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발간에 즈음하여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는 우리 역사상 유례가 드문 불행한 시기였다. 서양 열강들이 침탈할 때 조선의 무력한 대응과 일제에 의한 망국은 우리 민족에게 더할 수 없는 패배감과 굴욕감을 안겼다. 주권을 상실한 백성의 설움은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고 인륜도덕과 예의염치에 기반을 둔 전통문화가 참혹하게 유린되었다. 일제는 계획적인 식민정책을 통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동시에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려고 했다. 이런 시대에 의리를 실천하며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의에 맞서 적극적으로 투쟁하지 못한 뜻있는 선비들은 은둔 생활을 통한 소극적 저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망국의 한을 기록정신으로 꽃피운 경북 영주의 선비 기려자 송상도가 그런 인물 가운데 한 분이다. 『기려수필』은 기려자의 대표 저술이다. 1910년에 나라가 망하자 선비로서 사명의식이 투철한 기려자는 고민 끝에 국가나 임금을 위해 충의를 바치고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죽어간 충신열사와 독립투사들의 자료를 수집하여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민족투혼을 기록하는 것은 민족정기를 보존하는 길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제에 대한 최선의 저항이며 독립투쟁의 방식이었다. 기려자는 괴나리봇짐을 메고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충신열사의 집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가 수집한 자료는 면암 최익현이나 지산 김복한 등과 같은 명공들의 행적도 포함되어 있지만 열렬하게 일제에 저항하고 투쟁하다 죽음을 불사른 필부(匹夫)들에 관한 기록들이다. 그래서 『기려수필』에서만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자료도 적지 않다. 자칫 흔적도 없이 묻혀버릴 충신열사들의 충혼과 의열이 기려자로 인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기려자가 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인 이 책은 본래 정서한 5책의 필사본과 미정고(未定稿)로 되어 있다. 필사본은 수필이라는 명칭 그대로 저자가 입전(立傳) 대상자의 자료를 입수하는 대로 수록했으므로 연대순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필사본의 기록을 연대순으로 재편집하여 중복된 기록을 산삭하고 오류를 교정한 다음 『한국사료총서』 제2권으로 간행하였다. 필사본에 비해 활자본은 체계적인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그만큼 학계에서는 『기려수필』의 사료적 가치를 중요하게 인식하였다. 당시에 정보매체나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고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가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저술 작업을 한다는 것은 사명의식과 집념이 남다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시골 선비가 가산을 탕진해가며 이런 큰 사업을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기려수필』에서 보여준 기려자의 기록정신은 명리추구를 일삼는 현대인에게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십수 년전 일이다. 어느날 한학자 아당(峨堂) 이성우(李性雨) 선생을 뵙고 ‘번역 공부를 하고 싶은데 어떤 책이 가장 좋습니까?’ 하고 여쭈었다. 아당 선생은 주저 없이 『기려수필』을 추천하고 매우 가치 있는 책이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는 바쁜 일상에 책을 찾아보지 못한 채 세월만 보냈다. 우연한 기회에 박우훈 교수의 제언으로 김상기 교수를 비롯하여 몇몇 박사들과 만나 학교 지원을 받아 『기려수필』을 대상으로 번역모임을 결성하였다. 『기려수필』을 대상으로 1년 정도 번역모임을 진행해 왔는데 마침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과제에 선정되어 2년간에 걸친 연구원들의 노력으로 번역을 마칠 수 있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60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완역되었다는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없지 않다. 그러나 『기려수필』에 수록된 인물 한 분 한 분의 삶에 대해 오늘날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치열하게 불의에 저항하고 일제에 저항하여 독립 운동을 벌이며 목숨까지 바치는 삶을 선택했는지 알아야 한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내몰린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이 나가야 할 길,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기려수필』에서 찾을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번역본이 출간된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본 연구진은 기려자의 기록정신을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며 번역을 시도했다. 충(忠), 의(義), 열(烈)의 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리기 위해 많은 대중들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번역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과정에서 오역과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이는 전적으로 연구책임자인 필자에게 책임이 있음을 밝히며 강호제현들의 질정을 구한다. 2014. 8. 26. 연구책임자 이향배는 무명재에서 삼가 쓰다
리뷰 남기기
로그인하면 리뷰를 남길 수 있어요.
리뷰 0개
아직 리뷰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