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제1장 서론 I 나는 동료와 이웃의 평균에 비해 세상 물정을 모르는 편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려는 말은 철학자로서 하는 말도 아니고 역사가로서 하는 말도 아니다. 따라서 나 같은 사람이 정치에 관해 말을 하려면 먼저 변명이 필요하다. 물정에 밝은 사람은 듣는 사람에게 무언가 전에 몰랐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철학자가 정치의 여러 문제에 관해 성찰한 결과라면, 우리가 즐거이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한 사회의 정치적 경험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변화들이 전개되는 방식에 관해 우리는 역사가로부터 배울 수 있다. 이들에게는 각자 나름의 관점에서 해줄 만한 무언가 의미 있는 얘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중요한 논지가 생성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특별한 형식이 없이 흘러가는 대로 말하는 것은 위험만을 안을 뿐 아무런 이득이 없을 것이다. 일정한 기법에 따른 규칙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고, 잡다한 것들을 잔뜩 모아봤자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테니까 이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부터 그런 방식으로 말하려고 한다. 내 말에 대해 체계적인 변론도 펼치지 않을 것이고, 어디에 쓸모가 있는 말인지도 밝히지 않을 것이다. 단, 마냥 두서없이 흘러나오는 말은 되지 않도록 내 나름대로 몇 가지 구획을 설정하고자 한다. 첫째, 오직 근대 정치에 관해서만 말한다. 근대 정치의 특징 중에는 어떤 다른 곳, 예컨대 고대 세계와 같은 곳에 조응하는 것들이 물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조응은 희미할 뿐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정치에서 행위하고 사유하는 현재의 방식에 세부적으로 비견될 수 없는 것들을 비교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근대의 역사는 지난 4백 년의 세월이 중세적 생활과 사유의 조건을 어떻게 바꿔놨는지를 말해준다”― 액튼 경의 말이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한, 근대 정치라는 것은 15세기에 출현하기 시작한 정치적 행위와 사유의 습관과 방식으로서 연면히 이어진 계보에 의해서 현재 우리의 습관과 방식으로 융합되어 있다. 따라서 제법 긴 기간을 다룬다는 말이 되는데, 너무나 긴 기간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현대 정치적 사유의 대표적인 폐단은 미래는 지나치게 멀리 내다보려고 하는 반면에 과거는 너무나 얇게 되돌아보는 데 있다. 현재의 정치에서 싫든 좋든, 의미를 가지는 일들은 프랑스 혁명이나 영국 혁명 또는 1832년의 선거법 개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습관이다. 우리 정치의 성격에 관한 계보를 축약해 버림으로써 바로 그 성격에 대한 이해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둘째, 이미 드러났겠지만, 나는 서유럽,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의 근대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정치적 목표와 신조에 관해서 영국인 사이에서 나타나는 방식이 (또는 차라리 타성이라고 불러야 맞을지도 모른다) 세계 전체에 널리 퍼진 시대이기 때문에, 이제는 정치에서 한 가지 (비록 내적으로는 복잡한 요소들을 담고 있겠지만) 이상의 성격을 목격하기가 쉽지 않다. 정치적인 기획들과 기대들이 (물론 세부적으로는 서로 다르겠지만) 모든 곳에서 서로서로 긴밀하게 동화되어 정치적 추론의 습관들이 과거에 비해 서로 훨씬 비슷해졌다. 지역적 차이에 무관하게 모든 곳에서 쉽게 관찰되는 사항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성격의 획일화는 아직 불완전하고 여러 면에서 허상일 뿐만 아니라 (실상인 경우에도) 자생적인 성장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외부로부터 복음처럼 전해진 결과이기 때문에, 그러한 성격이 (수입품으로 전래해) 아직 불완전하게 정착된 곳에서보다는 처음 태어나 자란 곳에서부터 살펴보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셋째, 영국의 정치에서 나타나는 목표와 신조의 모든 양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정부라고 하는 한 양상, 다시 말해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양상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중세의 정치를 고찰하면서 이렇게 한다면 주제를 어처구니없게 좁게 잡은 셈이 되겠지만, 근대 유럽의 여러 공동체들은 통치자들과 신민들로 분석될 수 있다는 점이 (통치자들은 신민들보다 언제나 수가 더 적다) 특징이다. 이 점은 우리에게 정치적 공동체라는 것이 다른 것과 구별되는 하나의 표식으로서, 특정한 헌법의 형태에 따라서 달라지는 일이 아니다. 나아가 통치자의 직책에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지만, 신민을 상대로 권력을 행사할 권위를 가진다는 점이 가장 본원적인 내용이다. 정치공동체 구성원들의 활동이 정부에 의한 권력행사와 신민의 복종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스림이라는 관점 말고도 근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은 많이 있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 공동체는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지며, 내가 고찰하려는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활동들, 그리고 그러한 활동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구성하는 사유가 내가 다루려는 주제이다. 그렇다고 할 때, 그러한 사유는 일반적으로 정부의 두 양상, 서로 다르면서 서로 연관되어 있는 두 양상과 관련된다. 하나는 누가 어떤 권위로써 다스릴 것이냐는 질문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타당하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권위를 부여받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 가운데 두 번째 질문에 관한 우리의 사유를 주로 고찰하려고 한다. 유럽의 근대 정치사는 첫 번째 질문에 시선을 고착하고 서술될 때가 아주 많다. 그 결과 정부의 구성과 권위의 원천에 관한 실천과 사유에서 발생한 변화의 이야기로 정치사가 표상되어 왔다. 이런 이야기가 너무나 자주 너무 웅변적으로 울려 퍼져서 우리는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라고 거의 설득되었다. 이러한 방향의 시선은 바탕에 일정한 추정을 전제로 삼고 있는데, 정부의 구성 즉, 헌법의 원칙으로부터 정부의 목표가 직접 도출되며, 따라서 전자의 질문이 해결되면 후자의 질문도 해결된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찰하고 조금만 성찰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정부의 구성과 정부의 목표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간단하고 직접적인 관계 같은 것은 없다. 그런 관계가 때때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면, 그런 사례들은 자체로 살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관심은 근대 정부의 역사에 담겨 있는 다른 국면, 정부의 권력 행사와 관련되는 우리의 실천과 사유에 있다. 이것을 역사가처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관해 성찰하고 논평하는 일이 내 관심사이다. 이 연구는 이와 같은 구획 안에서 진행할 것이다. 근대의 정부들은 다른 시대에는 하지도 않았고 꿈꾸지도 않았던 일들을 실행하고 구상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 또는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바들이 과거부터 줄곧 그렇게 생각되던 바와 똑같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점들에서 근대 세계는 자체의 성격을 드러낸다. 이 성격을 발굴하는 것이 내 목적이다. 내가 비록 격식을 갖춘 방법을 따르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은 치밀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근대 세계에서 다스림이라고 하는 실천은 어떻게 생성되고 어떤 성격을 가지는가? 이 실천은 어떻게 이해되어 왔는가? 정부의 타당한 직무에 관한 우리의 사유는 어떻게 생성되고 어떤 성격을 가지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을 시도하는 동안 나는 이 질문들 사이의 연관을 밝히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위에서 구분한바 즉, 다스림을 실천하는 일과 그러한 실천을 이해하는 일 사이의 구분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구분은 우리가 탐구하려는 원리에 관련되는 구분은 아니지만 우리의 탐구가 진행할 방향에 관한 구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어떤 일을 하려고 힘을 기울인다. 가령 영국 왕 헨리 8세라면 수도원을 해체하려고 힘을 기울일 수 있고, 20세기의 내각이라면 외국과의 경쟁에서 특정 산업을 보호하려고 힘을 기울일 수 있다. 이런 일들을 단순히 사건으로, 다시 말해 해체와 보호라고 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가능하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볼 때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지진이나 전염병에 관해 알아낼 수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사항들이다. 그 사건들의 경과를 알아낸다거나, 또는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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