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문] 멀리서 발견한 한국인의 개성과 영혼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한국인’, 한국인들의 ‘개성’과 ‘영혼’에 푹 빠져 지냈다. 나를 사로잡은 한국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개별자’일 수도 있고 ‘추상’일 수도 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개성’과 ‘영혼’을 느끼듯, ‘한국인’에게도 똑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아 있는 한국인을 사랑한 적은 있지만 거대한 추상 덩어리에 큰 열정을 품어본 적은 사실 없다. 그래도 그렇지, ‘민족’이라는 울타리가 허물어져 가는 시대에 이리도 위험한 열망을 품다니. 진부하고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나는 내 마음을 고백해야겠다. 2006년, 스웨덴에서 공부하면서부터 빠져들었던 ‘한국인’에 대해. 먼 타지에서 새로이 찾은 한국인의 얼굴에 대해. 나와 친구들, 가족, 그리고 내가 잘 알지 못하지만 내 감각과 기억 속에, 마치 모국의 햇살과 공기처럼 익숙하게 저장되어 있는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왜 ‘한국 땅’이 아닌 ‘이국 땅’에서 ‘한국인’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한국인’이라는 좁은 민족 정체성을 벗어나 코즈모폴리턴의 정체성을 찾아 떠났던 내가 왜 다시 ‘한국인’으로 돌아와 이들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나로 하여금 ‘약자’를, ‘역사의 약자’를 섬세한 눈으로 다시 보게 해 준 덕분일까. 세계를 굴리는 ‘힘 있는 자’들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오만한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깨뜨린 에드워드 사이드. 세상의 주류 이데올로기에 저항한 팔레스타인 출신 학자를 진정으로 존경하는 스웨덴 평등주의 학풍 속에서, 내가 ‘역사의 약자’에게 눈을 돌린 것은 사이드를 향한 흠모의 마음 때문일까. 나는 가끔, 나를 ‘한국인’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 든든한 토양으로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전통과 에드워드 사이드를 떠올리곤 한다. 또한 내가 20대나 30대에 이들을 만났더라도 이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웁살라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15세기부터 수만 권의 귀중한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중앙도서관 카롤리나 레디비바에서, 1904년 국운이 기우는 한국에 대해 쓴 책 『한국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대한 기억과 연구』를 발견했다. 한 세기도 넘는 시간의 무게를 담고 있는 책은 신비롭고 묘했다. 나는 책을 들추지 못하고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한참동안 표지만을 바라보았다. 화관무를 입고 족두리를 쓴 여인이 그려진 하얀색 낡은 하드커버. 이 안에 담겨 있을 나와 같은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들. 나는 이방인의 눈으로, 1세기 전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관찰은 스웨덴 사람을 넘어 영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미국인 등의 시선으로 확장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국인은 내가 알고 있던 한국인이 아니었다. 내가 읽은 텍스트 속에는 내가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긍정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모르고 있었던 걸까? ‘자유분방하고 호탕하며 자연스럽고 총명한 한국인’과 같은 유쾌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유쾌하고 매력적인 한국인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서구의 식민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19세기 말, 한국이 문호를 개방하자 은둔의 나라를 탐험하고 싶어 하는 서구인들이 한반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이라는 생생한 현실 공간에서 서구인들은 한국인들을 관찰하고 체험했다. 서로 다른 두 ‘타자’는 간혹 지배와 종속의 관계에 놓이기도 하고, 우월감과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며, 또 동등한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기도 했다. 한국을 여행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책을 썼다. 서구인들이 쓴 텍스트에 따라 한국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더럽고 게으르고 미개한 한국인’이라는 표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표상이 등장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표상이 덧붙여졌다. ‘선천적으로 나태하고 아둔하고 무기력하다’거나 ‘만사태평하고 유약하며 겁이 많다.’ ‘부도덕하며 정신적으로 정체’되어 있고 ‘스스로 통제하는 자질이 없는 한국인’과 같은 표상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한국에 대한 전혀 다른 표상이 산출되기도 했다. ‘자유분방하고, 쾌활하며 호탕한 민족,’ ‘선량하고 관대하며 머리가 명석하다.’ 어떤 대상에 흥미를 느끼면 ‘끈기와 열의’를 보이고, ‘상당히 지적이며 놀라운 이해력’을 갖고 있다. ‘언뜻 보면 둔해 보이나 알고 보면 비범하다’거나, 한국인들의 태도는 일본인들과는 달리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당당하다.’ ‘일본인보다 일을 더 빨리 배우고 더 믿을 수 있는 사람들’, ‘동면에서 깨어나면 독창적인 탐구심으로 불타오를’ 같은 표상도 있었다. 세계가 ‘한국인은 자치가 부족하다’고 말할 때, 한국인에게는 ‘무서운 잠재력’이 있다고 쓴 텍스트도 있었다. 100여 년 전, 서구가 한국에 대해 쓴 텍스트에는 한국을 둘러싸고 전혀 다른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었다. 서구는 한결같이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만 내지 않았다. 한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한 텍스트가 꽤 많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다. 처음으로 민감하게 내 의식 속에 있었던 한국에 대한 표상들을 의심해 보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주로 ‘게으르고 무기력하며 정신적으로 정체되어 있는’과 같이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어둡고 우울하며 모자란 것만 알고 있었던 걸까? 구한말, 하면 왠지 부끄러웠다. 패망한 나라, 미개하고 더럽고 게으른 종족. 누가 나에게 이렇게 편파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었을까. 부정적인 인상만 남긴 이 ‘균열’의 메커니즘을 찾아내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이유 없는 부끄러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강자는 쓰는 자, 약자는 쓰이는 자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지구상에 탐험되지 않은 땅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세계 구석구석이 서구 팽창주의자들의 눈에 의해 샅샅이 탐지되던 시기였다. 세상 각지를 여행한 탐사대는 본국으로 돌아가 자신들이 체험한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은 동양인에 대한 신체적인 특징과 지리, 풍물 같이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종교, 기질, 민족성 같이 추상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한 ‘종족’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었다. 동양을 탐구하면 할수록 서구는 동양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지식을 쌓아 나갔다. 그리고 텍스트가 증가할수록 동양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었다. 서구가 ‘동양’에 대해 지식을 생산한다는 것은 서구가 그 대상을 잘 알게 되는 것인데, 담론을 생산하는 쪽과 대상 간에 힘이 동등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주인과 노예’* 같은 일방적인 관계가 된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 한국을 찾은 여행가가 ‘저 동방의 은자의 나라에는 시간 개념이 없는 미개한 종족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나태하고 부도덕하다’는 텍스트를 쓰면, 후대의 여행가도 한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계속해서 비슷한 텍스트를 덧쓰게 된다. 새로운 체험을 하여 새로운 텍스트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새로운 텍스트가 산출된다고 해도 기존의 지배적 담론의 흐름을 바꿀 만큼 새 권위를 얻기도 쉽지 않다. 이렇게 한국에 대한 인식이 덧씌워지는 과정이 되풀이되면, 결국 유럽 저 너머에 있는 한국은 텍스트가 말한 대로 ‘나태하고 부도덕한’ 종족으로 ‘현실화’되어 그렇게 인식되고 마는 것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이런 시기였다. 힘을 가진 서구가 한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일방적으로 말한 시기였다. 한국은 침묵하고 있었다. 한국은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말한 적이 없었다. ‘한국인이 누구인지’ 먼저 말한 쪽은 서구였다. 한국은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었다. 목소리가 너무 약해서, 혹은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강자들이 힘에 눌려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은 힘을 가진 강자가 인식하는 그대로 정의되고 존재했던 것이다. 더욱이 당시는 경제적·군사적 힘이 우세한 서구가 전 세계를 상대로 식민주의적 침탈을 행사하던 때였다. 당시 유럽에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지원하는 인종론과 사회진화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이를 테면, ‘힘센 종족이 약한 종족을 지배하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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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서문 한국인의 개성과 영혼ㆍ 1장 | 한국인,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알고 있나? 1. 진짜 한국인의 얼굴을 본 푸른 눈동자 한국인은 확실히 잘생긴 종족이다 한국인은 자연스럽고 당당하다 자유분방하고 쾌활하고 호탕한 한국인 나는 ‘진짜 한국인’을 만나고 싶다 일을 빠르게 배우는 비범한 한국인 2. 정말 몰라? 한국인의 잠재력 한국인은 인정이 많고 통이 크다 한국인의 폭식문화 냉정과 열정, 평온과 분노의 한국인 호랑이를 때려잡는 한국인이 비겁하다니! 3. 강인함과 당당함은 한국 여성의 힘! 한국 ‘아줌마’의 기원 ‘공처가’임을 숨기고 싶어 하는 한국 남자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자들이 빨래만 하고 있다니! 한국 여성의 미(美), 청순, 수수함, 세련됨 백인 우월주의를 공격한 다부진 논객, 박마리아 아름답고 강한 한국 여자들 2장 | 100년 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1.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는 한국인 한국인의 자연 예찬, “좋소?” ‘문명과 야만’의 눈으로 본 서울의 거리풍경 ‘혼욕’을 하는 일본인들은 과연 청결한가? “일본의 음악은 우리의 음악과 필적할 수 없다” 재밌는 풍경들: 과거 시험의 날, 새해 축제, 투석전 2. 누리기만 한 특권층, 한국 발전의 걸림돌 한국의 특권층은 누구인가? 늘 무언가를 먹거나 잠을 자고 있는 특권층 백성은 무조건 복종만 하지는 않았다 고종에 대한 기억들 열강들은 왜 한국에서 무질서를 부추겼나 가치 있는 통치 기구가 될 수 있었던 독립협회 3. 한국의 종교, 뿌리가 없다고? 한국은 기독교가 자발적으로 뿌리내린 유일한 나라 사회적으로는 유교, 철학적으로 불교, 고난에 처했을 때는 영혼 숭배 기독교인이 되어도 내면에 뿌리박혀 있는 샤머니즘 동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 서구인들 기독교는 한국인의 정신에 얼마나 맞을까 왜 3ㆍ1운동을 선교사들에게 비밀로 했나 3장 | 오인된 역사, 이제 우리도 다시 볼 때다 1. 서구의 지식인, 한국의 지식인과 만나다 윤치호를 닮은 세로셰프스키 “일본인들이 무슨 짓을 했지요?” 한국에서 정체성을 깨닫는 서구의 식민지 지식인 2. 어떤 스웨덴 기자가 목격한 놀라운 현장 애원하는 그렙스트, 버티는 윤산갈 키 작은 일본인에게 매 맞는 덩치 큰 코레아 사람들 3. 그 미국 외교관은 왜 한국과 사랑에 빠졌나 한국의 토속 문화에 푹 빠진 샌즈 샌즈가 길들이고 싶었던 두 명의 한국인 동양의 작은 왕국에서 백인의 짐을 짊어진 소영웅주의자 4. 한 독일 기자의 섬세하고 예민한 시선 나는 ‘서양 야만인’ 나는 한국에 대한 서구의 말을 믿을 수 없다 한국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4장 | 편협한 눈으로는 진실을 보지 못 한다 1. 한 영국 제국주의자의 오만한 태도 한국 외무대신과 대화하는 영국 정치가의 태도 커즌은 왜 ‘한국’에 대해 상투적인 말만 되풀이하나? 일본의 한국 지배는 능력 밖의 일이다 2. 경성제대 외국인 선생과 한국인 제자들 사이엔 어떤 일이? “우리의 불행한 조국에 대해서 글을 써주실 거죠?” 드레이크는 왜 식민지인의 심성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박마리아 앞에서 나는 노예였다” 3. 일본은 한국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나…… 영국인들은 모두 자민족 우월주의자들인가? 서구는 일본을 오판했다 일본은 약탈한 문화재를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 군부는 미친개와 같아요!”-어느 일본인의 분노 4. 한국인보다 더 분노한 또 한 사람의 영국인 “우리에게 무기를 좀 사다주십시오”-어느 의병장의 간청 “우리는 목석이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진 인간입니다.” 5장 | 일본은 빼어난 화장술로 세계를 현혹했다 1. 일본은 한국 지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황인종이 백인종을 물리치다니! 풋내기 미국 외교관, 한국의 ‘중립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다 세계로부터 한국을 고립시킨 일본의 음모 세계는 ‘한국을 우려먹는 하나의 거대한 가족’ 2. 일본은 자신들은 과대평가하고 한국을 과소평가했다 가장 무자비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통치 일본은 한국인을 열등한 일본인으로 만들려고 했다 일본은 한국인의 민족성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6장 | 한국인을 향한 제언 오해와 편견을 넘어 새로운 한국스타일로 이 책에 등장하는 서구인들의 한국 체류 시기 참고자료 독자서평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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