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민병도 제3시조평론집 (아래 제목대로 확정할 것) 비정형의 정형화 차례 ? 지은이의 말 제1부 직관直觀의 시학, 혹은 통찰通察에 이르는 길 개작과정을 통해서 본 이호우의 시정신 / 이호우 소외疏外에 대한 응시凝視, 혹은 상생의 미학 / 이상범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를 향한 생명의 삯바느질 / 황다연 왜 시조인가에 대한 향기로운 대답 / 조동화 직관의 시학, 혹은 통찰에 이르는 길 / 노중석 신지리 귀거래사, 혹은 추錘가 없는 저울질 / 리강룡 자기 치유로서의 모성애적 세상읽기 / 정현숙 추錘가 없는 저울질, 혹은 못다 부른 노래 / 하주용 제2부 자아를 찾아가는 탐구의 시학詩學 최면催眠, 혹은 마음이 비치는 청동거울 닦기 -이솔희 시집 『겨울 청령포』작품해설 자아를 찾아가는 탐구의 詩學 / 김미정 -시집 『고요한 둘레』 작품해설 자연을 통한 자아의 발견과 세상과의 화해 -이석래 시집 『다시 듣는 사계의 노래』 작품해설 유년에 대한 향수와 문명 비판적 세상 읽기 - 김술곤 시집 『수몰 저쪽』 작품해설 감사와 화해, 그리고 성찰의 시 -최재남 시조집 『바람의 근성』 작품해설 거듭나기, 혹은 화해를 위한 거울 닦기 / 김진숙 -『미스킴라일락』 작품해설 잃어버린 시간과의 화해, 또는 자아의 실현 -김분조 시집 『새벽길』 작품해설 마음의 길 닦기, 혹은 찬물의 시 -성국희 시조집 『꽃의 문장』 작품해설 자존심 내려놓기와 흔들리는 풀꽃 읽기 -조정희 동시조집 『발로 읽는 글씨』 - 작품해설 시간의 저울에 얹힌 견고한 질문 -박종구 시조집 『질경이의 노래』 작품해설 제3부 우리가 지켜야할 ‘시조’는 어떤 것인가 일본 민족시기행에서 얻은 교훈 이 필요하다 시조의 거장巨匠을 기다리며 시인은 다 어디 갔는가 시조는 지금 안녕하신가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우리가 지켜야할 ‘시조’는 어떤 것인가 다시 새로운 길을 나서며 쓰는 동시조에서 읽는 동시조로 시를 위한 낭송, 낭송을 위한 시 제4부 현대시조, 그 반성적 진단 현대시조, 그 반성적 진단 제4의 물결 앞에 놓인 민족시의 위상 현대시조의 연금술사, 이호우의 삶 대구예술의 힘 -시조의 도시, 대구시조의 발자취 해독 못한 혈서처럼 슬픔너머 피는 ‘참꽃’ -내가 읽은 나의 시(1) 광장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역사 -내가 읽은 나의 시(2) 영혼을 움직이게 할 시조를 기대하며 경계해야할 아마추어적 안이함 ? 지은이의 말 (2쪽으로 편집) 다시 세 번째 시조평론집을 묶는다. 종이나 축낼 뿐인 독후감 수준의 글인 줄 알면서도 딱히 다른 이름을 붙일 수가 없어 평론집이라고 묶자하니 변명이 궁색하기만 하다. 다만 책의 제목처럼 ‘비정형의 정형화’에 공감해온 지난 사고思考들의 편린을 한 데 모음으로써 생각의 건강성을 진단하고 내일의 길라잡이로 활용하고자 함이다. 1부와 2부의 원고들은 청탁에 의한 각종 시조집의 작품해설들이며 3부는 여러 지면에 섰던 권두칼럼들이다. 그리고 4부의 원고는 세미나 발제원고, 자작시 해설, 월평들로 모두 제2시조평론집을 발간한 2010년 이후의 원고들이다. 시조의 생명력은 일반적 논리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그것은 시조의 생명력인 형식 인식에서부터 ‘비정형의 정형화’라는 독창적인 질서를 구축함으로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진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시조에 대한 이해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아직도 보편적 논리구조로 접근하는 많은 평론가들에게 시조는 기피대상이다. 1958년 5월에 발간된 《현대문학》 특집에는 18명의 시조작품과 함께 이라는 설문이 실렸는데 시조시인을 제외한 유력 문학인, 평론가 16명의 견해가 반영되어 있다. 여기서 박종화, 이희승, 김규동, 양주동, 황순원, 김동리 등은 긍정적인 견해를 밝힌 반면 이능우, 정태용, 김양수, 김우종, 정창범, 조윤제 등은 부활에 부정적이었다. 창작을 겸하지 않는 평론가들은 대체적으로 에 부정적이었고 창작문학인들의 경우는 ‘현대성’이라는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자그마치 58년 전의 문제제기이자 예측이었다. 과연 오늘의 시조는 어떠한가. 평론가들의 절대적 부정에도 불구하고 당시 30여명에 불과하던 시조시인이 1500명으로 늘어났고 오히려 글로벌시대 한국문학의 본류로 자리매김해야한다는 각성의 소리가 높다. 왜 그들의 예측이 빗나갔던 것일까. 그들은 시조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서구적 문학논리가 중심이 된 보편적 이론의 잣대로만 보려했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시조시인들 또한 지나치게 이러한 문학평론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짙다. 창작은 창작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는 과거 수천 년의 진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지금까지 시조가 선택한 이 같은 ‘비정형의 정형화’ 작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가시기와 계측의 오류 등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온 것도 사실이다. 주거가 불안전한 오늘의 시조 또한 더욱 먼 험로를 만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같은 생장환경일수록 생명력이 길어진다는 사실이다. 이 어쭙잖은 글들 또한 그 유장한 생명력을 키우는 한 줌의 거름이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2016년 2월 목언예원에서 민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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