감을 상기시킨다. 사실상 사진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진 밖에서 사회적으로 정의내리는 일정한 의미의 논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사진이미지 그 자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김보섭의 검은 바위들, 수 만년의 세월과 자연의 풍화작용에 의한 퇴적된 지층의 흔적들 앞에서 그런 의미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 가? 따라서 김보섭 사진의 즉물적 힘의 근원은 기본적으로 사진의 객관적 사실성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게 된다. 즉, 김보섭 사진에서 연평도 바위들이 있었던 그 장소에 대한 정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즉, 사진은 객관적 사실의 충실한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김보섭의 사진은 소연평도의 지리적 역사적 또 최근의 일련의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들과도 무관한 것이다. 만약 이들 바위들과 어떤 특별한 사건들과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면 김보섭의 사진은 단순한 보도사진처럼 진부하거나 교묘하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문화적으로 편견을 가지고 대상을 보는 시선이다. 이런 시선은 대상의 존재감을 감소시키고, 대상에 덧붙여진 의미의 가치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이다. 김보섭의 연평도 검은 바위의 즉물적 추상성은 결코 의미의 덧으로 포획될 수 없는 시선의 응답이 있다. 만약 관객이 그 시선을 느끼려 한다면 대상 앞에서 서있었을 또 그것을 바라보았던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그 대상이 발산하는 시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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