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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산 김진호 목사 연구(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애산 김진호 목사 연구(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박영환, 오희천, 윤철원, 정인교, 조성호, 최동규, 황덕형

서울신학대학교 출판부·2015-04-01

  • 종교
  • KDC 23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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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발 간 사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유석성 박사 역사의 발전은 살아있는 자들이 먼저 간 이 들로 부터 배움으로 시작된다. 이를 위해 현재는 과거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평가해야 할 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인물과 사실들을 발굴해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애산 김진호 목사(1873-1960)의 신학과 사상 그리고 복음을 위한 목회 여정을 연구한 논문집의 발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애산 김진호 목사는 신앙 여부를 떠나 한국인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그는 26세까지 한문을 수학하다가 상경하여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애산이 기독교에 입신한 동기는 민족의 살 길을 기독교에서 찾기 위함이었다. 그는 신민회에 가입하여 경상도 대표로 활동하고 배재학당에서 성경, 한문, 조선역사를 가르쳤으며 3.1 만세운동 때에는 독립선언서 인쇄물을 각국 대사관에 보내는 역할을 한 혐의로 징역 7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또한 인천 내리교회 목회 시에는 애국부인회 회장인 김마리아의 상해 탈주를 돕기도 하였다. 이런 애국적 활동과 더불어 그가 남긴 설교에는 일제치하의 암울한 상황에서도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애국적 내용이 가득하다. 1998년 정부가 그의 업적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 것은 애국자로서의 애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애산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교육자로서의 경력이다. 그는 정덕기 목사의 소개로 공옥소학교 교원이 되었고(1908년) 동시에 청년학원 역사교원으로 피임되어 이동녕과 함께 학생들을 가르쳤다. 1914년 YMCA에서 한문과 역사를 가르치던 중 배재학교 신흥우 교장의 요청으로 한문과 성경과 역사를 가르치게 되었다(1916년 4월). 이후 3.1운동 사건으로 배재학교를 떠났지만 1922년 다시 복교하여 1935년까지 후진양성에 주력하였다. 애산은 모두 19년 6개월을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라는 모토아래 ‘애국적 신앙인’을 양성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애산의 삶을 규정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목회자이다. 그는 피어선 성서학원과 협성신학교를 수료하고(1912-1915) 1920년 내리교회에서 웰치 감독에게 집사목사안수를 받은 후 아펜젤러의 요청으로 배재학당 교목으로 있으면서 홍제원교회와 이태원 교회를 설립하였고 1924년 와러트 감독으로부터 장로목사 안수를 받았다. 애산의 목회활동은 1935년 배재학당을 은퇴하고 궁정동, 삼청동, 원동 교회 목회자로 파송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40년 함묵 청진지방 목사로 파송받은 애산은 청진, 어항, 경성, 주을, 생기령 교회 등을 개척하는 등 8년 동안 복음 전파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해방 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과 공산주의자들은 한글과 역사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애산을 구금하고 고문하였고 모든 기록물을 압수하였다. 가까스로 감옥에서 풀려난 애산은 월남하여 궁정동교회에서 목회하면서(1947년 9월) 재건파 부위원장으로 독립된 조국의 재건에 앞장섰다. 이러한 목회 이력은 애산이 민족과 애국을 가슴에 품고 평생 복음을 위해 헌신한 전형적인 목회자였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애산을 평가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학자로서의 그의 면모이다. 애산은 ‘매일일기’ ‘병중쇄록’ ‘빙어’(氷語), ‘임하춘추“(현대사) 그리고 5권까지 출판된 무화과라는 설교집 등의 저술을 남겼다. 특히 애산은 1500여 편의 순한문 설교와 동 수의 한글 설교 등 3천여편의 설교를 남겼는데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한 개인이 이처럼 방대한 설교문을 남긴 것은 한국교회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애산이 한문으로 남긴 문헌과 설교는 한문학자인 오세종 목사의 표현처럼 ’외국어 동시통역사‘수준의 출중한 한학 실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문한학자들도 해독에 어려움을 겪을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한학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해산의 고통을 거쳐 세상에 나온 그의 글들은 한국 교회사는 물론 한국 개화기 역사 연구에 귀중하게 사용될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애산 김진호 목사는 한학자, 교육자, 목회자, 애국지사 그리고 설교자요 방대한 문헌을 집필한 집필자이다. 이런 외적인 다양한 모습들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수렴 된다: 일제치하의 식민지라는 암울한 시대에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지사가 기독교에 귀의하여 교사로 그리고 목사로 좌절과 절망에 빠진 민족에게 복음을 통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사역에 평생을 헌신한 하나님의 사람, 민족의 거인! 오늘 혼탁한 시대에 애산의 가르침과 헌신적인 삶은 한국인과 신앙인 모두가 따라야 할 모범이자 사표(師表)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무관심속에 방치되어온 이런 거인을 찾아내어 역사 앞에 소개하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특별히 애산이 웨슬리의 신학과 신앙위에서 사역하였기에 동일한 웨슬리의 후예로서 친근감이 각별하다. 일차적으로 귀한 자료들을 번역하고 출판하여 연구할 수 있도록 기초를 마련해주신 김상범 박사, 김경옥 박사 내외분과 김주황 목사 등 김진호 목사의 가족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김진호 목사 선교신학과 복음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애산 연구의 첫 발을 떼신 신동호 박사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무엇보다 연구와 교육으로 분주함에도 애산 김진호 목사의 연구를 위해 수고한 박영환, 오희천, 윤철원, 정인교, 조성호, 최동규, 황덕형 박사와 책이 출판되기까지 노고를 아끼지 않은 현대목회 연구소 및 기획처 관계자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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