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머리말_25명의 낙태에는 25개의 사연이 있다 올해는 이야기의 계절이었습니다. 여성건강팀 활동가들과, 여성건강 연구자인 백영경 선생님이 25명의 낙태 경험 있는 여성들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생각보다 무겁기도 하고, 생각보다 유쾌하기도 했습니다. 여성들은 그때의 기억과 경험, 낯섦과 생생함 사이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무너지기도 하고 훌훌 털어내기도 했습니다. 가끔 몇 마디 건네는 것보다 가만히 눈을 마주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눈에 힘을 주기도 하고, 아니지 이 정도 한 마디는 해야겠지 싶어 용기 내어 몇 마디 건네기도 했습니다. 지금 인터뷰어인 내 표정이 어떨까 싶어 천장에서 나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녀들이 겪은 외로움 속에 나를 투영시키기도 하고, 용기와 배짱을 보며 나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생전 처음 하는 얘기라며 들어줘서 고맙다고 밥을 사주기도 하시고, ‘낙태죄’가 바뀌어야 한다며 민우회 회원으로 가입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진행할 때는 마음이 가라앉다가도 끝나고 집에 갈 때는 희한하게 왠지 모를 여성 연대랄지 끈끈함이 전해져 오기도 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활동가들과 나눈 이야기, 회의 때 오갔던 몇 가지 내용을 전합니다. 1. 낙태하는 25명의 여성들에게는 정말 25개가 넘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천 명이 낙태를 하면 천 개의 이유가 있겠다, 낙태한 여자들의 수만큼 사연이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피임을 대체해서 낙태를 할 것이다, 여자가 문란할 것이다, 생명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을 만큼 일반화하기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부터 삶에 어떤 굴곡이, 사건이, 계획이 있는지가 낙태를 결정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2. 죄의식의 모양과 내용은 다양했지만 크게는 당시의 주변 ‘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남자 친구나 남편이 취한 태도, 온전히 자신이 선택했는지 여부(주변의 강압에 의한 낙태 등), 주변에 최소한 공감하거나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여부 등에 따라 이후 낙태를 기억하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단순히 ‘생명’에 대한 죄의식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과 관계에 따라 죄의식이 다르게 구성된다는 것이 시사하는 점은 큽니다. 죄의식이 생기기 때문에 낙태를 반대한다던 단선적인 주장이 갖는 한계와 억측과는 달리 죄의식이 전혀 없어서 죄책감이 있기도 하고, 별 감정 없이 그 시기를 지난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몇 십 년이 지난 아직도 누구에게 말 못하며 죄의식이 우울로 번진 여성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감정의 얼룩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3. 낙태를 주요하게 기억하는 매개는 ‘산부인과’에서의 경험이었습니다. 여성들은 낙태 당시 간호사나 의사의 말 한마디, 비언어적 태도, 모멸감,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 등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4. 몸에 대한 기억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모두 상황은 다르지만 이야기의 무게감이 같았던 순간은 낙태 수술 당시의 느낌이었습니다. 산부인과에서 다리를 벌리고 침대에 누웠을 때의 그 공기, 마취가 풀리던 그 순간의 감정. 다시는 그 공간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쉽게 낙태할 것이라는 추측 속에 여성에 대한 혐오, 배제, 두려움, 불신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인터뷰 내용을 보며 느꼈습니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무색한 그 확신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다시 되새겼지요. 여성들이 낙태한 그날, 산부인과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지금 낙태할 ‘권리’를 말하는 것조차 너무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고작 낙태할 ‘권리’라니요. 수술대에 올려 주는 것을 권리라고 말해야 하는 암담함 말입니다. 다시금 낙태할 권리와 낙태하지 않을 권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5. 연간 약 20만 명이 넘게 낙태를 하는데, 낙태한 여성 20여 명과 인터뷰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냐 싶었습니다. 하지만 10명을 모으는 데 3주 가까이 걸렸을 때 알았습니다. 발화하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 있겠구나…. 낙태와 관련한 실태 조사는 필요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법적 낙인의 문제로 언제나 조사 결과의 과소평가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각국의 조사 연구자들은 보고하고 있습니다. 조사 자체의 어려움은 이미 주제가 줄 수 있는 낙인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과소평가라는 말 속에 낙태는 언제든 그 이상, 더 멀리, 꽤 깊게 경험을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반 어려움과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더 많은 여성들이 인터뷰를 요청했고 계획한 20명을 넘어 25명의 여성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인터뷰를 다짐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그녀들은 “다른 여자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좀 더 의연하게 그 시간을 겪을 수 있길 원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낙태는 기본적으로 죄의식을 요구받고, 가해자라는 정체성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로 함몰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집단적으로 목소리 내기 더더욱 어려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25개의 다른 사연 가운데에는 분명 당신의 이야기도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독하게 내밀한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숨은그림찾기처럼 분명 공통적으로 겪은 시간과 경험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모두 다르지만 같은 경험의 자락을 포착하는 것, 그것이 낙태의 불가피성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드러낼 수 있는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낙태 논쟁이 더 이상 생명과 선택이라는 이분법의 감옥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험과 이야기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내부 회의 때 “이 사례집을 누가 읽으면 좋을까?”라는 질문에 모두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고 답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던 이야기, 비난이 부메랑처럼 돌고 돌아 나에게 던져졌던 시간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과 연대가 느껴지는 이야기. 그녀들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랍니다. 2012년 12월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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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6 머리말 25명의 낙태에는 25개의 사연이 있다 12 민우회로 걸려온 전화, 떨리는 목소리 22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다 : 그녀들의 이야기 24 25명의 그녀 26 그 선택의 ‘가혹함’에 대하여 | 낙태, 결정의 순간 52 어떤 하루 | 그날 그 산부인과에서 71 피임, 실천하기 | [왜]와 [어/떻/게] 사이에서 86 그 남자는 어디에 | 없거나 있거나 97 ‘ 죄책감’ 요구하는 사회 | 우리 이렇게 하자. 앞으로 이 일에 관한 얘기는 꺼내지 않기로 116 그 경험의 얼룩 | 낙태, 이후 139 나(만)의 경험을 넘어 | 자매애라는 세 글자 148 나에게 낙태는 ○○이다 152 낙태, 자주 듣는 질문 몇 가지 154 자연 주기법도 했고, 질외사정을 했는데도 임신을 하게 됐어요. 158 낙태를 했습니다. 몸을 위해 뭘 챙겨야 하는 거죠? 161 이야기할 사람이 없습니다. 163 도움이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곳 164 낙태를 법으로 처벌해야 할까? 166 낙태 관련 통계 168 국내 낙태 관련 현행법 171 외국의 사례 178 맺음말 세상이 알아야 할 ‘낙태’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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