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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잎새

마지막 잎새

오 헨리 (글), 이은정 (옮긴이), 김동미 (옮긴이), 이선민 (그림)

해와나무·2007-02-16

  • 문학
  • KDC 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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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작품 해설 오 헨리 단편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특징이 있다. ‘오 헨리식의 결말’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의외의 결말’, 가난하고 소외된 노동자라든지 이민자, 거지와 부랑아, 삶의 낙오자와 패배자처럼 삶의 밑바닥을 떠도는 사람들이나 저임금 여성들의 삶을 해학과 유머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무엇보다 밑바탕에는 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깔려있는 있다는 점 등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단편들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두 그러한 경향의 작품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존에 갖고 있던 오 헨리의 단편 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미발표 작품을 고르는 데도 작용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오 헨리는 흔한 소재를 가지고 다채로운 이야기로 꾸며내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어느 날 레스토랑에서 동료 유머작가가 오 헨리에게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 거리를 찾아내어 플롯을 만드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 헨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야기 거리는 어디든지 있지. 여기, 저기에 어디든 굴러다니니까.” 그러면서 마침 앞에 놓여있던 식단표를 힐끗 쳐다보더니 ‘바로 저기에도 이야기 거리가 있지’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이다. 아닌게 아니라 오 헨리는 자본주의의 중심인 뉴욕에서 동양적 환상이 낳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매력과 색채를 보았다. 그래서 뉴욕을 ‘지하철 위의 바그다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는 “슬럼프에 빠지면 억지로 쓰려고 하지 않고 거리에 나가 돌아다닌다. 거리의 군중 속으로 들어가 실제 인생의 고통과 박력을 직접 피부로 느낀다”고 대답했다. 그에게 뉴욕은 천 가지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약점과 한계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며 소설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에서는 발품을 팔아 일거리를 찾아다녀야하는 저임금의 프리랜서 타이피스트, 에서는 황금만능주의에 절어 사람의 마음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벼락부자, 에서는 겨울을 교도소에서 나려고 범죄를 저지르는 노숙자, 에서는 하는 일마다 틀어져서 손금에 나타난 운명에 집착하는 가난한 이민자, 에서는 세련된 도시민이 되기 위해 고향을 부정했던 출세한 변호사의 삶을 명랑하고 해학적으로, 그러나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오 헨리가 동시대의 스티븐 크레인이나 프랭크 노리스, 데오도르 드라이저같은 사실주의자들과는 달리 세상과 맞서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언뜻 보면 오 헨리의 소설 속 도시에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명랑하고 가벼운 비엔나 왈츠의 분위기가 난다’고까지 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고 오 헨리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사회의 밑바닥 인생, 특히 환경에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일 주일에 고작 6달러의 임금밖에 주지 않는 것은 불평등한 시스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데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이 오 헨리의 라든지 같은 작품을 읽고 저임금의 직업 여성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만 로맨티스트답게 그에게는 고통을 유머로 재치있게 비틀 줄 아는 무기가 있었다. “오 헨리가 느끼는 고통은 그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가장 귀중한 재산이었다. 오 헨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기분 좋게 찌를 줄 알았고, 그 풍자는 인간에 대한 사랑, 애정에서 비롯된 부드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유머는 통렬하지 않다.” 바로 그런 점이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소설이 우리를 웃고 울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일찍이 오 헨리의 전기를 쓴 앨폰소 스미스는, 워싱턴 어빙이 단편소설을 전설화하고, 애드거 앨런 포우가 그것을 표준화했으며, 너새니얼 호손이 ‘우화화’하고 브렛 하트가 ‘지역화’했다면 오 헨리는 단편소설을 ‘인간화’했다고 주장했다. 인도주의야말로 오 헨리 문학의 핵심적인 주제이며 모든 작품 속에 흐르는 한 가지 주제가 있다면 바로 인간에 대한 뜨거운 동정과 이해이다. 시골 출신으로 벼락출세한 뒤 고향을 외면하고 지내다가 우연하게 고향을 찾은 의 로버트 왐즐리, 그가 자연과 동화되면서 마음으로부터 서서히 자신의 본성과 뿌리를 되찾는 과정은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안타까워하고 흥겨워하고 마침내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하는 일마다 꼬이는 이유가 자신의 손금 때문이라고 믿는 친구 토빈을 위해 설령 자신은 손금을 믿지 않아도 친구의 곁을 지키는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하는 잔의 말은 또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 밖에 인생의 새 출발을 앞둔 금고털이범을 못 본 척하는 의 벤 프라이스 형사, 유명한 정치인 빌리 맥매한이 존경하는 사회사업가 밴 듀이킨크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다름아닌 빈민가의 재봉사 견습공이었다는 내용의 , 가난한 부부가 서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아 마련한 선물을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선물했던 황금과 유향과 몰약에 비유한 에 이르기까지, 가르치려 들지 않아도 우리가 얻는 교훈은 뜨거운 인간애와 헌신적인 사랑이다. 한편 오 헨리는 내용과 주제뿐만 아니라 기교와 형식면에서도 참신한 시도를 했다. 바로 그 점이 오 헨리가 일주일에 한 편이라는 속도로 다작을 했음에도 비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는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할 만큼 비유법이나 언어 유희에서 놀라운 솜씨를 보였고, 이라든가 , 과 같은 작품에서는 작가 자신이 작품에 등장하여 창작 과정을 설명해주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요소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 헨리의 소설이 오늘날 엄격한 기준에 딱 들어맞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오하기보다는 피상적이고 말만 번지르르하며 오래 동안 인정받아온 패턴에서 벗어나고 허둥지둥 끝나버린다, 플롯도 그렇지만 캐릭터도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으며, 익숙한 주제를 가지고 다양하게 바꾸는데 재능만 가지고 지탱했다는 비난이다. (뉴욕 시절 생계를 위해 주간지에 기고했던 60~70편의 작품을 두고 그런 비난이 있으며, 책상에 앉아서 상상력만으로 썼을 거라고 딴죽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자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맞받아쳤다. "그렇더라도 오 헨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걸작을 남겼다. 그가 쌓아올린 금자탑을 가만히 내버려둬라. 평론가들이 그 탑의 기반을 쪼아댈수록 탑에 낀 때만 깨끗이 없애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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