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문 | 월스트리트로 간 인류학자 처음 월스트리트를 연구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된 때는 1995년 9월 21일이다.1 바로 직전에 에이티앤티는 회사를 세 개로 분리한다고 발표해서 미국 역사상 규모에서 으뜸가는 대기업의 해체를 알렸다. 7만 7800명의 관리자들이 ‘인수 제안’을 받고 4만 8500명의 노동자가 감원됐다. 뉴저지에 살던 나는 감원 때문에 노동자들이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받는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분사 발표 당일에 에이티앤티의 주식이 63.75달러로 6.125포인트 급등한 소식을 듣고 더 놀랐다. 총 가치의 10.6퍼센트가 올라서 97억 달러가 ‘증가’한 셈이다. 그러나 투자 확대와 더불어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사실은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들의 주가 역시 올랐다는 사실이다. 둘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직관적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에이티앤티의 대규모 감원과 주가 급등 사이에 놓인 이런 관계는 유별난 사례가 아니다. 에이티앤티가 구조 조정을 발표한 날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합병과 구조 개편 활동이 증가하고 전자 통신 산업에서 구조 조정이 예상된 시기에 이런 딜을 개시하고 조직하고 조언한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들의 주가 역시 올랐다고 한다. “애널리스트들이 거래량 증가가 지속 가능하며 합병 활동이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공언하면서 증권 회사 주식이 개장 중에 강세 종목으로 꼽혔다”(Sloane 1995). 전자 통신 산업의 선도자인 에이티앤티가 구조 조정과 감원을 하면 다른 기업들도 이런 ‘경제 유행’을 따를 것이고, 그러면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들이 맡을 사업이 많아질 것이라는 가정 아래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와 메릴 린치Merrill Lynch,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주식이 모두 시세를 회복했다(Klein 2000, 199).2 지난 30년 동안 기업계의 풍경과 정리 해고와 기업 이윤, 주가 사이의 관계를 뚜렷하게 특징지은 것은 바로 이런 전도 현상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경제 호황이라고 선언된 시기(1990년대 초~2000년)를 포함하는 이 시기에 경제는 기록적인 기업 이윤과 사상 최장기에 걸친 주가 상승뿐만 아니라 기록적인 감원도 경험했다(O’Sullivan 2000). 시카고의 전직 지원 기업(outplacement firm. 기업의 인수나 합병 또는 구조 조정으로 실직한 노동자에게 컨설팅을 비롯한 지원을 해주고 전직이나 창업 등을 알선하는 기업)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Challenger, Gray, and Christmas는 1994년에 “미국 기업들이 몇 년 동안 최고의 이윤을 기록한 때에” 51만 6000명의 노동자가 감원된 사실을 발견했다. “1995년에는 이윤이 더욱 확대됐는데도 44만 명이 감원됐고, 이윤이 훨씬 많아진 1996년과 1997년에는 각각 44만 7000명과 43만 4000명이 감원됐다”(O’Boyle 1999, 219). 다우존스 산업 평균 지수를 기준으로 미국 주식 시장이 1995년 2월 4000포인트를 약간 웃도는 수준에서 1997년 2월에 7000포인트 이상, 1999년에는 1만 1000포인트로 호황을 누리는 동안, 기업들은 평균 매년 300만 명 이상을 감원해 고용 불안이 고조됐다(Oldham 1999; New York Times 1996). 이렇게 사업을 수행하는 문화 규범의 또 다른 본보기라도 보여주듯이, 1995년에 모빌 코퍼레이션Mobil Corporation은 1년 전에 기록한 1억 4500만 달러라는 손실을 고스란히 역전시키면서 일사분기에 6억 2600만 달러의 전례 없는 수익을 발표하고 바로 일주일 뒤에 4700개의 일자리를 없애는 계획을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은 “이 소식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모빌의 공격적 경영을 극찬했다. 정리 해고 규모가 예상보다 클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미국 내부의 정련과 판매 인력이 포함된 사실에도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월스트리트의 기관 투자자들은 모빌의 주가를 52주 최고가(52주는 주식 시장에서 1년, 52주 최고가는 최근 1년 중 최고가라는 뜻)로 상승시켜 모빌에 보내는 신뢰를 보여줬다(Ritter 1995; Fiorini 1995). 기업의 감원에 관해 월스트리트가 보이는 태도에서 무척 흥미로운 점은 극찬하는 어조, 곧 기업 구조 조정이라는 사실 자체를 향한 환호였다.3 1990년대 중반 내내 많은 경제 기사가 이른바 새로운 ‘정서 구조’를 보여줬다. 에이티앤티의 사례 연구를 계속 살펴보면, 회사를 근본적으로 구조 조정하고 각기 다른 세 회사로 분할한다고 발표해 월스트리트 분석가들의 박수갈채를 받고난 몇 달 뒤인 1996년 1월, 에이티앤티는 앞으로 4년에 걸쳐 4만 개의 일자리를 없앨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을 보자. 이런 감원 규모는 오래전부터 에이티앤티를 관찰한 일부 전문가들까지 놀라게 했다. 에이티앤티의 구조 조정을 신호탄으로 여러 미국 대기업들이 서둘러 전면적인 구조 조정에 나섰고, 이런 추세는 지금도 전혀 꺾이지 않고 있다. 특히 에이티앤티로서 이번 감원 발표는 (옛 벨시스템Bell System 제국이 해체된 뒤 10년 동안 8만 5000명을 감축한 뒤에도) 아직 회사가 지나치게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 샌퍼드 번스타인Sanford Bernstein & Co.의 분석가 블레이크 배스는 “이건 많은 수지요. 아주, 아주 많은 숫자예요”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에서 기대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입니다.” 월스트리트는 에이티앤티의 주가를 어제 2.625달러 올려서 67.375달러로 마감하는 것으로 호응했다(Keller 1996). 실제로 월스트리트는 정리 해고의 규모에 매우 흥분하기 때문에 샐로먼 브라더스Salomon Brothers의 전자 통신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악명 높은 슈퍼스타인 잭 B. 그러브먼(Keller 1996)은 투자자들의 열광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경고했다. “투자자들은 이런 비용 절감으로 수익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에이티앤티는 절감한 비용을 대부분 무선이나 지역 서비스 진출을 가속하는 데 재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브먼은 “이런 진출은 훌륭한 공격적인 움직임이지만 수익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줄어들 것”(Keller 1996)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가까운 장래에 에이티앤티는 주가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훨씬 더 많이 찾아야 했다. 그런데 1996년 3월에 회사는 4만 명을 감축하겠다는 애초의 주장을 철회하면서 1만 8000명‘만’ 정리 해고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이렇게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에이티앤티가 인원 감축을 이윤 증대와 동일시하는 월스트리트에 깊은 인상을 주려고 의도적으로 정리 해고 숫자를 부풀렸다고 말한다. 에이티앤티의 주가는 1월 발표가 있은 뒤 이틀 동안 6퍼센트 가까이 급등했다”(D. Lynch 1996, 강조는 덧붙임). 이윤 축적 욕망은 확실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지만, 최근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뚜렷하게 독특한 점은 기업에 최선의 이익이라고 간주되는 것과 대다수 직원들에게 이익이라고 간주되는 것이 완전히 분리된다는 사실이다.4 25년 전만 해도 미국의 공개 법인 기업은 주로 재화와 용역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직원에서 주주에 이르는 여러 구성원과 교섭하는 일을 책임지는 견고한 사회적 기관으로 간주됐으며, 당장 투자 수익을 내놓으라는 월스트리트의 단기적 금융 기대를 넘어서 장기적인 시간 틀에 따라 평가를 받았다(O’Sullivan 2000).5 이것과 대조적으로 오늘날 기업의 주된 사명은 ‘진짜 소유자들’, 곧 주주들을 위해 주가를 올리는 것(요컨대 주주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기업의 핵심 목표 바깥에 있는 피고용인들은 주가를 높이는 목적 때문이라면 언제라도 정리돼야 한다. 2차 대전 뒤 복지 자본주의의 여러 가정 아래 노동자들이 기업 수입 중에서 자신들의 (불공정한) 몫을 주장하며 싸우고 때로 얻어낸 반면, 오늘날은 이런 자본주의의 전통적인 위계조차 대부분 없어졌다. 그 결과 기업이 이익을 봐도 직원들은 종종 혜택을 전혀 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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