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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검단 당하동 유적

인천 검단 당하동 유적

執筆·編輯者: 소상영, 안성민, 조남빈, 박유정, 변지현, 임다경, 정우진

忠淸文化財硏究院·2018-05-10

  • 982쪽
  • 210×297mm
  • 역사
  • KDC 9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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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보고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 인천지역본부와 인천도시공사가 시행하는 인천 검단택지개발사업부 지중 V지점에 대한 발굴보고서이다. 표본 및 시굴조사는 426,025㎡에 대해 실시하였으며 발굴조사는 유적이 확인된 15개 지역 139,018㎡를 대상으로 하였다. 조사결과 아산 제2테크노밸리 조성사업부지내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보고서이다. 조사결과 청동기~조선시대에 걸쳐 664기(시대미상 포함)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시대별 주요유구의 조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청동기시대 유구는 주거지 163기, 수혈유구 7기, 환호1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수혈은 Ⅰ, Ⅲ, Ⅳ, Ⅴ지역의 구릉상에서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배치되어 있으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과 세장방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출토유물과 방사성성탄소연대로 볼 때 청동기시대 전기전반에서 후기 초반(기원전 13세기후반~8세기전반)걸쳐 장기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0세기 전·중반에서 8세기 전반이 중심시기인 것으로 판단된다. 환호는 출토유물이 무문토기 1점에 불과해 시기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평면 형태와 규모 입지 등으로 볼 때 의례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삼국시대 유구는 분구묘 8기를 비롯해 비롯해 수혈유구와 구상유구 등 모두 14기가 조사되었다. 분구묘의 형태와 출토유물로 볼 때 3~4세기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 유구는 와요 6기를 비롯해 모두 14기가 조사되었다. 와요에서는 주로 암키와가 출토되었는데 중판타날판과 장판 타날판으로 타날된 시문이 공존하는 것으로 볼 때 9세기 중반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시대 유구는 토광묘 4기가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이 많지 않아 정확한 시기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청동숟가락과 토기의 형태로 볼 때 고려중기 후반에서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유구는 201기가 조사되어 이 유적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시대미상으로 분류된 유구258기 대부분이 조선시대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본다면 전체유구의 70%에 달한다. 유구의 종류도 생활유구, 생산유구, 매장유구 등이 다양하게 조사되어 앞으로 이 지역 조선시대 생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으로 인천 검단 당하동 유적의의 조사결과를 주요유구와 유물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본 유적 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청동기시대 취락이다. 조사된 주거지만 163기로 단일 유적으로는 최대규 모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조사중인 인천 검단택지개발지구내 다른 지역에서 조사된 주거지까지 합치면 200기를 크게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조성시기도 청동기시대 전기전반에서 후기초반에 이르는 긴 시기로 이 지역 청동기시대 편년과 문화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형태를 알수 있는 토기가 거의 출토되지 않아 본문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중구연토기에 새겨진 문양, 긴 장주형의 반월형석도, 석검의 형태등으로 볼 때 팽이형토기문화권의 영향이 보이는 점도 특기할 만한 점이다. 앞으로 인접한 김포양촌 유적 등의 자료 등과 종합하여 연구한다면 이 지역 청동기문화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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