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제1장 발생: 최근의 혁명 지난 10년 사이에 하나의 수정란이 성체로 변해가는 과정인 발생development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혁명이 생물학 바깥에서는 거의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데, 아마도 연구가 너무나 흥미로워서 연구자들이 더욱 폭넓은 청중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할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것은 꽤나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미분화未分化 상태의 단순한 수정란이 복잡한 성체로 변해가는 과정은 매혹적일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략 15년 전에 『생물학의 문제들』이라는 책을 쓰면서, 발생의 과정이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더불어 생물학 분야의 두 가지 주요 과제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오늘 내가 그 책을 다시 쓴다면 발생을 주요한 과제의 영역으로 다루지 않고, 오히려 해답을 향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고 있는 영역으로 다룰 것이다. 이러한 진보는 유전학의 발상과 기법을 발생 과정에 적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러한 접근법의 이면에 놓인 철학은, 유전자가 디지털 형태로 하나의 생명체를 만드는 지시사항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그레고르 요한 멘델(1822~1884)로 거슬러 올라가, 수정란 안에는 특정한 신체 부위나 기관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들이 있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이 책의 주요한 목적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혁명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 하나의 전통도 언급하고자 하는데, 이는 발생을 전일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전통의 뿌리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자연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이런 전통은 ‘자기조직화’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며, 역동계에서 특정 부위의 발달을 조절하는 특정한 지시사항이 없더라도 복잡한 패턴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을 통해 뒷받침된다. 자신들의 방법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발생유전학자들은 이런 대안이 될 만한 전통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발생유전학자들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유전적인 제어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과정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관찰 결과들이 있으며, 나는 이들 중 일부를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상호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이러한 대화를 고취시키는 데에 기여한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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