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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유역의 조선족 구술생활사

두만강 유역의 조선족 구술생활사

박경용, 이채문, 여필순

(도서출판)책과세계·2014-06-30

  • 사회과학
  • KDC 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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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서 문 연구단에서는 지난 2012년 1차 조사에 이어 2014년 2월 4일부터 13일까지 9박 10일간 길림성 연변과 요녕성 심양, 단동지역의 조선족 2차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이 시기는 한겨울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때여서 한국에서도 수은주는 영하 10도를 오르내렸다. 동북3성 지역은 위도상으로 한국보다 훨씬 더 북쪽에 위치하여 영하 20도를 웃돌았다. 조사단은 떠나기 전부터 매서운 추위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마음을 졸이면서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준비물도 두터운 외투를 비롯하여 내의, 장갑, 모자, 마스크, 목도리 등 추위에 적응하기 위한 물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국제학술대회를 겸한 현지조사 여정 이번 현지조사는 지난 1차 때처럼 연변대학과의 공동 제학술대회를 겸한 여정이었다. 귀중한 국민의 혈세를 연구비로 받아가는 만큼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번 현지조사 일정은 ‘출국 및 심양 1차 조사(4일) → 국제학술대회(5일) → 연변 조사(6-10일) → 심양 2차 조사(11일) → 단동 조사(12일) → 심양 3차 조사 및 귀국(13일)’ 순으로 짜여졌다. 이번 현지조사를 통해서는 2012년의 1차 조사를 보완하면서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두만강과 압록강의 북한ㆍ중국 접경지 조선족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다. 연구진은 빡빡한 조사 일정 속에서도 매일매일 일과 후 시간을 이용하여 숙소에서 당일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거나 다음 날의 조사계획을 수립하느라 자정을 넘기곤 했다. 현지조사지에서는 매일 여러 종류의 자료들이 생산되므로 조사당일 자료를 정리하지 않으면 녹음 파일과 사진 등이 섞바뀌므로 나중에 애를 먹기도 한다. 따라서 수집된 구술 및 사진자료 등에 대해 면담 일자와 구술자를 적시한 파일번호를 붙이고, 관련 내용을 설명해두어야 한다. 그날의 연구 일정을 포함하는 조사 내용을 개략적인 형태로나마 ‘필드일기(field diary)’라도 써두면 조사 후의 전체적인 자료 정리과정에서 여러모로 유리하다. 특히 매일 사진기와 녹음기 등 조사장비를 사용해야 하므로 이의 손ㆍ망실 혹은 기기 조작의 잘못 등으로 애써 수집한 자료를 통째로 분실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책으로서도 유효하다. 연구진은 매일 저녁마다 노트북에다 그날 수집한 자료를 옮겨 정리하고 현지조사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다. 대구에서 새벽 밤차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를 타고 경유지인 요녕성 심양(瀋陽)공항에 내리니 오전 10시가 가까웠다. 우선 조선족 밀집구역 중의 한곳인 서탑(西塔)지구 경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일제 강점 무렵 조선인의 망명지가 되면서 서서히 ‘심양 코리아타운’으로 성장했다. 서탑이라는 지명은 심양 고성(古城)의 서쪽에 탑이 우뚝 세워져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 지금도 서탑지구 내의 호국연수사(護國延壽寺) 경내에는 10여m 높이의 큰 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연구진은 점심 후 한차례 더 서탑지구 경관을 둘러본 후 오후 3시 50분 심양역에서 연길(延吉)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요녕성에서 길림성 경계를 넘으면서 밤새도록 15시간이나 달려 다음 날(5일) 아침 7시쯤 연길역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마중을 나온 연변대학의 공동연구자를 만나 역전에서 된장찌개로 아침을 먹었다. 이어 연변대학 부근의 나경호텔에 여장을 풀고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국제학술대회는 오후 2시부터여서 연구진은 연길에서 가장 큰 조선족 전통시장인 서시장(西市場)을 찾아 민초들의 삶의 현장을 관찰했다. 약초상과 잎담배가게, 곡물가게, 떡과 과자, 빵가게 등 낮 익은 물품들이 즐비했다. 추운 날씨에도 길가에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아낙네의 모습에서 조선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설 연휴여서 그런지 문을 열지 않은 점포들도 많았다. 연변대학에서 본 연구단과 공동으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는 2012년에 이어 두 번째로서, 3명의 학자들이 조선족의 대이동에 따른 교육 및 학교 통폐합 문제, 청소년의 한국 드라마 시청과 우상 숭배 등의 주제로 발표해주셨다. 본 연구단에서는 중앙아시아 아랄해 인근 고려인의 삶, 조선족 디아스포라 구술생애사 연구 현황과 방법론, 연변 조선족 이승락의 삶을 통해 본 이주와 적응 등에 대해 발표했다. 3시간에 걸친 학술 토론 후에는 조선족이 즐겨 찾는 보신탕 전문점 매화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두만강 유역은 조선족 이주 1번지 의 한 권인 에 따르면, 조선족 이주사는 약 300년이 되고 본격적으로 정착한지는 200여 년이 된다. 1677년 청나라 조정의 봉금령(封禁令)에도 불구하고, 살길을 찾아 끊임없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었다. 이로 인해 청나라와 조선 간에는 외교 분쟁까지 발생했는데, 1845년 봉금령이 좀 풀리면서 강을 건너는 조선인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아침에 강을 건너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갔다가 후에는 봄에 왔다가 가을에 귀향하고, 나중에는 아예 가족을 이끌고 와서 집을 짓고 장기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말은 두만강 유역 주민들의 이주 역사를 압축적으로 말해준다. 청나라 봉금령이 있을 당시에는 강을 건너다가 잡히면 ‘월강죄(越江罪)’로 엄벌에 처해졌다. “… 월편에 나붓기는 갈대잎 가지로 / 애타는 내 가슴을 불러야 보건만 / 이 몸이 건너면 월경죄란다 … ”라는 ‘월강곡(越江曲)’ 민요는 당시 두만강 유역 주민들의 애환을 말해준다. 백두산 아래 첫 동네인 화룡시 숭선진으로부터 훈춘시 경신진에 이르는 두만강 유역은 80여 만 명의 조선족이 거주하는 조선 이주민의 ‘이주1번지’로 일컬어진다. 동시에 일제 강점기에는 우국지사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일제에 대항하였으므로 ‘항일, 독립투쟁의 1번지’로도 통한다. 두만강 유역의 주요 이주 거점으로는 조선의 경우 군사적 요충지였던 무산, 회령, 종성, 온성, 경흥, 경원 등 이른바 6진 지역이며, 중국 쪽으로는 화룡시 숭선진(대동촌)으로부터 용정시 백금향(입신촌), 삼합진(북흥촌), 개산툰(선구촌, 광소촌), 도문시 월청진, 양수진, 훈춘시 밀강향, 삼가자향(사토자촌), 반석진, 경신진(회룡봉촌, 금당촌, 방천촌) 등이다. 1860년대~1870년대를 전후하여 두만강 유역으로 조선족 이주가 급격하게 증가한 계기는 청의 봉금령 해제와 조선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미증유의 큰 자연재해 때문이었다. 청은 러시아의 남진정책으로 두만강 북부지역을 지키기가 어렵게 되자 조선족 이주를 허락하여 일대를 지키도록 했다. 특히 두만강 유역에 덮친 기사년(1869년)의 대기근은 유사 이래 겪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해동시기부터 여름이 끝날 때까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굶어죽는 이가 속출했으며, “기사년에 굶은 아이 같다“는 말도 이때 생겨났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두만강 유역 주민들은 살길을 찾아 너도나도 강을 건넜다.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船口)촌의 간도(間島)섬 유래는 조선족 이주와 관련한 중요한 미시사적 함의를 갖는다. 두만강 강바닥의 간도는 길이 4,500m와 폭 500m의 모래섬으로 1878년 무렵 조선의 종성 농민들이 이곳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곳을 통해 중국으로 내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나루터는 마을로 변하고 조선-중국 간 주요 교역창구로 발전했다. 특히 ‘두만강(豆滿江)’이라는 명칭이 당시 콩을 수출하는 배가 일대의 강기슭에 가득했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회자된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강을 건넌 조선족들은 황무지를 개척하고 마을을 일궈나감으로써 두만강 기슭 곳곳에다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을 맞아 간행한 에 따르면, 1886년 훈춘 일대만 해도 조선인은 2,350세대에 1만 2,490명에 달했다. 이처럼 두만강 유역의 조선족 이주는 처음에는 농업이민으로부터 시작하여 한일 합방 이후에는 항일운동과 일제의 만주개발을 위한 강제동원 등 정치적 이유로 계속 그 수가 증가했다. 조선족은 1910년대에 20-30만 명이다가 1945년 광복 무렵에는 160~200만명에 이르렀다. 두만강 북ㆍ중 국경과 맞댄 삼합진 수북촌 현지조사 첫날인 6일, 아침을 빵과 된장국으로 먹은 후 두만강 국경지역 조선족 마을인 삼합진(三合津) 수북촌(水北村)을 방문했다. 연길시에서 20여 분을 달리니 용정(龍井) 시가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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