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들어가면서 1 2010년 5월 나의 ≪자치통감≫ 번역의 40년간의 대 장정의 일부를 끝내었다, ≪자치통감≫ 전 294권을 중국어 이외의 언어로 완역된 것은 세계처음이었다. 원문이 중국식으로 계산하면 300만자였으니 우리말로 번역한 원고는 200자 원고지로 8만매 정도가 되었고, 양장본으로 31책과 해설서 ≪자치통감전≫까지 합하여 전 32책이 완전히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자치통감≫의 번역을 시작한 후로 따지면 13년만의 일이었다. 이 책의 완간이 전해지자 많은 언론에서는 관심을 가져서 간행된 32책을 쌓아 놓거나 혹은 팔을 벌려서 안고 있는 모습을 찍어서 이 책의 방대함에 관심을 보였다. 정말로 많은 언론에서 큼지막하게 다루었다. 왜 언론에서 이렇게 관심을 가진 것일까? 방대한 분량 때문일까? 아니면 문화적으로 한 단계 끌어 올린 때문일까?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어쨌거나 40년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 만큼 좋은 역사책은 아직도 못 보았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책을 좀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작업에 뛰어든 모험을 감행했는데, 이것을 끝내 완성하였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자치통감≫은 한문(漢文)을 교육하는 과정의 한 과목으로 생각되었다. ≪천자문≫, ≪동몽선습≫, ≪논어≫ ≪맹자≫ 등과 함께 ≪자치통감≫을 학동들에게 읽혀왔다. 말하자면 한문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교재였다. 한문을 공부한 사람들조차 한문을 배울 때 몇 권을 읽은 것은 것에 불과하지만 말로는 ‘통감을 떼었다.’고 말하지만 이는 강지(江贄)가 ≪자치통감≫을 축약한 50권 본 ≪자치통감절요≫였다. 그것도 앞부분의 10권 정도를 읽히는 것으로 통감을 떼었다고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므로 설혹 ‘≪자치통감≫을 떼었다’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구체적으로 ≪자치통감≫에 대하여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한문의 뜻풀이를 좀 하다가 그만 둔 상태라고나 할까? ≪자치통감≫이 얼마나 위대한 역사책인지를 알지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그러하니 ≪자치통감≫에서 찾아낼 수 있는 역사의 흐름, 정치의 도리, 인간관계의 진실 같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자치통감≫ 겉핥기도 못한 채 ≪자치통감≫은 그저 한번 들춰 보고 지나가면 되는 책으로 무심히 지나쳤고 더 이상 그 중요성이 강조되지 못하였다. 2 사실 역사연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조차 ≪자치통감≫은 자기가 관심을 가진 부분에 대하여 ≪자치통감≫에 어떤 내용이 있는 지를 들춰보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설혹 논문을 쓰면서 ≪자치통감≫을 인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사료(史料)로서 인정하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자치통감≫을 사료로서만 생각한다면 이른 바 중국의 정사(正史)라는 ‘25사’보다 가치가 적거나 그 정도에 그친다. 왜냐하면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편찬할 때에 이미 정사로 불리는 역사책 16종이 이미 편찬되었었기 때문에 ≪자치통감≫을 편찬하면서 당연히 이들 16사를 참고하였다. 그래서 16사가 1차 사료라면 ≪자치통감≫은 2차 사료이고, 2차 사료는 1차 사료보다 가치가 덜 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전문 역사가들이 ≪자치통감≫에 깊은 관심을 덜 가질 수밖에 없었다. 현대 역사학의 대종은 ‘사실의 규명’이었다. 과거의 사실이 어떠했느냐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문제는 물론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서 여러 방법이 제시되었고, 이른 바 실증사학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특정 사건이 어떠했는지가 밝혀진다고 한들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설명되지 않는다면 자칫 과거지식에 대한 유희로 끝날 수가 있다. 그런데 아직도 현재와 연결은 미룬 채 많은 개별적 연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것들이 현재와의 연관성을 찾으려면 얼마나 더 많이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역사학계에 필요한 것 같이 보인다. 역사는 시간이 흘러가는 속에 인간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어 왔고, 그것이 다음으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느냐, 즉 시간과 함께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 서회, 정치, 경제, 문화의 모습을 보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과거로부터의 변화의 줄기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치통감≫이 나오기 전까지의 역사는 마치 구슬을 만드는 것에 머물고 있었다. 이른 바 기전체로 쓰인 역사가 그러하였다. ≪사기≫, ≪한서≫, ≪후한서≫로 이어지는 25사는 기전체로 쓰인 책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분류사이다. 인물은 인물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연표는 연표대로 따로 따로 분류해서 써 놓았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마치 한 사람이 어디에 가서 회의를 하고 왔을 때에, 그 회의 내용만 기록하고, 어떤 교통기관을 이용했는지, 무슨 차를 마셨는지는 따로 따로 확인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각 개별적인 것은 구슬이라고 하여도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자치통감≫은 이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편년체로 기록하였던 것이다. 역사학을 한 단계 올려놓은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인 지금에서 조차도 여전히 개별연구가 대종을 이루고 통합적 연구가 많지 않으니, 구슬을 꿰어 만든 ≪자치통감≫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찬연한 것이다. 3 어떻게 보면 ≪자치통감≫이라는 책의 이름을 많이 들어 보았지만 그 진면목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부족한 현실에서 이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소개할 필요가 절실하였다. ≪자치통감≫을 완간했을 때에 이미 전 31책의 부록으로 ≪자치통감≫에 대한 해설서로 ‘≪자치통감전≫’을 출간했다. ≪자치통감≫이 탄생한 배경과 그 저작과정, 그리고 그 기구한 운명과 우리나라로의 전래, 삼국사기와의 관계, 세종대왕이 ‘≪자치통감≫’에 대한 주석이 필요하여 손수 ≪자치통감훈의≫를 편찬한 과정, 그리고 그 후 우리나라에서 읽힌 과정을 설명했다. 해설서는 40년 전에 쓴 중국어로 된 나의 박사학위 논문 ‘≪자치통감≫이 한국과 중국에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대중들이 읽기 쉽도록 정리한 것이므로 어느 정도는 독자들에게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치통감≫을 완간한 후에는 ≪자치통감≫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자치통감≫ 행간읽기’를 계속하여 집필했다. 제일 먼저 쓴 것은 많은 독자들이 좋아 한 ‘≪자치통감 산책≫’이었다. 그 후에 현재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 자유분방으로 나타난 문제점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위진남북조 시대를 잡아서 ‘≪위진남북조 시대를 위한 변명≫’을 썼다. 유교적 속박주의와 불교와 도교의 자유방임주의가 연출한 모습이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보수적 질서를 유지해 온 동양사회 속에 이를 구태라고 비판하면서 들어온 서양의 자유주의를 방종으로 받아들인 세태와 유사했다. 또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위하여 ‘≪자치통감 사론 강의 상?하≫’를 출간하여 역사를 보는 안목을 제시했다. 요즈음 한국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좌우 사상적 갈등이 역사를 서술하는 시각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그렇게 역사를 쓴 사람들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게 되면 아무리 의도적으로 역사를 보려고 하여도 제대로 보는 독자 앞에서는 뜬 구름임을 알게 한 것이다. 또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행태를 보면서 앞에 나선 사람과 그것을 조종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문제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쓴 책이 ‘≪황제뽑기≫’였다. 황제는 혈통에 의하여 당연한 순서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황제가 세워지기까지에 배후 세력들의 엄청난 음모와 역학관계를 보려고 한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과 보시라이의 대결을 보면서 이 문제를 중국 역사에 맥맥이 흐르고 있는 동서세력간의 대결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쓴 것이 곧 출간할 ‘중국의 통일과 분열의 변주곡’이다. 이렇게 꾸준히 ≪자치통감≫ 행간읽기 시리즈를 집필해 가는 과정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치통감≫ 해설서를 간편하게 써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미 출간한 ≪자치통감전≫은 그 분량이 무려 800쪽이 넘으니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침 10년 전에 쓴 간단한 해설서가 있었다. 그러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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