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세기의 사건, 그 진실을 찾는 매력적이고 지적인 여행 금세기 최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포퍼는 어떤 사이였을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나이는 열세 살 차이. 두 사람 모두 빈 출신의 유대인이었고, 현대 철학의 주요한 흐름인 논리실증주의(빈 학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로 빈 학파에 큰 영향을 미쳤고, 포퍼는 반증 가능성의 원리를 제시하여 빈 학파의 검증 원칙이 가지는 난점을 극복했다. 빈에는 빈 학파 회원을 비롯하여 그들이 함께 알고 있는 친구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평생 단 한 번밖에 마주친 일이 없다. 1946년 10월 25일, 비트겐슈타인이 교수로 있던 케임브리지대학에 포퍼가 초청 연사로 온 것. 그런데 포퍼가 강연을 시작하자, 곧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급기야 흥분한 비트겐슈타인이 부지깽이로 포퍼를 위협했고, 누군가의 제지를 받고는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이것이 두 철학자의 짧은 만남의 전말이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이 죽고 한참 지난 시점에 포퍼가 자서전에서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함으로써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제자들이 나서서 포퍼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세기도 더 전에 일어난 이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밝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사이에 포퍼마저 죽었고, 사건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도 상당수 고인이 되었거나 7,80대의 노인이 되어 있다. 게다가 그들의 증언에도 상충하는 점이 많다. 분명한 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손에 부지깽이를 들고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의 저자 데이비드 에드먼즈와 존 에이디노는 이 해프닝에 가까운 사건과 그것을 둘러싼 논란을 출발점으로 하여 사건의 배후에 놓인 두 철학적 거장 사이의 깊은 갈등과 대립의 요인을 추적해간다. 그들은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성격과 철학 사상, 가족, 문화, 경제적 배경 등을 자세히 비교하고 검토하면서 비트겐슈타인과 포퍼가 만나자마자 왜 그렇게 심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득력 있게 해명하고 있다. 결국 케임브리지에서의 10분간의 만남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그 밑에 숨어 있는 어마어마한 빙산 더미다. 그것은 보석처럼 다채롭게 빛난다. 추리소설적 형식 속에 가장 진보적이고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빈의 유대인 공동체가 파멸해간 비극적 이야기, 빈 학파를 중심으로 한 철학 논쟁과 지성사, 위대한 철학자들의 개성과 인간적 약점까지도 보여주는 유머러스한 일화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이 책을 읽고 번역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이 책에 각별한 애착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책이 사라져버린 세계에 대한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핵심에 놓여 있는 부지깽이 사건은 물론 영국에서 일어났지만, 그 주인공들은 모두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이고, 그들과 같은 위대한 정신이 나타난 배경은 바로 세기말 이후의 빈 문화였다. 서양 역사에서는 대단히 희귀하게 무엇보다 문화를 중시하고 여러 민족을 평화롭게 다스리고자 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이 무너져가면서 수많은 천재를 낳았고, 그 천재들은 그것과 정반대되는 무력과 야만의 제국을 꿈꾼 또 다른 오스트리아인에게 쫓겨 전 세계로 흩어져갔다. 히틀러에 의해 문화적 독일, 문화적 오스트리아는 완전히 짓밟히고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 명맥은 천재들이 피신해간 영국이나 미국에서 겨우겨우 이어졌다. 빈이라는 삶과 정신의 고향을 잃은 두 천재가 전후의 황량함이 채 가시지 않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만났다. 그런데 유대인이었던 그들, 나치에 의해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들이 전쟁이 끝난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은 어느 날, 케임브리지대학의 회의실에서 ‘철학적 문제는 존재하는가?’라는 극히 추상적인 문제 때문에 격한 말다툼을 벌이고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은 부지깽이까지 집어 들었다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가 가능한지 물었던 아도르노의 회의를 기억하는 이라면, 비트겐슈타인과 포퍼는 시대의 고통에서 좀 동떨어진 채 자기들만의 문제에 골몰하는 철학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격돌은 어쩌면 나치가 철저히 말살하려 했던 문화와 정신의 힘이 여전히 펄펄하게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결론 부분에서 현재(출간 당시, 즉 2001년)의 시점으로 돌아와 이제는 그런 격한 토론이 케임브리지나 다른 어느 곳에서든 일어나는 걸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 지적인 급박함의 감정은 사라져버렸다. 관용, 상대주의, 어떤 신념에 헌신하기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던한 태도, 불확실성의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 문화적 흐름, 이 모든 것이 H3호실에서의 불장난이 다시 일어날 수 없게 하는 요인들이다.”(p. 380) 우리는 이 책이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지 11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대체 누가 근원적 문제에 대해 격분하는가? 누가 철학적 논쟁에 흥분하는가? 지적인 열정이란 사라진 세계의 추억일 뿐인가? 저자들은 지적 영웅이 아직 존재할 수 있었던 시대에 대해 담담한 듯하면서도 향수 어린 시선을 보낸다. 비트겐슈타인과 포퍼도 자신들이 ‘사라져버린 중부유럽 문화’의 폐허에 서 있다고 느꼈겠지만, 이제는 그들마저도 사라진 세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나는 새삼 이 구절을 떠올리면서 애도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과연 근원적인 것에 대한 열정 없이 문화가 가능할까? 근대를 특징지었던 부단한 문화적 혁신과 새로운 지적 영웅의 등장, 열렬한 논쟁의 시대는 장기적인 침체와 소강 국면에 자리를 비켜준 것 같은 느낌이다. 새로운 아이폰이 우리 시대가 기다리는 혁신이고, 애플과 삼성의 특허 싸움이 우리 시대의 논쟁이 되었다.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격렬한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김태환
리뷰 남기기
로그인하면 리뷰를 남길 수 있어요.
리뷰 0개
아직 리뷰가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