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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이원백 교수를 통해서 본 조선족 지식층의 삶

물리학자 이원백 교수를 통해서 본 조선족 지식층의 삶

여필순

(도서출판)책과세계·2013-06-30

  • 사회과학
  • KDC 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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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머 리 말 이원백(李沅柏) 교수는 연변대학교 물리학과 제1기 학부 졸업생으로 제일 처음 북경대학교 대학원생으로 추천을 받았습니다. 연변대학교는 중국 국내 민족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으로 세워졌는데 1952년 가을, 보다 뛰어난 자연과학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물리학과와 화학학과 졸업생 가운데서 각각 2명씩 선발하여 북경대학교 대학원생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품행이나 자질 및 학업 성적이 뛰어나야만 하였습니다. 이원백 교수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곧 북경대학교 교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원백 교수는 커다란 사명감을 안고 중국어와 영어를 익혔고 그 기초 위에서 전공 분야를 연찬(硏鑽)해 마침내 "면심입방정AB형합금(面心立方晶AB型合金)의 통계이론"이라는 졸업논문을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왕주시(王竹溪)교수를 비롯한 중국 물리학계 대가들 - 쩌우페왠(周培源),양쩐닝(杨振宁),황쿤(黄昆),쩌우꽝조우(周光召) 등 교수들과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도모나가 신이찌로(朝永镇一郎)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일본 물리학자대표단이 북경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들과 친분을 맺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맺은 인연은 오랜 세월 변함이 없었고 이원백 교수가 물리학과의 중임을 맡고 일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원백 교수는 연변대학교 물리학과 발전을 위해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1957년 연변대학교에 돌아온 이원백 교수는 이론물리 강좌주임(학과장)으로부터 수학물리학과 부주임(부학과장), 주임대리, 물리학과 주임(학과장) 등 중책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는 학과의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국내외 명문대학교와 교류했고 자신의 모교인 북경대학교,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 등을 방문해 그들의 선진 경험을 학습하였습니다. 또한 일본 "도쿄대학교", "교토대학교", "나고야대학교" 교육프로그램을 도입시켜 깊이 연구하면서 대학교 교육 개혁을 적극 추진하였습니다. 1984년 중국교육부와 물리학과에서 공동 주최하는 "전국 물리교수 개혁에 관한 전문토론회"에서 "일본의 몇 개 중점대학교(명문대학교)의 물리교수계획과 그에 따른 몇 가지 인식"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그 후 "물리학 인재 양성에 관한 연구","무질서의 세계와 물리학" 등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구업적을 쌓았기에 그는 전국교학(교수)연구회 위원, 물리학보급위원회 위원으로 초빙되었으며 일찍 1978년 8월 중국물리학회 제2기 이사로 선출되었습니다. 이원백 교수는 학과 발전에 있어서 짙은 학술적 분위기를 조성해 후배들이 학술연구를 하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는 학술연구에서 언제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대학원 졸업논문에 기초해 "이원합금의 초점진(二元合金超点阵) 이론"을 내놓았으며 "열역학(热力学)과 통계물리학", "고체물리학", "양자통계물리학" 등 교과서를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중국교육부에서 위임한 열역학과 통계물리학 편선위원회 위원으로서 1982년 고등교육출판사의 위탁을 받고 정철수 교수와 함께 소련(러시아) 주바레브의 《비평형통계열역학》(38만자, 고등교육출판사, 1984년)을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1979년 연변대학교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학술보고회를 개최하여 젊은 교원(교사)들의 학술 열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무렵 그는 물리학의 새로운 연구영역으로 되는 논문 "속력 평형과 모산(速力平衡耗散)"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원백 교수의 이러한 노력과 성과로 1979년 물리학과에서 석사대학원 학위점을 설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원백 교수는 1990년 정년퇴임을 하였지만 학술연구에 게으르지 않았고 6년간 연변대학교의 감독(督学)으로, 사범대학의 감독팀(督导组)에서 교수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열성을 다 바쳐 일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년퇴임을 한 교수들의 건강을 위해 7년 간 연변대학교 "노인테니스협회" 회장으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1998년 5월 그는 연변 테니스의 과거와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장백산기슭의 테니스 열"이라는 글을 집필해 중국 국내 유명한 잡지 "테니스천지"에 발표하였습니다. 물론 본인의 건강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데 "가정 의사 신문"을 구독하고 있으며 매일 오전 50분정도 테니스 운동을 열심히 한 결과 해마다 개근생으로 꼽히곤 하였습니다. 또한 쪼우부추(赵补初) 어르신의 관심요("宽心谣")를 좌우명으로 삼아 언제나 여유작작한 이원백 교수의 모습이 참 부럽습니다. 이원백 교수의 부인 이증숙 교수도 연변대학교의 엘리트 여성인데 이들 부부는 참으로 금슬이 좋은 천생배필이라 동네에서도 '원앙새 부부',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북경대학교 대학원 시절에 만나 함께 연변대학교에 돌아와서 결혼하고 정년까지 민족교육과 과학연구 사업에 온갖 정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증숙 교수는 수학학과에서 학과장으로 일했는데 연변대학교의 여걸(女杰)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증숙 교수는 "전국 3.8 홍기수(紅旗手)"로 되었고 일찍 1988년 부부 동반으로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중국 조선족 과학기술연구자들 가운데 최고의 엘리트 중 한명이라 할 수 있는 전 연변대학교 교수이자 현재도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이원백 교수와 그 가족의 생애사입니다. 경북대학교 SSK 다문화와 디아스포라연구단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 3월 연구단의 공동연구자 중 일원인 연변대학교 여필순 연구원이 수차례 이원백 교수와의 면담을 거쳐 이루어졌고 이원백 교수의 기억과 회억록에 남아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 책자로 엮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서술된 사건과 인물들은 모두 진실하며 또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복적인 확인과 조사를 거쳤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이원백 교수와 그 가족의 생애를 통해 한 중국 조선족지식인의 개인체험을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중국 조선족 모두의 현대사체험으로 확장될수 있도록 그들이 겪은 곡절많은 운명을 다소나마 보여주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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