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서 문 세계의 한민족 가운데 재일한인은 그 형성배경과 정착과정에 있어서 일본 식민제국의 한반도 침탈과정의 결과 식민 종주국에서 형성된 한인디아스포라라는 점에서 다른 해외한인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피지배 소수민족으로서의 삶을 영위해 가는 가운데 겪게 되는 정치적, 사회적인 배제는 자연스럽게 민족의 권익을 보호,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성격의 민족조직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때로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변화하면서도 민족전통의 뿌리를 이어가고 있는 관혼상제의 풍습은 한반도의 한민족과는 또 다른 민족정체성의 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일한인 사회는 현재 2세와 3세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4세까지 등장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재일한인 인구의 감소가 지적되고 있으나, 이는 정확하게는 일본국적 취득(귀화), 일본인과의 혼인증가로 인한 자녀들의 일본국적화 등으로 인한 한국/조선적 인구수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제는 재일한인의 범주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를 생각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경북대학교 SSK 다문화와 디아스포라연구단에서는 2011년부터 아시아, 특히 일본과 중국,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재외한인들의 삶을 기록하여 왔다. 일반민중의 삶을 통하여 재외한인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하는 목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본 연구의 성과물은 「재외한인 구술사 총서」로 출간하고 있다. 본서는 그 중 19번째 결과물로서 일본의 대표적인 재일한인 거주지역인 오사카에서 거주하고 있는 재일한인의 삶에 대한 「일본 오사카 지역 재일한인의 구술생활사」에 이은 두 번째 기록물이다. 첫 번째 기록물에서와 마찬가지로 연구자는 재외한인들의 삶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일본에서 정착하게 된 배경과 삶의 과정,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의 유지를 위한 노력과 갈등, 민족적 관습의 유지에 특히 중점을 두었다. 연구자와 만난 6명은 모두 재일한인으로서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활동해왔다는 점에 공통성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재일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일본에 살고 있는 한인으로서,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과는 다른 자신들을 의미하는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성이 있다. ‘자이니치’라는 용어는 젊은 재일동포 세대들이 자신들의 주체를 나타내는 호칭으로서 197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용어가 포함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와 경향 가운데 하나의 공통된 성향이라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종래의 강한 ‘조국’ 지향적 의식에서 탈피하여 재일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로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인데, 이는 다시 말하면 고국과 그리고 고국의 동포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일본인과도 다른,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 후 재일 동포 1세는 주로 육체노동에 종사하면서 고국으로의 금의환향을 꿈꾸었고, 민족적인 관습과 예절을 소중히 지켜왔다. 그리고 일본 사회 내에서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도 조금씩 향상되었고, 차츰 일본에서의 정착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일본학교에 다니고 일본어를 모어로서 사용하는 자신들이지만, 일본사회에 그대로 수용되고 동화되어 갈 수도 없다는 엄연한 현실이 있고, 또한 모국의 한국인과의 접촉에서는 또 다른 이질성을 느끼면서 자연히 생성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정체성의 발견, 그것을 ‘자이니치’라는 하나의 고유명사화한 개념으로서 정립시키게 된 것이다. 재일한인 문학가 이양지는 그의 소설 『유희』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모국어과 모어와의 갈등,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사이에서의 갈등 등 결국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용기와 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 속의 일본을 부정하고 한국인이 되고 싶어서 용기 있게 한국 유학행을 선택했으나 쉽게 한국인도 될 수 없는 상태에서 내적인 갈등을 겪고 있던 이양지가 도달한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하나인 것처럼 사랑한다」는 의미는 첨예한 역사적 갈등 관계 속에서 집단적 대립과 증오감 또는 우월감과 열등감이라는 심리적 갈등을 겪어온 재일한인들이 도달한 궁극적인 정신적 자세로 볼 수 있다. 연구자가 만난 6명의 가족들의 이야기에서는 일본에서의 소수자로서 살아갔던 1세와 2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국과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뇌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 ‘자이니치’란 누구인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본서에서는 의도적으로 재일한인/재일동포라는 용어보다는 ‘자이니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6명의 ‘자이니치’가 자신의 조국과 민족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겪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경험 가운데에는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정치적 이슈들과 사회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으며, 가족과 본인들이 겪었던 일본에서의 경험에서는 전후 일본의 정치와 사회상의 단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본서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사지역의 지역적 특성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사카시(大阪市)의 이쿠노구(生野区) 츠루하시(鶴橋)는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더욱 유명해진 ‘코리아 타운’이 있는 상업지역이며, 이카이노(猪飼野)는 제조업 중에서도 특히 재일한인사업 중 하나로 알려진 ‘햅븐 샌들’의 제조업이 성행했던 곳이다. ‘햅븐 샌들’의 제조과정은 단순작업의 저임금 노동력이 요구되면서 호흡기질환을 발생시킬 수 있는 유해물질을 사용해야한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이기도 하다. 한편, 오사카부(大阪府) 야오시(八尾市)는 아직까지 잔존하는 일본의 피차별 부락으로서, 부락민들의 부락해방운동과 함께 자이니치 청년들을 중심으로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자이니치 청년들이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탄생한 것이 ‘돗가비’이다. ‘부락’과 ‘돗가비’에 대해서는 재외한인 구술사 총서 14편, 「일본 오사카 지역 재일한인의 구술생활사」에도 상세히 언급하고 있으나 본서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부록으로 다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재일한인 구술사 총서의 마무리 작업으로서 ‘재일한인사회의 형성배경과 현황’을 부록에 추가함으로서 재일한인에 대한 이해를 도우고자 했다. 모쪼록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오사카의 평범한 자이니치들의 삶의 이야기 안에서 그들의 삶의 역사와 민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2016년 4월 경북대학교 SSK다문화와 디아스포라 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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