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머리말_ 내 마음의 엘리시움을 찾아 나의 날들은 얼마나 빨리 날아갔던고! 16세기의 위대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마흔을 눈앞에 두고 남긴 시의 한 구절이다. 이제 쉰을 맞이한 내가 때때로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마다 떠올리는 구절이기도 하다. 쉰, 계절로 따지면 인생의 가을이요, 하루로 치면 저녁이다. 지나간 여름은 다시 오지 않고, 한낮의 강렬한 태양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도종환 시인도 ‘저녁 무렵’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은 바 있다. 사라진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고요한 마음으로 묵연히 살아가고 있다. 산탄드레아 산장에 머무르던 마키아벨리처럼. 그런 가운데 하나의 작업을 시도하게 됐다. 지난 10여 년간 읽은 고전을 재음미 또는 재해석하고 그 향기를 오늘에 되살려보기로 한 것이다. 내 비록 특별한 학위도 없고 전문지식도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축적한 상식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고전을 재조명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하면서 인생의 큰 고비에 와 있는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좀더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꿈도 꿔보고 싶었다. 이번 작업은 말하자면 고전과 현실의 접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기자로서 접해온 이 나라 또는 이 세계의 현실과 고전이 서로 잘 어울릴 때가 많았다. 고전을 읽다 보면 현실세계의 모습이 떠오르고, 거꾸로 현실세계를 들여다보면 고전의 한 부분이 상기된다. 이를테면 최근 ‘토플대란’으로 나타난 영어교육 광풍과 ‘0교시 수업’ 등을 보면 장 자크 루소의 《에밀》에서 제시된 교육론이 떠오른다. 어릴 때는 외국어 교육을 할 필요가 없으며 자연의 섭리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루소는 호소했지만, 우리의 교육은 그와 정반대로 청소년들을 괴롭힌다. 영화 을 관람할 때는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지하에서 얼마나 눈물 흘리고 있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그가 에 기록해놓은 테르모필라이 전투가 너무도 괴이한 모습으로 윤색됐기 때문이다. 네 영혼을 돌아보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과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침착하게 받아들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씀에 이르면 숙연해진다. 이처럼 고전 속 이야기와 가르침은 오래도록 내 마음 속에서 태양이 되어 빛나고 샘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 나의 고전 읽기는 꽤 오래 됐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으니 대략 15년 정도 되는 셈이다. 내가 기자로 일하는 가운데서도 고전에 눈을 돌린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내 영혼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자로서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들으면서 취재하고 보도해야 하는데, 나름대로 판단의 중심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상식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것은 바로 고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여기저기 바다를 떠돌던 델로스 섬이 한 곳에 고정되듯 내 영혼도 중심을 잡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수많은 출판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진정한 지혜로 초대하는 책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책은 오히려 ‘영혼의 칼’을 무디게 만들 뿐이다. 잡초같이 많은 서적들 중에서 지혜의 샘물이 되고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은 결국 고전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울러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고전을 하나의 유산으로서 남겨주고자 했다. 유형의 고전, 즉 출판된 책은 물론이고 그 고전을 통해 습득하게 되는 무형의 지식과 정신까지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사실 우리 집안에는 더 중요한 유산이 이미 있다. 그것은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져온 ‘3대 기자 가문’이라는 전통과 자긍심이다. 할아버지는 구한말 의 기자와 일제시대 의 발행인을 지내셨고, 작은 할아버지는 월간지 의 주필을 역임하셨다. 아버지는 1950년대에 에서 정경부장 등을 맡으시면서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셨다. 국내에 ‘3대 기자 가문’은 우리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점차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 4대째 기자가 돼보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나도 그것은 찬성이지만, 그렇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나로서는 우선 가능한 대로 그러한 유산에 ‘고전’이라는 하나의 유산을 더해 주고 싶었다. 나는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혹은 기사마감 후 쉬는 시간을 이용해 고전을 틈틈이 읽었다. 집에서는 잠들기 전이나 주말에 집중적으로 읽었다. 평일에는 독서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30분 내지 1시간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의 토막들을 허비하지 않고 15년 동안 착실히 축적한 결과, 제법 많은 고전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나는 동서양과 한국, 고대와 중세, 근대와 현대를 넘나들었다. 동양 고전을 집중적으로 읽다가 서양의 고전에 매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고전을 찾았다. 어떤 때는 프랑스 소설을 탐독하다가 영미문학으로 넘어가고, 또 어느 시기에는 서양 근대사상을 주로 읽었다. 물론 번역된 것을 중심으로 봤지만, 필요할 때는 원문을 찾아 부분적으로 대조해보거나 완전히 다시 읽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작품은 특히나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역사, 헤시오도스와 아폴로도로스, 오비디우스의 신화 이야기,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테렌티우스 등의 비극과 희극, 크세노폰의 회상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전쟁기, 키케로의 저작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등을 손에 닿는 대로 탐독했다. 에드워드 기번이나 시오노 나나미 등의 로마사 관련서적도 흥미있게 읽어나갔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더 실감나게 즐기기 위해 라틴어를 홀로 공부하기도 했다. 그것은 향기로운 늪이었다. 그 늪은 세이렌처럼 자꾸 나를 끌어당겼다. 근대고전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양의 근대 저작들은 결국 그리스와 로마에 빚진 바가 많기 때문이다. 근대고전에 제시된 이론의 근거는 주로 그리스 로마의 저작이나 역사에서 도출된 것이었고, 인용된 구절도 마찬가지였다. 근대고전이 담고 있는 논리도 상당부분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에서 그 원천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이 아이트나(에트나) 화산이라면, 근대고전은 그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틈만 나면 아이트나 화산으로 접근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남긴 작품들을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읽었다. 내가 그 작품에 다가갈 때면 잡념은 사라지고 온전히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일찍이 마키아벨리가 표현한 그대로다. 그렇게 보내는 네 시간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고 말일세. 그들의 세계에 전신전령(全身全靈)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겠지.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시오노 나나미 지음, 한길사) 중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서재에 들어갈 때 관복을 입었다고 한다. 책을 읽을 때 그만큼 진지하고 경건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고전을 읽을 때 마키아벨리처럼 관복을 입은 것도 아니요, 4시간이나 몰두하지도 못했다. 버스나 전철에서 서서 읽기도 했고, 잠들기 전에 눕거나 엎드린 채로 읽은 날도 많았다. 그렇지만 고전을 대할 때의 마음은 마키아벨리나 나나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진실로 인류의 스승들이 남긴 고전은 인생과 세계의 좌표요 지침이고, 영원한 지혜의 교과서다. 영원히 지지 않는 ‘불멸의 꽃’이다.. 그 꽃에서 피어나는 향기는 온 누리에 퍼져 있고, 우리는 그 향기를 맡으며 오늘도 살아간다. 특히 플라톤의 철학서적과 에우리피데스 등의 그리스 비극, 에라스무스와 몽테뉴, 스피노자, 루소 등의 저작은 더 짙은 향기와 여운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 같다. 고전을 읽는 것은 또한 정신수양의 좋은 과정이기도 했다. 모르는 사이에 나도 변하는 것 같았다. 이전에 비해 성정이 온화해지고 이해심도 커져 갔다. 즐기면서도 탐닉하지 않고, 슬퍼할 때도 상심하지 않게 됐다. 그 누구와 충돌할 만한 일이 벌어져도 웬만하면 참고 양보했다. 인간과 세계에 관한 식견과 안목도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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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머리말: 내 마음의 엘리시움을 찾아 클리오 이 운명에서 저 운명으로 호메로스 , 베르길리우스 인간세계와 가까이 있는 신 오비디우스 , 헤시오도스 에우테르페 영원한 강대국도 영원한 약소국도 없다 헤로도토스 철학의 여신이 통치하는 나라는 가능할까 플라톤 탈리아 ‘성스러운’ 전쟁범죄의 기록 위대한 스승의 거룩한 최후와 영혼의 불멸 플라톤 , 멜포메네 중용, 행복과 정의의 원리 아리스토텔레스 , 플라톤 오케스트라 같은 공화국을 위한 충언 키케로 테르프시코레 도덕미의 극치 그리스 비극 고결한 맏딸의 희생과 부활 괴테 《타우리스의 이피게니》, 에우리피데스 《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에라토 자연의 섭리에 따른 교육 루소 《에밀》 광신의 병에 이성의 빛을 볼테르 《관용론》 폴림니아 무지의 나라와 학문의 은혜 프랜시스 베이컨 《학문의 진보》 이성에 따라 사는 사람은 드물다 스피노자 《에티카》 우라니아 난세 돌파를 위한 냉정한 통치전략 마키아벨리 《군주론》, 《로마사 논고》 위선자들에게 보내는 통렬한 풍자 에라스무스 《광우예찬》 칼리오페 베누스 여신 같은 어머니의 사랑과 지혜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생명을 구하는 직업정신의 영웅 알베르 카뮈 《페스트》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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