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프롤로그: 예禮, 몸짓의 예술인가 억압의 기제인가? “시詩에서 감흥이 일어 예禮에서 자립하며 악樂에서 완성한다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논어論語』 「태백泰伯」) 사람의 일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정情입니다. 정은 구체적인 맥락에서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행복한 정서적 반응이 일어나고, 나보다 나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언행이 조심스럽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정서적 반응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호 소통이 가능한 일정한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예는 이러한 정서적 공감대를 일정한 행위 양식으로 정형화한 것입니다. 사람은 예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이 됩니다. 사람이 인간으로 온전하게 서기 위해서는 남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행위 양식을 익혀야 하지요. 독불장군식으로 남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두고 흔히 무례하다고 말합니다. 무례한 사람은 남들과 어울려 살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사람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인간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人間이란 문자 그대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는데, 인간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사람일 수는 있어도 인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를 갖출 때 생물학적 사람은 관계적 인간으로 거듭납니다. 그런데 공감과 소통은 냉철한 합리적 판단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뜨거운 감정을 거쳐 구체적인 언행으로 표출되지요. 감정은 거센 강물과도 같아서 적절하게 제어하지 않으면 마구 범람하여 관계를 해치고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따라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합의한 적절한 행위 방식이 필요하고, 그러한 행위 방식이 체계화한 관계 질서가 요청됩니다. 그러므로 예는 정에서 출발하되 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행위 양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교 전통에서는 이런 측면에 주목해서,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시를 통해 인정의 다양한 성향을 신중하게 살피고, 그러한 인정을 공감과 소통의 몸짓으로 정형화한 예를 정립했습니다. 예는 공감과 소통을 지향하는 몸짓입니다. 공감과 소통을 할 때 사람은 비로소 인간이 되지요. 그러나 예를 통한 공감과 소통은 다양한 관계의 차이를 무시한 채 이루어지는 무차별적 일치同而不和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여러 악기가 제각기 다른 음을 내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협연을 이루는 오케스트라처럼 각자 다른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잘 어우러지는 차이의 조화和而不同를 지향합니다. 예컨대 선생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양자가 서로 어우러지는 과정을 통해 선생도 학생에게 배우고 학생도 선생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이상을 구현하게 됩니다. 즉 개별적 감정을 드러내는 시에서 시작한 차별적 예는 조화의 음악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시에서 시작하여 음악에서 완성되는 예는 사람이 인간으로 온전하게 서기 위한 몸짓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동적인 가사와 멋진 가락을 담은 악보가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연주하지 않으면 감동을 줄 수 없듯이, 인간이 지닌 정은 상황에 맞게 적절한 몸짓으로 구체화되지 않으면 훌륭한 예가 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실천은 멋진 연주에 견주어질 만큼 훌륭한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예의 실천을 통해 삶은 예술이 됩니다. 그러나 예가 비롯되는 구체적인 맥락과 예가 규정하는 차별적인 규범은 개인의 개별적 욕망과 의지를 억누르는 억압이 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바깥일은 남자가 하고 집안일은 여자가 한다는 전통적 예 의식은 여자들의 사회 진출과 자기실현을 누르는 억압적인 폐해를 낳기도 했습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인간관계는 마치 피라미드 구조처럼 아버지, 군주, 남편을 권력의 정점으로 삼는 위계질서hierarchy를 통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종법에 근거한 가부장적 사회질서로 구축했습니다. 예는 ‘예술’과 ‘억압’ 사이에 존재합니다. 양자는 서로 모순되지만 역설적으로 공존하지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사회적 상황에 따라 예는 예술이 되기도 하고 억압이 되기도 합니다. 아니, 시간이나 공간이 아니라 예를 실천하는 인간에 의해 예술이 되기도 하고 억압이 되기도 합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내키는 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는 억압의 기제가 되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는 동기에 의해 행동하는 사람에게 예는 자기실현의 예술이 되지요. 저는 이 책에서 이미 유교적 전통사회의 기반이 철저하게 무너져서 예가 고리타분하고 낡아빠진 봉건적 잔재로 격하되어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는 표현이 더 이상 우리 민족의 도덕적 긍지와 문화적 자부심을 드러내주는 표현으로 쓰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예는 무엇인가?’ 하는 불편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오래된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변은 예술과 억압 사이에서 예의 의미와 기능을 새롭게 재인식하고 그 기반 위에서 예의 현대적 가능성을 새롭게 재구성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예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고집한다면 예는 철저하게 폐기해야 할 낡은 옷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냉철한 합리성과 효율성을 자랑하는 지름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둘러 가느라고 느리지만 따스한 감성이 흠뻑 배어 있는 옛길도 있습니다. 우리 선인들이 오랫동안 우려낸 질문의 진수를 다시 음미하면서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준비하는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정신적 여행 혹은 품격 있는 문화 트레킹이 될 만합니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을 바라보면서, 사회적 억압의 그늘을 떨치고 자기실현을 꿈꾸면서 몸짓의 예술을 지향하는 여러분께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옛길을 함께 걷기를 권하는 초대장을 띄웁니다. 2011년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계절에 안동의 하언재何言齋에서 박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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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프롤로그 1장 풀이하는 글 1. 예禮의 기본 의미: 제사의례, 도덕실천, 문화관습, 사회제도 2. 예의 구조와 특성 3. 예의 역사와 예에 대한 비판 4. 예의 현대적 가치와 의의 2장 원전과 함께 읽는 예禮 1단계 제사와 제의: 근본에 보답하는 의례 2단계 예제와 예전: 공동체를 다스리는 질서와 제도 3단계 예절과 예속: 도덕적 실천과 문화적 관습 4단계 예법과 예치: 문화적 제도와 문화적 통치 5단계 예의 비판자들: 인위적 인간소외와 억압적 봉건질서 3장 원문 및 함께 읽어볼 자료 1. 원문 2. 주석 2. 더 참고하면 좋은 자료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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