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프롤로그 ― 가장 크게 바뀐 건 나 자신이었다 “원장님, 아기가 나와요.” 화들짝 놀라 욕실로 들어갔다. 물 아래로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회음 절개를 하려면 물에서 나오라고 해야 했다. 그때 나탈리가 준 출산 계획서 세 번째 줄이 생각났다. “회음 절개를 하지 않겠습니다.” 나탈리의 남자 친구는 작은 욕조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몸 뒤쪽을 받쳐주었다. 나탈리는 호흡을 하며 마지막 진통을 이어갔다. 마침내 아기 ‘모지’가 세상에 나왔다. 호흡이 터지면서 모지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나탈리와 남자 친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 또한 목이 메었다. “오, 나탈리, 해냈어요. 잘했어요.” 나탈리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원장님, 감사해요. 아기는 괜찮은가요?” “그럼요. 좋아요. 아주 건강해요.” 나탈리는 뉴질랜드 출신으로 한국에서 보이스 레코더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강남 M 병원에 근무하던 시절 나탈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궁외 임신으로 병원을 찾아 나에게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서두르지 않고 모든 과정을 기다려주고 수술 과정도 잘 설명해 준 까닭인지 나탈리는 나를 편하게 여기며 신뢰를 보냈다. 그 후 나탈리는 외래 진료를 위해 병원을 몇 차례 더 찾아왔고, 남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다시 아기를 갖게 되었다. 결혼 전이었지만 그녀는 아기를 낳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무렵 나는 새롭게 개원을 해 출산 진료는 하지 않기로 하고 부인과 질환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예전 병원에서는 하루 40~50명의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한 달에 30~40건의 분만 및 수술을 해야 했다. 며칠에 한 번씩 한밤중에 호출을 받아 병원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기를 받는다는 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고된 병원 업무에서 벗어나고자 새롭게 개원을 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출산을 얼마 안 남겨놓고 나탈리가 나를 찾아와 자신의 가정 출산을 도와달라고 한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전에 근무한 적이 있는, 산부인과로 유명한 C 병원의 선생님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유능하신 선생님입니다. 영어도 잘하시고요. 그분이 잘 도와주실 겁니다. 분만 전문 병원에서 안전하게 출산하세요.” 하지만 나탈리의 의지는 단호했다. “원장님, 저는 뉴질랜드의 제 어머니와 할머니처럼 가정 출산을 하고 싶어요. 일반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제 뜻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중요한 건 단순한 언어의 소통이 아니라 저와 아기를 얼마나 이해해 주느냐 하는 것이에요.” 나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도 잘 이해 못해요. 의사가 가정 출산을 돕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가정 출산은 오래 전의 방법이고, 한국에서도 그런 식으로 아기를 낳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없어요.” 당시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의 전부라고 믿었던, 병원 방식대로 잘 훈련받은 의사였다. 계속 거절하자, 나탈리는 전 세계의 자연주의 출산 사례를 담은 각종 자료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이런 일이 이후 몇 번이나 반복되었지만, 나도 요지부동이었다. 의료적인 처치가 거의 개입되지 않는 가정 출산을 의사가 진행한다는 것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나탈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좋아요, 원장님. 그러면 제가 집에서 아기를 낳을 때 의사가 아니라 친구로서 와주시겠어요?” “친구로요? 의사가 아니라? 음…… 그럼 한번 생각해 볼게요.”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안 돼요!”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의사’와 ‘친구’의 차이가 뭘까? 그건 만일의 상황이 생겼을 때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부담이 적어진 것이다. 무언가 강력한 힘이 나를 끌고 있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 진통이 시작된 것 같아요.” 막상 전화를 받으니 막막했다. 병원 문을 닫고, 우선 긴급 장비를 챙겼다. 석션 스포이드, 켈리 클램프스, 가위, 그리고 손상된 회음부를 봉합할 간단한 기구들이었다. ‘아기 심장 소리는 어떻게 듣지?’ 조산사들이 사용하는 자그마한 심박동 측정기가 생각났지만 이미 늦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나탈리의 집에 도착하니 남자 친구는 물을 데우고 있었다. 나탈리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전에 자기가 준 출산 계획서대로만 도와달라고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진통을 하는 나탈리에게서는 그동안 병원에서 숱하게 보아온 고통스러운 산모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5~6분마다 진통이 오면 침착하게 호흡을 고를 뿐이었다. 아기가 잘 논다는 소리를 들으니 나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두려움은 더 이상 없었다. 그러나 이쯤에서 나는 의사로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조급증을 느꼈다. 우선 내진을 해서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때 나탈리가 준 출산 계획서의 한 항목이 떠올랐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내진을 해주세요.” 그녀의 바람에 따라 첫 진찰 이후 내진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불안해졌다. 각종 모니터도, 산모와 아기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장비도 없는 상황에서 내진조차 못하니 답답하고 무기력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나탈리는 호흡을 하고 물을 마시고 욕실을 왔다 갔다 하며 진통을 잘 견디고 있었다. 나탈리의 남자 친구와 나, 남자 둘은 멀뚱멀뚱 나탈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물을 달라고 하면 물을 주고, 배고프다고 하면 요리를 해서 갖다줄 뿐이었다. 열 시간쯤 지났을까?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나탈리가 불렀다. “아기가 나와요.” 달려가 보니 아기 머리가 물속에서 살며시 돌며 나오고 있었다. 눈과 입을 움찔거리는 것을 보니 건강했다. 아기는 곧 우렁찬 울음을 터뜨렸고, 나탈리는 밝게 웃으며 아기를 품에 안았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의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산과 의사로 살아온 지난 20여 년간 단 한 번도 궁금해 하거나 의심한 적이 없는 문제였다. 그 일이 있고서 한참 뒤 현대 자연주의 출산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랜틀리 딕 리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두려움 없는 출산》이란 책에서 자신이 전쟁터에서 경험한 출산의 모습을 생생히 전했다. 당시 그는 정통 의대 수련을 받고 야전 병원에 파견나간 상태였다. 이전까지 마취 없이는 결코 고통 없는 출산을 할 수 없다고 믿고 있던 딕 리드는 포성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그가 전투 상황에서 대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피난민인 듯한 한 산모가 의무 막사 안으로 들어오더니 잠시 거친 호흡을 몇 번 내뱉고는 아기를 쑥 낳았다. 그러더니 곧 옷으로 아기를 둘둘 만 채 탯줄도 끊지 않은 상태로 막사를 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보고 딕 리드는 충격에 빠졌다. ‘의사의 도움 없이도 저렇게 아기를 낳을 수 있다니!’ 곧이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사가 없던 시절에는 다들 저렇게 자신의 힘으로 아기를 낳지 않았던가?’ 이 일이 있은 후 딕 리드는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를 진행하며 그는 ‘두려움-긴장-고통’의 상관 관계가 출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산모가 두려움을 없애고 호흡과 이완을 잘한다면 충분히 자연스러운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자연주의 출산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게 되었다. 나에게 나탈리는, 딕 리드에게 자연주의 출산의 의미를 알려준 전쟁터의 산모와 같은 사람이었다. 산모 스스로 아기를 잘 낳는 방법이라며 나탈리가 가져다준 자료들을 보며 내 안에는 의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겼었다. ‘이렇게 의료 개입을 최소로 하는 자연주의 출산이 과연 가능할까? 그렇다면 자연주의 출산에서 의사의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 모든 의심과 두려움은 내 눈앞에서 벌어진, 어쩌면 몹시도 당연한 출산 모습 앞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과거에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는 다 이렇게 경험 많은 출산 동반자들과 함께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기를 낳지 않았던가? 출산은 산모와 아기가 하는 것이고 의사는 이를 돕는 사람일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모두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나탈리와의 만남 이후 내 삶의 키는 새로운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정 출산을 도와달라는 외국인 산모들의 요청이 이어졌고, 그들을 도우며 나는 생명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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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가장 크게 바뀐 건 나 자신이었다 part 1 자연스러운 임신과 출산 준비 준비된 엄마, 오랜 꿈을 이루다 콩닭이네 오랜 바람과 신념이 현실로 모험? 마땅히 가야 할 길일 뿐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1 자연주의 출산의 유익한 점 27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1 신생아실이 과연 더 건강한 곳일가? 15 주변의 반대를 넘고, 두려움을 넘고: 미카네(안수현) 34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열 달 35 물속에서 평화롭게 만난 미카13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2 생명을 맞이하는 마음 18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2 회음 절개는 꼭 필요한가? 21 고위험군 산모의 겁 없는 도전: 방구네(송주현) 25 아기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25 든든한 동반자와 함께 파도를 넘다26 내가 가장 잘한 것, 자연주의 출산 28 둘째 출산기: “이렇게나 쉽게요?”30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3 고위험군 산모라도 자연주의 출산이 가능하다 32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3 어떤 때 제왕절개를 하나? 34 자연주의 출산, 더 일찍 알았더라면……: 봄이네(이현주) 38 귀 기울여주는 의료진을 만나다 38 │ 큰아이와 함께하는 출산 39 엄마! 봄이 나온다! 41 │ 자연주의 출산, 온전한 연단의 시간 45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4 자연주의 산전 검사는 이런 원칙으로 47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4 산전 검사란 무엇인가? 50 part2 진통과 출산 같은 몸으로 이렇게 다른 출산을 경험하다니!: 동이네(주철은) 55 다시 찾아오는 두려움 55 │ 축제가 된 두 번째 출산 56 지우고 싶은 첫 출산의 기억 58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5 자연 분만과 자연주의 출산은 다르다 62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5 출산 동반자란 무엇인가? 64 자동차 안에서 나온 아기: 튼똘똘이네(김미현) 67 아니 벌써? 67│ 세상이 그렇게도 궁금했니? 68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6출산의 시작과 진통 71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6 집이나 자동차 안에서 아기가 나오려 한다면? 74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해 준 출산: 만두네(윤지선) 78 두 번의 시험관 시술, 그리고 임신 78 │내려오지 않는 아기 79 조금 느려도 괜찮아: 태풍이네(고유진) 86 출산은 엄마와 아기가 함께하는 것 86 │먹다가 진통하다가 87 물속에서 눈을 깜빡이는 아기 90 출산에 재능이 있나봐: 잠원이네(강민정) 97 병원 벽을 붙잡고 호흡하다 97 │초스피드 순산! 98 믿음으로 아기와 만나는 과정 100 │둘째 출산기: 몸이 기억한 출산 102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7양수가 먼저 흐르는 경우 105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7 진통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인가? 107 트라우마를 딛고: 개똥이네(조예경)110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반감 110 │둘째 출산, 브이백으로 111 36주, 병원을 옮기다 113 │ 만남을 준비하다 114 옥시토신 촉진+찜닭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진통 시작 114 │본격 진통의 시작 116 골반에 낀 개똥이 118 │골반 통과! 118 │ 세 번 힘 주고 출산! 120 연꽃 출산 121 │ 출산을 마치고 121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8 연꽃 출산 125 부부가 함께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 코비와 한음이네(배은혜·배우 정상훈)128 어떻게 출산할까? 128 │ 날짜는 가고 소식은 없고 130 │ 4박 5일 만에 만난 아기 132 둘째 출산기: 병원 도착 12분 만의 초고속 출산 134 행복했던 출산의 기억 137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8 자연주의 출산의 핵심-기다림, 지지, 배려 139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9 역아도 자연주의 출산을 할 수 있나? 141 길고 긴 진통, 그러나 모든 것은 완벽했다: 바네사 130 ‘아기 받는 의사’가 되고 싶었던 아이 131 │생각보다 더딘 진통 133 모든 것이 완벽했다 135 part3 특이 출산과 의료적인 이슈 자이언트 베이비의 자연스러운 탄생: 사랑이네(김로사) 155 아기가 스스로 생일을 정할 수 있게 155 │42주 5일째 마침내 156 4.66킬로그램의 사랑이 157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9 예정일을 비밀로 해라! 161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10 자연스러운 진통의 유도 방법 164 브이백 출산을 마치고, 다 함께 브이!: 뽀롱이네(류영주) 166 브이백 출산에 도전하다 166 │모든 출산은 유니크하다 167 두려움은 기대감으로 168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10 브이백 171 수술 또한 아기의 선택임을: 통통이네(박은란) 173 내가 원하는 출산 173 │ 기다림을 주저하게 만든 불안함 174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다 177 │모든 것엔 이유가 있음을 179 아기와 내가 선택한 최선 180 │ 기다림과 믿음이 가져다준 선물 182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11 충분한 자연 진통 후의 수술 184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11 촉진제, 무통 주사, 제왕절개 분만의 연관성 186 승리는 다운 천사입니다: 승리네(조나영) 188 바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기 188 │조금 천천히 자라는 아이일 뿐 189 조금만 더 참아줘 191 │승리야, 승리야 193 │ 엄마 아빠, 각오되셨나요? 194 다운 천사의 가족으로 살아가기 197 자연스러운 출산 백과 12 산후조리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201 part4 아빠들이 들려주는 출산 이야기 자연주의 출산, 할 만합니다: 자연이네(이적성) 205 왕초보 엄마와 초무식 아빠의 진통 맞이 205 │가슴으로 느낀 뜨끈한 새 생명 207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12 아빠와 큰아이의 출산 참여 211 바보 남편 울보 아빠: 초심이네(박동명) 212 울지 않는 아기? 212 │ 진통이 사라지다 214│ 이 세상에 똑같은 출산은 없다 218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13 자연주의 출산 현장에서 의사의 역할 219 출산 동반자가 되어 함게한 축제의 순간: 공감이네(이한구) 223 천둥의 신 토르도 축하하다 223 │공감 탄생의 길 225 아빠가 두 팔 벌려 받아줄게 226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14 나만의 출산 계획서 작성하기 가정 출산, 셋이서 맞이한 아침: 봉봉이네 227 출산을 준비하며 228 │ 출산의 순간 229 ‘가정 출산’이 우리 가족에게 남긴 것 230 닥터 정의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15 가정 출산 둘라가 되고 싶은가요?: 솔이 엄마(윤자경)230 에필로그: 출산이 맑아야 사회가 건강하다 242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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