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서문 2009년 봄과 여름, 두 전직 대통령이 사망했다. 한국의 보수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정치적 시기를 이끈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떠나갔다. 지지자들은 그들을 “잃어버렸다.” 모든 죽음은 슬프지만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은 더 슬프고 더 비극적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자신이 부딪혀야 했던 문제를 매듭지으려 했다. 그리고 그는 최고 권력자들이 영면하고 싶어 하는 국립묘지에 들어가지 않았다. 작은 묘비 하나로 만족한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 동지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괴로워했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슬픔과 비극은 정치적 반대파들에 의해 상징적 훼손을 당했다. 불행히도 그는 모든 국민의 깊고 진심어린 애도를 받지 못했다. 한국 최초의 국립묘지인 국립 서울 현충원에 영면하고 싶어 했지만 보수는 그의 바람을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국가원수 묘역에 안장되었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고, 안장된 이후에도 조용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적 죽음과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국립묘지의 모순적 관념을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립묘지로 들어가지 않았다. 생을 다한 뒤에도 결코 ‘사인私人’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역설성에 대한 거부로 해석해도 좋을까.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국립묘지를 열망했다. 그것도 자신과 너무나도 달랐던 정치적 존재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묘지의 묘역만을 고집했다. 이념적으로 같은 두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국립묘지를 거부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곳을 소망했다. 우리에겐 노무현 대통령이 예외로 보인다. 한국의 권력자들은 국립묘지를 열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장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국장으로 들어가 국립묘지의 가장 높은 곳에 영면하고 싶어 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살아 있는 최고 권력자들이 많다. 문제는 국립묘지다. 국립묘지란 어떤 곳인가? 정치와 권력은 왜 그곳을 끊임없이 열망하는가? 그리고 왜 그 끝 지점에서 열망에 대한 거부가 자리하고 있는가? 사자는 국립묘지로 들어가는 순간, 정치적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사자는, 잠들어 있으면서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아이러니를 국립묘지는 말하고 있다. 국민적 전당에 영면하고 있는 죽은 자들은 특정한 정치적 국면 속에서, 상징적 산 자로 부활할 것을 요청받는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치와 권력의 심층심리를 관찰한다. 국립묘지의 권력적 존재들은 끊임없이 호명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호명과 동원의 대상은 권력적 사자만이 아니다. 정치적 미화와 정당화를 가능하게 하는 모든 사자들이 그 대상이다. 중요한 사실, 죽은 자는 조용하다. 그들을 두고 살아있는 자들이 다투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죽은 자는 정치적 기호, 그것도 매우 힘 있는 기호가 된다. 칼 슈미트Karl Schmitt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정치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도덕의 본질이 선과 악의 구별이고, 미학의 본질이 미와 추의 구별이고, 경제적인 것의 본질이 이익과 손해의 구별이라면 정치적인 것은 ‘적과 동지’의 구별을 본질로 한다. 슈미트의 통찰은 정치가 왜 죽음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운명인가를 말한다. 동지와 적, 혹은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가 강고할수록 내적인 결속력 또한 그에 비례해 강력해진다. 그런 점에서 죽은 자는 정치적 경계와 결속을 공고히 하는 특별한 장치다. 마음 깊이 자리한 근원적 열정을 만나는 존재로서 죽은 자는 특별한 감성을 자극한다. 죽은 자를 대상으로 타협은 불가능하다. 죽은 자는 성자, 혹은 악마든지 둘 중의 하나만이 있을 뿐이다. 성스러움의 표징을 얻은 죽은 자는 ‘우리’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결집시키고, 악마와 동일시된 죽은 자는 우리의 바깥에서 ‘그들’의 타자성과 이질성을 만들어낸다. 묘지가 최적의 상징정치 무대가 되는 이유다. 죽음의 정치학 또는 죽은 자의 정치학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기, 사자를 둘러싼 상징투쟁사 분석에서 본격화되었다. 필자의 책『빵떼옹: 성당에서 프랑스 공화국 묘지로』(2007)는 그와 같은 문제의식과 추적의 귀결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사자의 정치가 19세기 중반, 미국의 국가건설 과정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을 보았다. 결국,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문제는 결코 우리만의 예외성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고, 그 이해의 바탕 위에서 우리의 문제에 접근하려 했다. 이 책은 그와 같은 고민과 성찰의 결과다. 국립묘지의 탄생과 진화의 과정을 함께 놓고 보면서, 그곳에 퇴적되어 있는 역사와 이념의 미학을 동시에 관찰하면서 세 나라의 유사성과 고유성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연구를 2007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시작했으니 필자는 5년여 동안 죽음의 문제를 마주하고 고민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정해진 기간을 넘겨서야 마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저기 완성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모호함과 사실과 해석의 오류에 대한 독자들의 지적과 비판을 기다려야겠다. 또한 6년 전에 출간한 프랑스 국립묘지의 정치사가 연구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사실로 이 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빵떼옹 분석은 2007년 책의 내용을 적지 않은 부분을, 그리고 한국 국립묘지에 관한 분석은 앞서 출간된『국립묘지와 보훈』(2013)의 많은 부분을 받아왔음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도 구하고자 한다. 죽음과 죽은 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니 마음이 무겁고 걱정이 앞선다. 정치, 권력, 국가라는 힘겨운 개념들과 고리를 엮으려니 더욱 그렇다. 쉽게 다가가기 불편한 주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 책으로 정치와 죽음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자 한다. 관련 자료를 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미국 워싱턴의 최영옥 선생님과 명지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권나현 교수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여러 바쁜 일정에도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민족문제연구소에 감사한다. 무겁고 예민한 주제임에도 출판을 결정하고 마감일을 훌쩍 넘겼음에도 참고 기다려 준 모티브북의 양미자 대표께는 미안함이 앞선다. 감사드린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부모님들의 큰 관심과 격려와 지원으로 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 이외 마음을 표현할 다른 단어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느덧 커서 아빠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웃음으로 때로는 어른스런 ‘충고’로 힘을 준 딸 연재와 꼼꼼한 교정과 날카로운 비평으로 원고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려 준, 가장 중요한 학문적 조력자인 아내 나양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한다. 2013년 겨울 하상복 - 차례 - 서문 프롤로그: 국립묘지와 사자死者의 정치 제1부 사자의 정치학 - 전통에서 근대로 1. ‘사자와 권력’, 인류학적 발현 2. 사자와 권력의 재현: 근대적 원리를 향해 3. 국민국가nation-state와 재현의 정치: 국립묘지의 발명 제2부 사자와 정치적 근대 - 프랑스· 미국· 한국 국립묘지의 탄생 1. 프랑스 대혁명, 왕의 살해, 그리고 빵떼옹의 탄생 2. ‘세속적 영웅주의’의 전당, 빵떼옹 3. 아메리카 합중국: 독립, 분열 그리고 내전 4. ‘연방군사주의’ 구현체, 알링턴 국립묘지의 창설 5. 알링턴 국립묘지, 연방주의 정념의 무대 6. 한국, 국가-국민 건설과 내전의 정치 7. 국립 현충원, ‘반공군사주의’ 공간 제3부 사자와 국립묘지 - 분열과 화해의 정치동학 1. 빵떼옹의 정체성 투쟁, ‘성당인가 묘지인가’ 2. 빵떼옹, 공화국의 묘지를 향해 3. 알링턴 국립묘지와 소유권 분쟁의 정치 4. 알링턴 국립묘지, 화해와 통합의 터전으로 5. 국립 현충원의 변환: ‘권력의 위계공간화’에서 ‘절대적 위상’상실까지 6. 국립 현충원, 정치적 대결의 무대로 제4부 국립묘지의 정치미학 - 역사와 이념의 공간적 재현 1. 빵떼옹, 정치적 화해와 공존의 미학 2. 알링턴 국립묘지의 공간미학: 당파주의에서 국민적 기억으로 3. 국립 현충원, 반공군사주의와 권력주의의 미학 에필로그: 국립묘지, 정치적 화해를 상상하다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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