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서 문 경북대학교 ‘SSK다문화와 디아스포라연구단’에서는 지난 2012년 1차 조사에 이어 2014년 2월 4일부터 13일까지 9박 10일간 길림성 연변과 요녕성 심양, 단동지역의 조선족에 대한 2차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이 시기는 한겨울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때여서 한국에서도 수은주는 영하 10도를 오르내렸다. 동북3성 지역은 위도상으로 한국보다 훨씬 더 북쪽에 위치하여 영하 20도를 웃돌았다. 조사단은 떠나기 전부터 매서운 추위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마음을 졸이면서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준비물도 두터운 외투를 비롯하여 내의, 장갑, 모자, 마스크, 목도리 등 추위에 적응하기 위한 물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현지조사는 지난 1차 때처럼 연변대학과의 공동 제학술대회를 겸한 여정이었다. 귀중한 국민의 혈세를 연구비로 받아가는 만큼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번 현지조사 일정은 ‘출국 및 심양 1차 조사(4일) → 국제학술대회(5일) → 연변 조사(6-10일) → 심양 2차 조사(11일) → 단동 조사(12일) → 심양 3차 조사 및 귀국(13일)’ 순으로 짜여졌다. 이번 현지조사를 통해서는 2012년의 1차 조사를 보완하면서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두만강과 압록강의 북한ㆍ중국 접경지 조선족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다. 연구진은 빡빡한 조사 일정 속에서도 매일매일 일과 후 시간을 이용하여 숙소에서 당일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거나 다음 날의 조사계획을 수립하느라 자정을 넘기곤 했다. 현지조사지에서는 매일 여러 종류의 자료들이 생산되므로 조사당일 자료를 정리하지 않으면 녹음 파일과 사진 등이 섞바뀌므로 나중에 애를 먹기도 한다. 따라서 수집된 구술 및 사진자료 등에 대해 면담 일자와 구술자를 적시한 파일번호를 붙이고, 관련 내용을 설명해두어야 한다. 그날의 연구 일정을 포함하는 조사 내용을 개략적인 형태로나마 ‘필드일기(field diary)’라도 써두면 조사 후의 전체적인 자료 정리과정에서 여러모로 유리하다. 특히 매일 사진기와 녹음기 등 조사장비를 사용해야 하므로 이의 손ㆍ망실 혹은 기기 조작의 잘못 등으로 애써 수집한 자료를 통째로 분실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책으로서도 유효하다. 연구진은 매일 저녁마다 노트북에다 그날 수집한 자료를 옮겨 정리하고 현지조사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다. 대구에서 새벽 밤차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를 타고 경유지인 요녕성 심양(瀋陽)공항에 내리니 오전 10시가 가까웠다. 우선 조선족 밀집구역 중의 한곳인 서탑(西塔)지구 경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일제 강점 무렵 조선인의 망명지가 되면서 서서히 ‘심양 코리아타운’으로 성장했다. 서탑이라는 지명은 심양 고성(古城)의 서쪽에 탑이 우뚝 세워져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 지금도 서탑지구 내의 호국연수사(護國延壽寺) 경내에는 10여m 높이의 큰 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연구진은 점심 후 한차례 더 서탑지구 경관을 둘러본 후 오후 3시 50분 심양역에서 연길(延吉)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요녕성에서 길림성 경계를 넘으면서 밤새도록 15시간이나 달려 다음 날(5일) 아침 7시쯤 연길역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마중을 나온 연변대학의 공동연구원을 만나 역전에서 된장찌개로 아침을 먹었다. 이어 연변대학 부근의 나경호텔에 여장을 풀고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국제학술대회는 오후 2시부터여서 연구진은 연길에서 가장 큰 조선족 전통시장인 서시장(西市場)을 찾아 민초들의 삶의 현장을 관찰했다. 약초상과 잎담배가게, 곡물가게, 떡과 과자, 빵가게 등 낮 익은 물품들이 즐비했다. 추운 날씨에도 길가에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아낙네의 모습에서 조선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설 연휴여서 그런지 문을 열지 않은 점포들도 많았다. 연변대학에서 본 연구단과 공동으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는 2012년에 이어 두 번째로서, 3명의 학자들은 조선족의 대이동에 따른 교육 및 학교 통폐합 문제, 청소년의 한국 드라마 시청과 우상 숭배 등의 내용을 발표했다. 본 연구단에서는 중앙아시아 아랄해 인근 고려인의 삶, 조선족 디아스포라 구술생애사 연구 현황과 방법론, 연변 조선족 이승락의 삶을 통해 본 이주와 적응 등에 대해 발표했다. 연구진은 2월 6일부터 본격적으로 두만강 접경지역의 조선족을 찾아 나섰다. 한겨울 추위여서 사방은 눈으로 뒤덮였고, 음지의 길바닥은 얼어붙어 미끄러웠다. 3일간에 걸쳐 삼합진 수북촌(청수동)과 백금향 용신촌, 지신진 승지촌, 노두구촌 동서촌 등의 마을들을 차례로 방문하여 조선족의 이주와 적응, 생활사에 대한 구술자료를 수집했다. 2회에 걸쳐서는 연길시의 최대 전통시장인 서시장(西市場)을 찾아 조선족의 상업활동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야기로 듣고 눈으로 관찰한 조선족의 생활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연변민속박물관도 방문하였다. 구술생애사는 한 개인이 출생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생애를 기억의 환기를 통해 구술로 정리한 것을 말한다. 이는 이주지 주류사회로부터 배제되고 공식 역사에서 누락된 이주민의 생활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론 중의 하나이다. 특히 한 세기 반의 이주 역사를 지닌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이주와 적응, 생활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연구방법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서는 구술자 개인의 삶의 역사를 스스로의 시각과 관점에서 말하게 함으로써 조선족의 이주와 정착, 적응과정을 비롯하여 생활문화 양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른바 개개인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매개로 조선족의 전체를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연구진은 현지조사과정에서 남녀 두 원로 조선족의 생애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지난 2002년 연구단의 1차 재외한인 현지조사 과정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람들로서 구술생애사 기록은 보완 연구의 성격도 지닌다. 한 사람은 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73세의 최정걸 선생으로 1차 현지조사 시에 노인회관에서 집단면담 과정을 통해 생애사 일부가 채록되었다. 다른 한 사람은 1남 5녀의 자녀를 낳아 기른 조선족의 전형적인 어머니로서 북한에서도 수년간 살다온 83세의 박옥련 여사이다. 그녀에 대해서는 1차 현지조사 때 직접적인 구술은 받지 못했지만, 생애에 대한 단서를 상당 부분 공유하는 두 남동생의 구술이 채록된 바 있다. 두 분의 구술자들을 통해서는 조선족 사회의 교육체계와 전문직 교육자로의 생활모습 및 조선족 여성으로서의 삶과 관련 생활사를 이해하고자 했다. 본서의 주인공인 박옥련 여사(1932년생)는 이와 같은 일련의 연구과정에서 구술생애사 기록 대상자로 채택되었다. 연구진은 2월 8~10일 사이에 몇 차례에 걸쳐 연변대학 사무실과 자택 혹은 자녀들의 집을 오가며 구술자들과 만났다. 때로는 모든 연구진이 함께 구술자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연구진이 분리되어 상이한 공간에서 개별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박옥련 여사의 삶에 대한 면담은 네 모녀를 대상으로 총 5회에 걸쳐 실시되었다. 1차면담은 용정시의 차녀 집에서 약 3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면담 과정에는 장녀(64세)와 차녀(62세), 4녀(52세) 등 3명의 딸들이 함께 함으로써 구술자의 기억을 많이 보완해주었다. 박옥련 여사는 할아버지가 1909년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길림성 용정으로 이주하여 정착했으므로 조선족 2세대에 속한다. 그녀는 1932년 용정시 석정향 화전자촌에서 3남 4녀의 장녀로 태어나 해방 직전(1944년)에는 조양천 광석촌으로 이사했다. 19세(1950년)에는 두 살 위의 철로공민 여귀봉과 결혼하여 조양천 중심촌으로 옮겨와 살았다. 1963년에는 북한(평남 명천군)으로 가서 2년간 살기도 했다. 특히 북한에서 살기가 힘들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몰래 중국으로 되돌아오는 한겨울의 고행길 이야기는 진한 모성애와 조선족 여인의 강인함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길림성 돈화시에서 오래 동안 살다가 늘그막에 연길시로 이사하여 외손자를 돌보기도 하면서 4녀와 함께 지금까지 살고 있다. 2~4차면담은 2월 9일에 모두 실시됐다. 2차면담은 2014년 2월 9일 오전 조사마을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4녀를 대상으로 어머니의 삶에 대한 기억을 보완하는 형식으로 실시됐다. 3차면담은 구술자의 자택에서 생애사를 보완하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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