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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밖에서 안으로

후쿠오카 밖에서 안으로

박훈하

비온후·2014-02-28

  • 역사
  • KDC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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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머리말 후쿠오카 너머 일 년이라는 공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두말없이 선택한 곳이 일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속악해져만 가는 한국 현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오랫동안 두 나라는 증오하고 무시하는 것으로 서로의 존재를 지우려 애써 왔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야말로 존재에 대한 또 다른 확인일 터, 이 부정과 증오의 메커니즘을 긴 시간을 두고 통찰해 보면, 모범답안은 아닐지언정 반면교사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사였다. 과연, 일본이라는 땅은, 내가 보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오래 전 선친이 가꾸던 화단이 거기에 있었고, 불량식품이라고 죄다 추방해버린 어린 시절의 과자들이 버젓이 슈퍼에 진열되어 있었고, 이미 한국에선 사라진 하나미(花見) 풍습이 여전했다. 시간이, 아주 더디게, 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외지인의 눈과 피부로 전해져 오는 것이어서 대체로 믿을 만한 것이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뭐든 이전의 것들과 단절하고 부정하는 데 익숙해 있던 몸과 마음이 촉수를 뻗어 주위의 사물들과 삽시간에 교합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홀로 고군분투하던 도시생활을 잠시 접고 어머니가 계신 시골집 안방에 누운 듯한 이 느낌은, 분명히 신기루이다. 거리와 가로수, 학문과 사유체계, 사회제도와 관습, 그 어느 것도 그 뿌리에서 우리 것과 맞닿아 있지 않은 게 없으니, 본류를 찾았다는 점에선 어머니의 땅이지만, 이 땅의 풍요로움이 지난 시절 우리의 식민지 수탈로부터 얻어진 것이니, 어머니의 탈을 쓴 여우라면 모를까, 정녕 어머니는 아니다. 게다가 편안함을 느끼기엔 한국은 이미 지나치게 장성해버렸고, 제 길을 홀로 가야 할 때가 되었고. 그럼에도 일본은 여전히 우리의 좋은 거울이다. 예쁜 내 모습을 비춰보기 위해서도 요긴하지만, 보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못생긴 부분을 더 도드라지게 보여주기 때문에라도 정직한 참조틀이다. 그건 이 두 상반된 모습이 샴쌍둥이처럼 머리만 따로일 뿐 몸뚱이는 공유하고 있고, 싫다고 부정해 버리고 싶은 상대의 것이, 궁극적으로 나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기와 경로는 다소 다르지만 한일 두 나라의 근대화 과정은 매우 닮았다. 메이지기 일본의 급속한 근대는 1960년대 한국 군사정권과 유신이라는 속도전을 공유하고, 일본이 주변국들의 식민화를 통해 부강해졌듯 한국 역시 주변국들을 후기 식민화하면서 경제부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게다가 미국의 안보조약이라는 우산까지 함께 쓰고 있다는 사실까지. 이런 공통점으로 인해 두 나라는 상호 참조하기보다 증오와 무시로 적대해 왔지만, 근대 100여 년을 훌쩍 뛰어넘어 보면, 공유하고 참조할 많은 것들이 미래를 향해 여전히 열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두 나라 사이의 오랜 정치적이며 문화적인 길항과 그것이 시간 속에 드리운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1년 여 후쿠오카에 머물면서, 내가 마주쳤던 미시적인 것들을, 마치 길에서 주운 숫나사 하나를 들고 기계 몸통을 찾듯, 이리저리 아귀를 맞추면서 이 땅의 사람들이 살아온 생의 무늬들을 가늠하려 노력했다. 나무의 나이테가 그렇듯, 삶의 모든 양식들은 지나온 생의 얼룩들이다. 고통만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니, 그것은 시간을 견뎌 이겨내야 비로소 생성되고 남아 굳은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딱딱해진 살갗 너머로 내가 잠시 떠나왔던 땅을 천천히 상상했다. 국가라는 대중교통에 몸을 싣곤 어딘가로 매우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차에 탄 사람들은 하나 같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느라 대화는커녕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자주 잊어버리는 현해탄 너머의 땅을, 그들의 욕망을, 그리고 마침내 그들과 내가 내릴 정류장이 어디일까를 가늠하려 애썼다. 결국 내 시선이 가닿았던 곳은 두 곳이었다. 하나는 내가 발붙이고 있는 땅의 자치 능력과 공동체라는 영역이었고, 또 하나는 시간이라는 영역이었다. 식민지라는 뼈아픈 경험 이후 잠시 사라졌던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는 성급한 마음에 우린 너무 거대한 국가를 만들고 말았다. 잔소리 심한 부모가 으레 그렇듯, 하나에서 열까지 지시하고 나무라고 꿈까지 대신 꿔 주는 탓에, 우린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잃어 버렸다. 이웃의 배고픔도 국가를 통해 해결하려 하고, 옆집의 불량 청소년들도 경찰의 치안력에 맡겨졌다. 그 사이 우리들은 현관문을 굳게 닫고 내 가족의 안위만을 걱정하면 그만인 세상을 맞이했지만, 품안의 가족도 조각조각 파편화되어 버렸고, 또 한편으론 국가의 작고 큰 오류를 수정하고 비판할 대안세력 역시 증발해 버렸다. 동네와 지역의 자치력은 개인의 무모한 이기심을 최대한 억제할 뿐 아니라 연대의 가능성을 확장함으로써 국가(권력)을 좀 더 먼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나는 일본의 신사(神社)와 마츠리 등을 통해 망실된 우리의 공동체를 아프게 체감했다. 우리에게 없어서 아프기도 했지만, 없는 대가로 감당해야 할 고통이 너무 커서 아팠다. 그리고 이 아픔을 통해 우리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치력을 발휘하고 있는 일본의 공동체들의 한계도 함께 보았다. 당장은 너그럽지만, 이 너그러움이 과거 제국주의가 안겨준 선물인 것은 분명하며, 그리하여 이 선물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날, 너나 할 것 없이 국가의 사육장 안에서 투견처럼 싸워야 하는 생지옥을 모면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생의 시간을 국가의 시계 안에 내맡겨두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의 초읽기를 버리고 더 멀리 바라보고 긴 시간 안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말하자면 큐슈라는 이 땅을 밟고 지나갔던 무수한 사람들, 백제 사람들과 아스카 사람들과 고려 사람들과 헤이안 사람들과 조선 사람들과 에도 사람들과, 그리고 지금의 일본 사람들의 족적을 모두 하나씩 헤아려야 하고, 이 무수한 족적 위에서만 역사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본을 마냥 선망하지도 비판하려 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일본을 거울로 우리의 현실을 호도할 의지를 갖지도 않았다. 차라리 이 두 대극점을 통해 미래를 꿈꿀 제3의 지점을 모색하려 했다. 꿈일 뿐이어서 모색의 길이 다소 모호하고 희미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읽는 이가 채우면서 함께 같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보잘것없는 책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 위해 많은 분들이 애를 써주셨다. 우선 일본의 세이난가쿠인(西南學院)대학과 타무라(田村) 교수, 체류기간 내내 작은 일까지 신경을 써준 김도균 군, 함께 글을 읽어주고 자료수집과 교정까지 보아준 김옥선 선생과 이선영 선생, 남미영 교수와 김선애 교수, 김영준 선생, 그리고 이 책을 쓸 계기를 제공해 준 과 조봉권 차장께 감사드린다. 뿐만 아니라 사진작업을 위해 몇 차례나 큐슈까지 동행해준 이인미 선생과 출판을 허락해 준 도서출판 김철진 대표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황령산 자락의 연구실에서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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